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갇힌 날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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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섞인 꿈과 현실의 세계'라.... <어둠에 갇힌 날>, 이 소설 이상하다. 이상하다기 보다는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묘하다고 해야 할까. 시력을 잃었다는 주인공 '나'가 연인 '마라'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금새 과거 친구들과의 여행의 기억, 아내와 딸과 함께 보내는 일상, 복수의 매춘부들과의 시간, 숲속을 헤매는 사자의 이야기 등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나의 기억은 수시로 뒤바뀌어 있다.

그리고 마라와 '나'가 머무르던 섬에 불꽃놀이가 벌어지던 날 밤, 절벽에서 한 남자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지갑 속에서 '나'가 찍혀 있는 사진이 발견된다. '나'는 이 남자를 전혀 본 기억이 없다. 그런 생면부지의 사람을 살해할 이유가 있을 리도 없다. 그렇지만, 경찰과 '마라'는 그 순간 떠오른 한줄기 의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 해프닝 조차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반복되면서 이상한 형태로 일그러져 버린다.

이상하게 뒤죽박죽인 '나'의 기억들은 매번 조금씩 형태가 달라진다. 그리고 '나'가 등장하는 장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뜬금없는 '사자'의 여행. 이것은 또 무엇인가? 도대체 갈피를 잡을수가 없는데, 어리둥절한 가운데에도 궁금증은 계속해서 증폭되어만 간다. 중간에 단서라도 하나 나와주면 좋으련만 그런것도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지 부연설명은 기대할 수 없고, '나'의 입을 통해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꿈속을 걷는 것처럼 몽환적이기만 하다.

꿈, 기억 과정에서의 의식의 흐름이란 이런 것일까? 읽는 동안에는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떤 형태일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의외로 그 결말은 다소 진부한, 그렇지만 진부하기 때문에 이 어리둥절한 과정들을 모두 설명해 준다. 이책의 저자인 '얀 코스틴 바그너'는 감성과 내면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잘 알려진 모양이다. 이것이 생생한 '내면의 세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처럼 비슷한 작가를 떠올리기 힘든 개성이 확연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좋은 것도 다 한때고 어차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요즘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차라리 소설 속 '나'처럼 꿈속을 정처없이 헤매고 다니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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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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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llars of the Earth (1989)

재미있는 책은 많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일명, '페이지 터너'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책장을 넘기느라 손이 분주해집니다. 왜 이런 소설이 이제서야 소개가 되는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대작의 향기가 물씬 나는 작품이었습니다.

12세기 잉글랜드를 무대로, 킹스브리지 대성당 건축을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드라마를 그리고 있습니다. 상,중,하권 합쳐 약 1600페이지의 압도적인 분량에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솔즈베리 대성당(소설 속 대성당의 모델이 된)의 평면도가 풍기는 본격적인 분위기가 왠지 무거운 내용을 연상하게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왕궁, 수도원, 숲, 마을 등등 그 무대도 다양하고, 영주와 백성, 귀족과 국왕, 미신과 기술, 부와 가난, 특히 왕권과 교회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중세시대의 갈등의 사회상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리얼리티 넘치는 역사 소설인 동시에 몰입도 높은 스릴러(저자 켄 폴릿은 원래 스릴러 작가라 합니다.)이며, 때로는 기업 소설의 정서마저 느껴집니다.

가족을 데리고 떠돌던 건축쟁이 '톰'은,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맙니다. 그런 절망스런 때에, 아들과 함께 숲에서 살고 있는 수수께끼의 여성 '엘렌'을 만납니다. 가슴에 뚫린 구멍을 매우듯이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톰은, 이들 모자와 함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낡은 성당이 있는 킹스 브리지로 향합니다. 온갖 고난으로 점철된 이 톰의 이후 펼쳐지는 인생은 말그대로 파란만장합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주인공인 킹스 브리지 수도원장 '필립'의 인생도 만만치 않습니다. 본의 아니게 왕위 계승의 음모에 말려 들어간 젊은 필립은 킹스 브리지 수도원의 새로운 수도원장으로 임명되고, 부패한 수도원의 대개혁에 나서려는 찰나에 성당이 화재로 불타 내려앉습니다. 윌리엄 백작이나 주교등 수많은 라이벌들의 견제가 난무합니다. 그렇지만 성직자인 필립은 절망스런 순간마다 신이 준 시련이라 받아들이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웁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런 칠전팔기하는 '불굴의 정신'은 이 소설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쟁이인 톰, 수도원과 대성당 재건에 정열을 불태우는 수도원장 필립 외에도, 입신양명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는 주교와 거기에 가세 하는 영주, 영주의 아들 윌리엄, 대성당 건축의 인생을 건 엘린의 아들 잭, 몰락한 백작의 딸인 앨리애너 등, 다양한 인물의 시점에서 교대로 서술되는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의 꿈, 욕망등이 대성당을 중심으로 아슬아슬하게 서로 얽힙니다.

물론 이러한 애증극 뿐만 아니라 대성당 건설 현장의 묘사도 치밀해서,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장인들이 도면을 들여다보고, 작업을 지시하고, 석공이나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이 머릿 속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대성당 건축을 묘사하는데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용어들을 포함해서 문외한인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건축지식이나, 토목지식, 혹은 대성당이나 고딕 건축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있다면 좀 더 벅찬 감동을 느낄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타산적이고, 욕망이나 허영, 복수심을 품고 있는 등, 그 누구라도 결코 완전무결한 인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한결같습니다. 추악한 권모술수 속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몇 십년의 세월에 걸쳐, 대성당 건설이라는 하나의 대업을 향해 힘을 모아가는 모습에서는 상쾌함마저 느껴집니다.

대성당을 세운다는 것은 대대손손 이어지는 정말로 오랜 세월이 걸리는 대작업이네요. 이책을 읽고 여러 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은 완성하기까지 260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대성당 수복 작업을 하고 있는 정경을 담은 그림에는 직공들이 망치와 정으로 돌에 치밀한 조각을 하고 있는 모습등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첨단장비 없이 순수한 피와 땀만으로 일궈낸 성과라고 생각하니 그 경이로움은 배가 됩니다. 어떤 이해관계에서든 당사자들은 아마 인생을 건다는 생각으로 대성당 건축에 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때에도 꺾이지 않고 꿈을 향해 도전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몇번은 좌절하는 때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질 것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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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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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있고 영향력 있는 수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샌델' 교수의 강의 'Justice'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
이것은 소크라테스 식의 강의다.

숫자와 공식으로 수치화된, 증명 가능한 데이터가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한없이 막연하고 세상과는 동떨어진 일부 학자들만의 신선놀음으로 비치는) 철학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사회일수록 철학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샌델 교수가 이 강의에서 던지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는 철학자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나가 일상에서 수시로 맞닥뜨리고 있는 실로 중요하고 절실한 물음이다.

자유지상주의와 공리주의는 정의롭다 할 수 있는가?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한가? 기회나 재능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데 이런 조건에서 승자가 부를 과도하게 가져가는 것은 불공정하지 않은가? 노력의 기회나 성과조차도 태어난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개인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난해한 물음들에 대해 샌델 교수는 다시 그에 대한 반문과 함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기존 철학자들의 논리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청자 스스로 타당한 논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나오기 힘들 것 같은 이 물음에 대한 저자 나름의 견해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샌델 교수의 접근법은 최종적으로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공리주의적인 입장에서, 한명 혹은 다섯명 중 어느 한 쪽이 희생되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명이 희생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옳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바로 정의라는 것.
두번째는 칸트와 롤스가 말한 것 처럼, 공정함이 선에 우선한다는 생각. 자유로운 선택이야말로 정의다 라는 것.
세번째는, 상호 존중에 근거해서 공통선을 목표로 한 정치를 해야한다는 생각.
이 중 샌델 교수가 지지하는 것은 세번째이다.

순수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정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활발한 논의를 통해 이 책 한권으로 정의라는 명제에 대한 학계 전체의 흐름을 이해 할 수 있게 쓰여져 있다는 점.
때문에 과도하게 요약, 압축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까다로운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만약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여러 사상들을 개별적으로 공부하려고 한다면 각각의 자료를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혼자힘으로 전체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어설프게 칸트를 공부해 보았자, 칸트의 발언이 어떤 역사적인 흐름안에서, 또는 어떤 철학의 흐름 안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그것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런면에서 아리스토 텔레스에서부터 존 롤스, 칸트, 자유주의에서 공리주의까지 각각의 설의 입장과 논리적인 문제점까지 조목조목 집어 이해하기 쉽게 해설 해 준 이 책은 진정한 정의란? 그리고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라면 필독서다.

덕분에 자유주의도, 공리주의도, 칸트도, 롤스도, 아리스토 텔레스도, 전혀 알지 못하는, 새하얀 상태라고 해도 무방한 텅빈 지식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별다른 어려움없이 (흥미진진하게) 강의에 동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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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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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는 초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이 10년 이상에 걸쳐 미 주간지 뉴요커에 발표해 온 에세이를 정리한 책이다.

60주 이상에 걸쳐 베스트셀러에 랭크됐던 저자의 전작 『아웃라이어』처럼, 이책 도 장기간 뉴욕 타임지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부문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에세이집이라고 하면 오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신변잡기에 대해서 쓴 잡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편에서는 아무리 흉폭한 개라도 금새 순한 개로 길들여 버리는 ‘개심리학자’를 소개, 인류학자나 행동 학자들의 견해와 함께 어째서 개가 개심리학자의 지시에 따르게 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개는 인간의 몸의 섬세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독자 브랜드의 케찹을 개발해 대기업 메이커에 도전하는 남성을 다룬 이야기에서는, 마케팅이나 미각 전문가를 취재하면서 식품 시장의 특성을 그려낸다.

 _‘성공론’을 쓰던 저자가 ‘실패론’을 말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그렇지만 의외로 이 책의 기저에 흐르는 큰 테마는 『실패』다. 재능 있는 사람이 왜 실패하는가, 우수한 인재를 모아놓은 조직이 왜 성과가 낮은가, 프로 투자가는 왜 큰 손실을 내는가 하는 주제가 눈에 띈다. '1만시간의 법칙'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아웃라이어』의 성공론과는 대조를 이룬다.


예를 들면, 우승을 눈 앞에 둔 테니스 선수나, 골퍼가 중압감에 눌려 실수를 연발하고 실력 발휘를 못하는 현상등을 다룬 에피소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성공에 집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재능있는 사람들이 난관을 극복한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재능있는 사람들이 실패한 이야기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수 있다.” p.282

성공론 덕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가 가르쳐주는 것의 효용성을 말하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1980년대 이후, 확대일로를 걸으며 세계를 견인해 온 미국경제가 사태가 급변해서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발화점이 되어 버린 지금, 미국인들에게 겸허하게 실패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마인드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높은 실업률에 거액의 재정 적자라는 어려운 경제의 현실을 앞에 두고서, 그동안 줄곧 성공만을 요구해온 삶의 방식에 미국 사회가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MBA는 도움이 안된다.
성과주의로 회사는 좋아지지 않는다.

우수한 경영자나, 권위있는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우수한 인재들이 회사를 성장시킨다는, 미국 사회가 맹신해 온 환상에도 의문을 들이댄다. 이 책에서는 그 가장 큰 예로서 부정 회계로 2001년에 파탄한 에너지 상사 <엔론>을 예로 든다. 심리학자 들이 쓴 <카리스마의 어두운 단면>이라는 논문을 기초로 해서, 문제있는 경영자의 3가지 유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번째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적을 만드는 일을 피해 다니면서 쉽게 조직 상층부로 진입한 호인형이다. 두번째는 앙심을 품고 뒤에서 적들을 물리칠 계략을 꾸미는 음모형이다. 가장 흥미로운 유형인 세번째는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매력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자아도취형이다. 자아도취형은 형편없는 경영자다. 그들은 약하게 보일까봐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한다.” p.386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에게도 흔히 있을 법한 유형들이다.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경영자가 뛰어난 회사를 만들어낸다는 미국적인 기업 문화의 믿음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기도 하다. 게다가 MBA를 취득한 우수한 인재를 인해전술로 채용한다고 해서 회사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설득한다.

미국의 성공적인 기업들을 보면 조직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경영대학원 출신을 거의 뽑지 않고 급여를 많이 주지 않으며 연공서열에 따라 급여를 인상한다. 그래도 미국 항공사들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경쟁사보다 훨씬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p.392

저자는 <사우스 웨스트>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슈퍼 <월마트>나, 일용품을 생산하는 <P&G>를 엘리트가 포진한 <엔론>형 경영과는 반대극에 있는 성공적인 회사로서 칭찬한다. 리더쉽이 있는 특정한 개인보다는 효율적인 조직의 손을 들어준다. 한 줌밖에 안되는 스타들이 거액의 보수를 챙겨가는 기업의 시스템이나 월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 가운데 펀드매니저 <나심 탈레브>를 취재한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탈레브라고 하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관한 그의 저서 『블랙 스완』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된 적이 있지만, 여기에 실린 에피소드는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훨씬 이전인 2002년에 발표된 것으로, 금융시장의 위험함에 경종을 울리는 월스트리트의 아웃사이더로서 탈레브를 채택하고 있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예측불능이야말로 마켓의 본질이기 때문에,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도 계속해서 소액의 자금을 배팅한다. 평상시에는 손실을 내다가도 이번 금융 위기와 같은 큰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 큰 수익을 얻는 것이 바로 탈레브의 자금 운용 방법이다. 뒤집어 말하면, 평소에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명성높은 펀드매니저들도 우연히 벌고 있는 것일 뿐, 언제라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셈이다. 시세는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탈레브의 철학이다.

『티핑 포인트』나 『블링크』와 같은 글래드웰의 다른 저서들을 기대했다면 기대는 빗나가고 만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훨씬 서정적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리서치로 상식을 뒤집는 에세이들을, 한편 한편 우아하고 리듬감 있는 문장으로 연주한다. 그러면서도 다루고 있는 화제에 대한 저자의 분석력은 한층 더 진화하고 있다. 스토리와 반전, 시원스럽고 평이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결말. 그리고 그 뒤에 남는 여운. 즉 픽션과 논픽션의 매력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저자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호칭은, 너무나도 얄팍하게 들린다. 『글래드웰』은 새로운 장르의 창조자다. 이 책은 그것을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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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 왕수비차잡기 밀실살인게임 1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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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부제인 <왕수비차잡기>는 장기에서 '왕'과 '차' 둘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두는 수를 말합니다. 즉 상대의 입장에서는 패하지 않으려면 왕을 피하는 대신 중요한 차를 내어줄 수 밖에 없는 사면초가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장기에서 차는 다른 말에 비해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유닛입니다. 차 하나를 빼앗음으로 해서 핀치에 몰려있던 전세가 대역전되는 일도 흔합니다. 이 소설은 화상 채팅으로 만난 다섯명의 추리마니아가 서로 돌아가면서 추리 문제를 출제하고 그것을 맞추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왕수비차잡기'는, 출제자가 구상한 치밀한 트릭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정답에 다가설 수 있는 결정적인 추리, 아마도 그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죽이고 싶은 인간이 있어서 죽인 게 아니라, 써보고 싶은 트릭이 있어서 죽였지."

추리 게임을 펼치는 다섯명의 추리 마니아라고만 일단 소개했지만, 이들에게는 평범한 미스터리 마니아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손수 저지른 살인을 문제로 출제하고 나서, 현장을 담아온 사진이나, 정황증거들을 하나씩 힌트로 제시하면서 나머지 네명의 맴버가 문제를 맞추도록 종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즐기다가 퀴즈 하나가 끝나면 카메라 앞에 각자 준비한 술과 안주를 늘어놓고 회식을 하기도 합니다. 다소 황당한 설정입니다. 네, 황당합니다.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대단히 잘 설계된 레벨높은 추리퀴즈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순차적으로 누군가가 범인 역을 맡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탐정이 되어 수수께끼를 푸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니까, 방금전까지 탐정이었던 자가 살인범으로 돌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되는 셈입니다. 탐정이 만들어 낸 트릭! 물론 누가 만들어내든 실제적으로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출제자와 문제를 푸는 자들 사이의 이런 경쟁구도가 묘하게 독자의 승부욕까지도 자극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단서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스토리를 흘려 보내야 하는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과는 다르게, 즉각적으로 힌트를 제공받고 잘못된 추리를 그때그때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매체로 추리게임을 즐기는데 있어서는 그야말로 궁극의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살인사건 그자체가 아니라, 아무 관계없는 사람의 목숨을 단순한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것을 이러한 최상의 추리게임을 즐기기 위한 설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엽기적인 동기를 제외하면 여기에 감정이입을 할만한 요소나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세세한 묘사가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본격미스터리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설정을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순수하게 추리 그 자체를 즐기려 하겠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이 생소한 사람이라면, '아니, 이런 잔혹한 발상이 즐겁다고?' 당혹스럽지 않으리란 법도 없습니다. 때문에 저자로서는 어찌되었든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해명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듯 합니다. 그에 대한 대책, 혹은 중화제로서의 결말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의의 편이 아닌, 금단의 선을 넘어 버린 자들의 냉혹한 추리게임이 독특한 매력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출제되는 퀴즈마다 각 캐릭터의 개성이 묻어나오는 연출도 마음에 듭니다. 잔혹한 상황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맴버들의 대화는 블랙유머의 극치라고 해야할까요. 이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분위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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