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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ㅣ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이 작가의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 몇년 째 입맛을 다셔왔으면서도, 토속적인 색체가 짙은 탓에 아마 우리나라에까지 소개되지는 않을 거라고 멋대로 절반쯤은 체념하고 있던 상태.
때문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신음소리를 내 버렸다. (아아...)
강렬하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표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 위화감의 원인은 이렇다. 가내 수공업(?)으로 일일이 접어서 제작된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초판 한정본의 표지에는 이례적으로 변신 능력이 딸려 있는 것.
언뜻 멀쩡해 보이던 표지가, 공작새의 깃털처럼 활짝 펼쳐지며 특전CD에나 들어있을 것 같은 브로마이드 형태로 변모한다. 중요한 건 책의 내용이라지만, 소장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면 이 요염한 표지는 놓치고 나면 꽤나 억울할 듯 싶다. 출판사의 장인정신(혹은 서비스 정신)이 돋보이는, 단연 올타임 베스트 급의 표지.
그렇다고 이 소설이 초판 한정본의 프리미엄이 아니면 그 가치가 퇴색될 만큼 만만한 작품은 절대 아니다. 어느쪽이냐 하면, 이른바 본격 미스터리로서는 오히려 대박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민속학, 호러, 본격 미스터리가 융합된 하이브리드 미스터리'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세번째 작이다. 엄연히 위로 둘씩이나 있는데, 셋째가 먼저 팔려 온 이유는, 이 작품이 현 시점에서 단연 저자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고, 미쓰다 신조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읽어본 결과, 교묘하게 구축된 다중 구조 트릭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우선, 가장 들뜨게 만드는 것은 역시 그 토속적인 세계관.
오랜 관습이 지배하는 마을에 감도는 퇴폐적이고 탐미적인 공기가 음습하면서도 흡입력 있다.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인습, 토착적인 민간 전승 등의 무대설정에서는 어딘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그 으스스한 세계관을 좀 더 세련되게 재현해 놓은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품 속에 또다른 작품이 등장하는 특수한 설정을 이용한 대담한 트릭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연달아 작렬시키는 질풍노도의 클라이막스는 단연 압권이다. 이것만으로도 과식에 가까운데, 마지막 몇페이지를 남겨둔 상황에서는 정말이지 지금까지 구축해 온 소설속 세계관이 단숨에 뒤집혀 버리는 '최후의 일격'이 날아온다. 여기까지 당해버리고 나면, 그다음에는 그냥 멍때리는 수 밖에 없다. 반전 러시를 동반한 후반부의 섬뜩함은 이 소설을 호러로 분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 하다.
처참하고 불가사의한 사건이 되풀이해서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트릭은 모두 같다. 쌍둥이 남매, '잘린머리'라는 키워드를 축으로 해서 같은 트릭이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서 몇번이고 집요하게 반복된다. 추리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아는 트릭이라 생각하고 방심하기 쉽지만, 뒤로 갈수록 예상을 뒤엎는 전개에 점점 당혹스러워지고 만다. 이 소설의 진가는, 기존의 소설들에서 이미 익숙해진 트릭들을 합쳐서, 비틀고, 또 마구 비틀어서 엉뚱한 추리를 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잘 계산된 스토리는, 만약 설계도면이 존재한다면 상당히 복잡할 것 같은 모양새인데, 그러면서도 자잘한 오류조차 눈에 띄지 않을만큼 치밀하다. 모든 서술이 중요한 복선이 되고, 30항목이 넘는 의문들이, 단 하나의 사실에 의해서 단번에 깔끔하게 밝혀지는 대목은 이 소설의 구성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말해준다.
완전히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 흔하고 진부한 트릭이라도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낡은 옷이라도 잘 조합하면 얼마든지 멋진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
저자에게 뭔가 한 수 배운 기분이 든다. 비교적 두툼한 작품이지만, 추리소설 독자로서의 삶의 질은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두께만큼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듣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