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갇힌 날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섞인 꿈과 현실의 세계'라.... <어둠에 갇힌 날>, 이 소설 이상하다. 이상하다기 보다는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묘하다고 해야 할까. 시력을 잃었다는 주인공 '나'가 연인 '마라'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금새 과거 친구들과의 여행의 기억, 아내와 딸과 함께 보내는 일상, 복수의 매춘부들과의 시간, 숲속을 헤매는 사자의 이야기 등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나의 기억은 수시로 뒤바뀌어 있다.

그리고 마라와 '나'가 머무르던 섬에 불꽃놀이가 벌어지던 날 밤, 절벽에서 한 남자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지갑 속에서 '나'가 찍혀 있는 사진이 발견된다. '나'는 이 남자를 전혀 본 기억이 없다. 그런 생면부지의 사람을 살해할 이유가 있을 리도 없다. 그렇지만, 경찰과 '마라'는 그 순간 떠오른 한줄기 의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 해프닝 조차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반복되면서 이상한 형태로 일그러져 버린다.

이상하게 뒤죽박죽인 '나'의 기억들은 매번 조금씩 형태가 달라진다. 그리고 '나'가 등장하는 장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뜬금없는 '사자'의 여행. 이것은 또 무엇인가? 도대체 갈피를 잡을수가 없는데, 어리둥절한 가운데에도 궁금증은 계속해서 증폭되어만 간다. 중간에 단서라도 하나 나와주면 좋으련만 그런것도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지 부연설명은 기대할 수 없고, '나'의 입을 통해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꿈속을 걷는 것처럼 몽환적이기만 하다.

꿈, 기억 과정에서의 의식의 흐름이란 이런 것일까? 읽는 동안에는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떤 형태일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의외로 그 결말은 다소 진부한, 그렇지만 진부하기 때문에 이 어리둥절한 과정들을 모두 설명해 준다. 이책의 저자인 '얀 코스틴 바그너'는 감성과 내면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잘 알려진 모양이다. 이것이 생생한 '내면의 세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처럼 비슷한 작가를 떠올리기 힘든 개성이 확연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좋은 것도 다 한때고 어차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요즘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차라리 소설 속 '나'처럼 꿈속을 정처없이 헤매고 다니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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