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 사회적 아픔 너머 희망의 다크 투어리즘
김명식 지음 / 뜨인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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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그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자가 마지막엔 사람까지 불태울 것이다.'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어' 중에서)



이 책은 우리의 역사에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채 파편으로 방치된 괴로운 사건들의 흔적과 유물과 공간을 탐방하는 책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한편으로는 역사를 목도하는 이들이 불편해할 수 있지만, 저자의 글처럼 개인을 시작으로 민족 혹은 공동체에게 각성과 교훈을 주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어휘는 '일상의 추념'이다. 책에서 언급한 '일상의 추념'은 매헌시민의 숲에 자리한 추모 기념비이다. 저자는 공간이 주는 '일상의 추념' 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상의 언어를 통해 재난 혹은 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기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일상의 추념'이 기념비를 넘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홍준 교수님의 말씀이 번뜩 생각났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공동묘지 페르 라세즈와 유관순 열사의 묘지에 대한 얘기였는데,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한 '존재의 상실 혹은 부재에 관한 공간, 기념비나 기념관 혹은 묘지나 무덤은 남은 자가 수행해야 하는 자명한 행위, 곧 건축이고, 건축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p108)'는 글과 일맥상통한다. 추모가 특정 행위가 아닌 일상에서 공유되는 공간에서 편안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한다는 점, 그리고 접촉성이야말로 기억과 공감의 전염성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미처 몰랐던 사실과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한 곳 중 하나는 오월걸상이다. 오월걸상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희생 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데에 지역의 한계와 기존의 추모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오월걸상을 본적이 없는데, 내가 접근하기에 쉬운 곳은 경기도 모란공원, 명동 성당이 되겠다.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의 동상과 서울역 머릿돌에 새겨진 사이토 마코토의 휘호에 대한 부분은 그야말로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 머릿돌이 아직도 붙어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은행 머릿돌, 연세대학교 내 수경원 터, 마포구 '선통물' 표시석 등이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인 휘호라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역사가 우리 일상의 한부분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이 책은 일상의 공간이 될 만한 기억의 장소들, 도심 속 기억 공간들, 역사와 일상이 맞물려 기억되고 있는 공간들을 찾아가고 소개한다. 역사 답사를 다니면서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곳들도 나름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주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어제와 내일 사이 오늘 새길 시간의 무늬는 기억의 미학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무늬를 새기는 것도, 그 무늬를 기록하고 기억해야하는 것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소명임을 다시 생각한다.  




106.
기억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면 다양한 방향에서 흘러온 지류는 한 방향의 강한 본류에 묻혀 커다랗고 힘센 일방적인 정체성에 묻히거나 밀려나고 말 것입니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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