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7일 모중석 스릴러 클럽 25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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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년 전,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락 프로그램 '서바이버'를 몇차례 시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까지 시청자를 사로 잡은 것인지? 리얼 서바이버라고는 해도 탈락해봐야 그저 남들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갈 뿐이지 않은가. 만약 서바이버라는 그 제목처럼, 카메라를 향한 위선 없이 죽느냐 사느냐의 사투를 벌이는 출연자들의 절박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20년 경력의 베테랑 티비 리포터가 써내려간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어느 케이블 티비에서 카리브의 외딴섬인 '바사섬'을 통째로 빌려 리얼리티 쇼를 촬영한다. 참가자인 12명의 남녀가 섬에 모여 1주일간 체제한다. 이중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한사람은 거액의 상금과 소원 하나가 이루어지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는다. 이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힘든 과제에 도전하는 모습은 600여대의 카메라를 통해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 그리고 시청자 투표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사람부터 한명씩 탈락해, 최종적으로 승자가 정해진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티비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촬영 개시와 함께 스탭들이 잇달아 변사한다. 누군가가 이 프로그램에 개입해 죽음의 바이러스를 뿌린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백신뿐. 매차례 시청자 투표를 거쳐서 탈락자가 되는 사람에게는 이 백신이 주어지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진짜 '목숨'을 건 게임을 해야하는 운명에 처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표를 줄일 수 있는 이상한 돌을 얻기 위해 출연자들은 사투를 벌인다. 한단계가 마무리 되면 다시 새로운 시작이 몇번이고 되풀이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일단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은 곧 다시 공포로 뒤바뀐다. 긴장감이 롤러코스터처럼 반복되는 이러한 서바이버 프로그램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연출이 인상적이다.

룰과 시스템]
1> 참가자의 몸과, 섬 곳곳에 설치된 무인 카메라에서 촬영된 영상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이를 시청한 사람들이 인터넷 투표로 참가자들을 1명씩 탈락시켜 간다.
2>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참가자라도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 사람은 '안전석'이라는 돌을 획득할 수 있다.
3> 안전석은 자신이 받은 표의 10%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4> 참가자들은 섬에 들어간 순간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어서, 24 시간마다 한번씩 백신을 맞지 않으면 투표와 상관없이 사망한다.
5> 준비된 백신의 수는 남은 참가자의 수보다 항상 하나가 부족하다.
6> 안전석이 있는 장소는 자신의 00가 힌트가 된다.
7> 최후의 1명, 즉 우승자에게는 상금 200만 달러와 무엇이든 '자신이 바라는 소원' 하나가 실현된다.
기타> 살인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섬 안에 있는 보균자가 탈출을 시도하면, 섬 바깥의 해군으로부터 포격당한다.

얼굴도 모르는 시청자들이 자신들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하는 데다, 참가자들은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해서라도 중요한 안전석을 손에 넣고 싶어하기 때문에 섬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게다가 범인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등장 한 뒤에는 협동심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 운 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 엎친데 덮친 격으로 범인 이외에도 위험한 자가 생기고, 해군은 섬을 날려버릴 기세. 이 섬 안과 바깥 양쪽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딸의 수술 비용이 필요한 주인공, 한사람씩 줄어가는 참가자, 시시각각 임박해오는 죽음의 공포, 누가 무슨 목적인가, 대책 위원회는 그들을 구할 수 있는지, 이런 와중에도 뻔뻔스럽게 등장하는 한가닥 로맨스까지 관람포인트는 다양하다. 두근두근한 엔터테인먼트로서 확실하다. 진상은 조금 현실감이 부족한 감도 있지만, 옥의 티가 될 정도는 아니다. 시청자의 투표 결과에 대해서도 항상 납득할 만한 에피소드가 마련되어 있고, 대통령에게는 죽게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설정 등등, 탄탄한 구성력이 느껴진다.

만약 이 사건이 실제로 있던 것이라면, 나는 투표에 참가했을까? 잘 모르겠다.
24시간 생방송이라지만 실제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매순간 한대의 카메라의 시선 뿐이다. 따라서 원하는 시간대 원하는 장소의 다른 카메라의 촬영분을 DVD로 판매하는 계획이었다는 이야기에는 감탄했다. 이거 반드시 장사된다. 마니아 컬랙션으로는 최적의 아이템이 아닌가. 방송이 방송만으로 끝나지 않아! 이런 다양한 수익모델이 있기 때문에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블록버스터급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거겠지. 양키들 돈버는 머리 하나는 대단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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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천사
키스 도나휴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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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보다 신비롭고 스톨른 차일드보다 매력적이라는 문구는 구구절절 맞지만, 해리포터와 같은 아동 판타지와는 거리가 암스테르담과 우리집만큼이나 멀다. 아마존이 선택한 작가 '키스 도나휴'의 데뷔작인 <스톨른 차일드>는 아이와 자신을 바꿔치기 하는 고약한 요정 체인즐링 설화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판타지인 듯 아닌듯 교묘하고 노련한 스토리텔링에다 조금은 진중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는 이 책 <파괴의 천사>에서도 여전하다. 아니, 데뷔작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10년전, 십대였던 외동딸 에리카가 혁명과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남자친구를 따라 집을 나가 버린 후, 남편마저 여위고 줄곧 절망 속에서 홀로 살아온 퀸 여사. 어느 추운 겨울날 한 고아 소녀가 이런 퀸여사를 찾아와 이 집에 머무르고 싶다고 한다. 퀸 여사는 소녀 '노라'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외손녀라 속여 학교에 보내기 시작한다.

노라는 어딘가 이상하다. 노라가 전학 온 이후 반의 분위기가 평화로워지고 이상하리만치 아이들은 온순해졌다. 심지어는 시험에서 전원이 만점을 받기도 한다. 마술과도 같은 이상한 능력을 보이는 노라를 아이들은 마치 피리부는 남자를 쫓듯 따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들을 선동하는 노라가 탐탁치 않다. 결국 자신의 자식들에게 노라를 멀리하라 이르고, 그녀를 내쫓으라 교장을 압박한다. 한편 퀸 여사의 여동생 다이앤은 노라의 이야기를 듣고 잃어버린 조카 에리카를 찾아 나선다.

정체모를 신비로운 기운, 노라의 주위를 맴도는 메피스토 이미지의 수상한 남자까지, 한 집안의 사연과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그리면서도 음울한 세기말적 분위기와 성스러운 분위기가 혼재된 소설 속 공기가 묵직하다.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선지자의 행보까지도 연상하게 하는 스토리가 또한 마음을 무겁게 한다. 흔하디 흔한 판타지로 흐를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이만큼 진중하게 써내려 갈 수 있는 것은 역시 영문학 박사 출신 작가로서의 역량일까. 스톨른 차일드도 그렇지만, 이 작가는 사람들이 흔히 미신이라, 혹은 상상이라 치부하는 것들을 소재로 끌어와서 '과연 너희가 믿는게 진실이고 전부겠느냐' 라고 말하는 것을 즐기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스토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설픈 설교로 이어지지 않아 마음에 와닿는다.

"진실은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죠." 그래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진실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보고도 믿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이 믿는 천사는(혹은 신은) 단지 믿음을 위한 천사인 것은 아닐까. 만약 진짜 천사가 소녀의 모습으로 강림한다면, 혹시 우리 이웃에 천사가 살고 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소위 전문가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지 않고 그런건 없다고 한다. 자신의 협소한 지식과 편견 속에 갇혀 사는 인간들, 우리는 우리자신을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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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8
박하익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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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밀리언셀러 클럽에서 나 <한국 추리 스릴러단편선 3>을 읽었다. 참 재미있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꾸준히 나와주는 것만해도 기분 좋은 일인데, 이 시리즈는 갈수록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입니다. 1편보다는 2편을, 그리고 2편보다는 이 3편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뭐랄까 궤도에 올라섰다고나 할까요, 어딘가 외국작품을 막연히 쫓고 있다거나 실험작의 어설픈 느낌 같은 것은 이제 별로 찾아 볼 수 없고 한결 여유있어진 모습입니다. 충격적인 결말이나 대작의 향기가 물씬나는 반전같은 것은 없지만, 대신에 단편집의 묘미를 잘 살린 기발한 아이디어와 구성을 무기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시 한국 작가들의 소설인만큼 번역소설과 비교하면 읽는 맛이 좋습니다. 맛깔나게 읽히기도 하지만, 우리 역사, 우리 학교, 우리의 주택문제 등등 우리가 사는 얘기를 소재로 해서 외국의 사정에 밝지 않더라도 백퍼센트 만끽할 수 있는 책이 되고 있습니다. 단편 집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개성이 풍부하게 살아있는 작품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다소 아쉬움입니다.

전체적으로 기발하고 톡톡 튀는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바바리맨도 아니고 흡혈귀도 아니면서 등교길 여학생들만을 깨물고 튀는 괴한 이야기 <무는 남자>, 또 자신 소유의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면서 세입자를 감시하는 노이로제 걸린 할아버지 이야기 <잠만 자는 방>, 이년이 내집을 더럽혀! 이런 느낌? 이것, 다소 변태 같은 설정인데 그 쪼잔함에서 비롯된 초조함, 집요함이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상합니다. 그밖에도 인기 여가수와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 창녀가 나오는 SF물도 있고, 만화가 살인사건이라던가,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스토킹 당하는 여성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면 그만인 남자의 이야기 등등 소재는 정말 다양합니다. 게다가 1편부터 줄곧 읽어온 사람이라면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를 <혈의 살인>을 비롯해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역사추리소설도 두편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취향의 차는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지하철에서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의 불꽃튀는 힘겨루기를 무림강호에 빗대 풀어낸 <전철 수거왕>이 가장 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단편입니다. 정통적인 미스터리와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미스터리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작렬하는 블랙유머, 웃겨서 돼지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걸 코지미스터리라고 해야할지, 무협 미스터리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코미디? 어느쪽이든 재미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단편선이 다음 작에서 어떻게 발전한 모습을 보일지가 궁금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두팔 걷어부치고 기대해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만족스러운 작품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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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 동물원 그리고 거북이
줄리아 스튜어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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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이라면 , 이런 소설이 나와 있습니다. <던탑, 동물원 그리고 거북이>.

데뷔작인 <페리고르의 중매쟁이>로 우리나라에도 얼마전에 소개된 바 있는 영국작가 '리아 스튜어트'의 두번째작품입니다. 표지에서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런 느낌이 물씬 나는 소설입니다. 2백살이 넘은 거북 '쿡 부인'이나, 코모도 왕도마뱀, 아르헨티나에서 보내온 펭귄, 런던탑의 터줏대감 격인 까마귀 등등... 친숙한 동물, 희귀한 동물 가리지 않고 런던탑 안으로 모두모두 모여듭니다. 동물을 좋아해서인지 이런 설정 만으로도 읽기전부터 묘하게 애착이 가는 소설이었습니다.

런던탑에는 1834년까지 동물원이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그 런던탑 안에 있던 동물원을 복원해서, 전세계 각국에서 여왕에게 선물로 보내온 동물들을 다시 런던탑으로 옮겨와 기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동안에는 동물들을 런던 동물원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었지만, 그때문에 일어날지도 모를 외교적인 문제를 고려해 여왕이 직접 이와같은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 사육 책임자는 근위병인 '발사자르 존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난 후 아내와도 소원하게 지내고 있던 존스는 상사나 동료를 설득 해서 런던탑의 동물원 화를 궤도위에 올려놓습니다만, 갑자기 여왕이 동물들을 다시 런던 동물원으로 되돌린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주인공인 발사자르, 런던탑에 동물들이 유입되면서 까마귀들의 인기가 다른 동물들에게 분산되자 억하심정으로 흉계를 꾸미는 까마귀대장(사람입니다)등등의 런던탑 사람들, 런던지하철 유실물센터에서 일하는 발사자르의 아내 '헤베 존스'와 그녀의 동료 개미허리 '발레리 제닝스', 그리고 런던탑 교회의 에로소설을 쓰는 목사 '셉티머스 드류'와 목사의 연정의 대상인 술집주인(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나, 술집주인 미안)까지.... 이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럽고 돌발스런 헤프닝들과 문장 군데군데 묻어나오는 잔잔한 유머, 그렇지만 반면에 매사에 진지하고 자신에 주어진 삶에 충실한 이들 등장인물들이 있어서 유쾌하다는 것과는 다르게 뭐랄까 따스하다고나 할까. 사랑스런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부모가 된 것같은 애정을 느낍니다.

전작인 페리고르의 중매쟁이에서도 그랬지만, 등장인물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사연, 생각, 시덥잖은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서는, 그 비중에 상관없이,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집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보다는 그 심리까지 고스란히 설명해주는 저자의 목소리가 주가 되기 때문에, 때로는 저자가 인형사가 되어 연출하는 인형극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게 뭐라 말할수없이 정겹습니다. 자극적인 소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 소설의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은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상처받고, 사랑하고 싶고,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어울리는 이야기, <런던탑, 동물원 그리고 거북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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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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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어온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단번에 읽었습니다. 반세기도 더 전에 쓰여진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폐인등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일부 젊은이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의 주인공 '오바 요조'처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느끼거나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에 의문이나 혐오감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허세나 겉치레, 제멋대로인 자아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혐오하고 인간세상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주인공이, 이러한 현실과 자신의 내적 진실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사회에 똑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마침내 폐인 처럼,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조차 포기 해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복잡한 감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책 말미의 해설에서 이런저러한 해석을 들려주고 있지만, 아마도 이 작품은 사회성을 얻는데 실패한 남자의 이야기다, 라고 느꼈습니다. 사회를 오물처럼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사회와의 접점을 가지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사회 안에서 관계를 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직접 사회 속으로 뛰어 들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현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바로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그런 의미에서는 일종의 폐인적인 측면을 가진 인간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아마도 저자의 분신인듯한 이책의 주인공은 사실 모든 면에서 이처럼 비관적일 이유가 없는 좋은 조건을 타고 났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된것은, 인간에 대해서, 혹은 세상에 대해서 품고 있던 이상이 너무나도 높았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나 현격한 그 괴리감이 저자 '다자이 오사무'에게서 세상을 살아갈 이유마저도 빼앗아 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세상을 믿을 수 없으며, 그런 세상에서 소외되는 듯한 자신은 인간실격이라는 주인공의 자괴감은 비통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만약, 나 자신을 믿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간도 인간세상도 모두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생각의 울타리가 너무나도 견고했던 모양입니다. 이상은 이상으로 남겨둔 채, 요조는 구제불능의 폐인이 되고, 현실의 저자는 자살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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