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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천사
키스 도나휴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해리포터보다 신비롭고 스톨른 차일드보다 매력적이라는 문구는 구구절절 맞지만, 해리포터와 같은 아동 판타지와는 거리가 암스테르담과 우리집만큼이나 멀다. 아마존이 선택한 작가 '키스 도나휴'의 데뷔작인 <스톨른 차일드>는 아이와 자신을 바꿔치기 하는 고약한 요정 체인즐링 설화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판타지인 듯 아닌듯 교묘하고 노련한 스토리텔링에다 조금은 진중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는 이 책 <파괴의 천사>에서도 여전하다. 아니, 데뷔작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10년전, 십대였던 외동딸 에리카가 혁명과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남자친구를 따라 집을 나가 버린 후, 남편마저 여위고 줄곧 절망 속에서 홀로 살아온 퀸 여사. 어느 추운 겨울날 한 고아 소녀가 이런 퀸여사를 찾아와 이 집에 머무르고 싶다고 한다. 퀸 여사는 소녀 '노라'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외손녀라 속여 학교에 보내기 시작한다.
노라는 어딘가 이상하다. 노라가 전학 온 이후 반의 분위기가 평화로워지고 이상하리만치 아이들은 온순해졌다. 심지어는 시험에서 전원이 만점을 받기도 한다. 마술과도 같은 이상한 능력을 보이는 노라를 아이들은 마치 피리부는 남자를 쫓듯 따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들을 선동하는 노라가 탐탁치 않다. 결국 자신의 자식들에게 노라를 멀리하라 이르고, 그녀를 내쫓으라 교장을 압박한다. 한편 퀸 여사의 여동생 다이앤은 노라의 이야기를 듣고 잃어버린 조카 에리카를 찾아 나선다.
정체모를 신비로운 기운, 노라의 주위를 맴도는 메피스토 이미지의 수상한 남자까지, 한 집안의 사연과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그리면서도 음울한 세기말적 분위기와 성스러운 분위기가 혼재된 소설 속 공기가 묵직하다.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선지자의 행보까지도 연상하게 하는 스토리가 또한 마음을 무겁게 한다. 흔하디 흔한 판타지로 흐를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이만큼 진중하게 써내려 갈 수 있는 것은 역시 영문학 박사 출신 작가로서의 역량일까. 스톨른 차일드도 그렇지만, 이 작가는 사람들이 흔히 미신이라, 혹은 상상이라 치부하는 것들을 소재로 끌어와서 '과연 너희가 믿는게 진실이고 전부겠느냐' 라고 말하는 것을 즐기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스토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설픈 설교로 이어지지 않아 마음에 와닿는다.
"진실은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죠." 그래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진실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보고도 믿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이 믿는 천사는(혹은 신은) 단지 믿음을 위한 천사인 것은 아닐까. 만약 진짜 천사가 소녀의 모습으로 강림한다면, 혹시 우리 이웃에 천사가 살고 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소위 전문가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지 않고 그런건 없다고 한다. 자신의 협소한 지식과 편견 속에 갇혀 사는 인간들, 우리는 우리자신을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