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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The Pillars of the Earth (1989)
재미있는 책은 많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일명, '페이지 터너'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켄 폴릿'의 <대지의 기둥>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책장을 넘기느라 손이 분주해집니다. 왜 이런 소설이 이제서야 소개가 되는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대작의 향기가 물씬 나는 작품이었습니다.
12세기 잉글랜드를 무대로, 킹스브리지 대성당 건축을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드라마를 그리고 있습니다. 상,중,하권 합쳐 약 1600페이지의 압도적인 분량에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솔즈베리 대성당(소설 속 대성당의 모델이 된)의 평면도가 풍기는 본격적인 분위기가 왠지 무거운 내용을 연상하게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왕궁, 수도원, 숲, 마을 등등 그 무대도 다양하고, 영주와 백성, 귀족과 국왕, 미신과 기술, 부와 가난, 특히 왕권과 교회의 대립으로 대표되는 중세시대의 갈등의 사회상이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리얼리티 넘치는 역사 소설인 동시에 몰입도 높은 스릴러(저자 켄 폴릿은 원래 스릴러 작가라 합니다.)이며, 때로는 기업 소설의 정서마저 느껴집니다.
가족을 데리고 떠돌던 건축쟁이 '톰'은,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맙니다. 그런 절망스런 때에, 아들과 함께 숲에서 살고 있는 수수께끼의 여성 '엘렌'을 만납니다. 가슴에 뚫린 구멍을 매우듯이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톰은, 이들 모자와 함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낡은 성당이 있는 킹스 브리지로 향합니다. 온갖 고난으로 점철된 이 톰의 이후 펼쳐지는 인생은 말그대로 파란만장합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주인공인 킹스 브리지 수도원장 '필립'의 인생도 만만치 않습니다. 본의 아니게 왕위 계승의 음모에 말려 들어간 젊은 필립은 킹스 브리지 수도원의 새로운 수도원장으로 임명되고, 부패한 수도원의 대개혁에 나서려는 찰나에 성당이 화재로 불타 내려앉습니다. 윌리엄 백작이나 주교등 수많은 라이벌들의 견제가 난무합니다. 그렇지만 성직자인 필립은 절망스런 순간마다 신이 준 시련이라 받아들이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웁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런 칠전팔기하는 '불굴의 정신'은 이 소설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쟁이인 톰, 수도원과 대성당 재건에 정열을 불태우는 수도원장 필립 외에도, 입신양명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부리는 주교와 거기에 가세 하는 영주, 영주의 아들 윌리엄, 대성당 건축의 인생을 건 엘린의 아들 잭, 몰락한 백작의 딸인 앨리애너 등, 다양한 인물의 시점에서 교대로 서술되는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의 꿈, 욕망등이 대성당을 중심으로 아슬아슬하게 서로 얽힙니다.
물론 이러한 애증극 뿐만 아니라 대성당 건설 현장의 묘사도 치밀해서,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장인들이 도면을 들여다보고, 작업을 지시하고, 석공이나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이 머릿 속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대성당 건축을 묘사하는데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용어들을 포함해서 문외한인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건축지식이나, 토목지식, 혹은 대성당이나 고딕 건축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있다면 좀 더 벅찬 감동을 느낄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타산적이고, 욕망이나 허영, 복수심을 품고 있는 등, 그 누구라도 결코 완전무결한 인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한결같습니다. 추악한 권모술수 속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몇 십년의 세월에 걸쳐, 대성당 건설이라는 하나의 대업을 향해 힘을 모아가는 모습에서는 상쾌함마저 느껴집니다.
대성당을 세운다는 것은 대대손손 이어지는 정말로 오랜 세월이 걸리는 대작업이네요. 이책을 읽고 여러 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은 완성하기까지 260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대성당 수복 작업을 하고 있는 정경을 담은 그림에는 직공들이 망치와 정으로 돌에 치밀한 조각을 하고 있는 모습등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첨단장비 없이 순수한 피와 땀만으로 일궈낸 성과라고 생각하니 그 경이로움은 배가 됩니다. 어떤 이해관계에서든 당사자들은 아마 인생을 건다는 생각으로 대성당 건축에 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때에도 꺾이지 않고 꿈을 향해 도전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몇번은 좌절하는 때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질 것 같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