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라이프 1
김태양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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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를 모두 남자학교를 다닌 나는, 그 시절 언제나 머릿속에 남녀공학에 대한 환상같은 것을 달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 아이들과 같은 학교생활을 공유하게 되면 얼마나 재밌을 것이며, 얼마나 설레는 일이 많이 생길것인가. 생각만 해도 어찌나 부럽던지. 학교밖에서는, 남녀공학을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서 학교생활을 캐묻기도 하고, 여학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서는 같이 부러워하면서 그 동질감을 교환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혈기넘치고 왕성한 호기심을 자랑하는 그 나이 때의 남자아이들에게 남학교라는 울타리는 정말로 베를린 장벽보다 더한, 허물어 버리고 싶은 벽이였다. 미소녀는 커녕 살기 넘치는 육식동물 같은 녀석들만 우글우글해서 최대의 관심사는 단연코 누가 세냐였다. 무식하기 짝이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타이틀전이 벌어지고, 평소에는 서로 갈려서 아웅다웅하면서 지내던 놈들이 다른 학교와 트러블이 생기면, 또 신기하게 그렇게 화합이 잘 될수가 없다. 그래도 즐거운 일로 치자면 이 시절이 최고라, 추억담은 밤을세고 풀어놔도 다 못할정도로 한 가득이지만, 그때와는 감수성도 많이 달라진 지금도, 여자아이들과 같은반에서 생활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에 대한 부러움만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건 남학교를 나온 사람들에게는 앞으로도 평생 겪어보지 못할 시간이자, 언제까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쿨라이프>는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한번씩은 상상 해봤음직한 그런 이야기이다. 순진한 사랑이야기, 변태 취급받아도 할말없지만 결코 밉지만은 않은 그런 이야기. 남자 아이들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어쩌면 망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동급생중 최고의 미소녀 둘로부터 사랑받는 주인공. 그 미소녀 중 하나는 재혼한 아버지덕에 생긴, 피가 섞이지 않은 여동생. 그런 여동생과의 동거생활, 그 미묘한 관계에서 오는 야릇한 분위기, 삼각관계에서 오는 갈등, 미모의 젊은 여선생님과의 관계등등 사춘기 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확 지필만한 설정들의 총집합이다. 거기에 야동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동급생이라던가, 야동을 구워오라는 선생님 등등 재미있지만 다소 변태같은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한다. 그리고 학창생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에피소드들, 예를 들자면 소풍이라던가 체육대회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소위 오따꾸의 방구석망상처럼 보여질수도 있겠지만, 남자아이들이라면 이런 상상 자체에 충분히 공감을 가질수 있을만한 내용들이다. 다소 과장되면서도 야릇한 설정은 과감했지만, 정작 여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투르고 조심스러운 묘사는, 연애라는 것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던 순진하던 그 시절의 상상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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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책
기예르모 마르티네스 지음, 김주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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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스타일의 심리 미스터리라고 하는게 가장 좋을것 같다. 천편일률적인 추리, 스릴러물에 식상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나 고도의 심리 전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단연 추천하고 싶은 작품. 일단은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딱히 어느 특정 취향의 독자들만을 만족시킬 소설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권씩 나눠주고 그 감상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 들게되지 않을까. 그런 특별한 요소가 이 소설에는 분명 있다. <옥스포드 살인 방정식>의 기예르모 마르티네스 작품. 

주인공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뜻밖에도 십년전, 잠시 주인공에게 타이피스트로 고용된 적이 있었던 '루시아나. B' 라는 이름의 여자. 주인공과 루시아나의 인연은 이렇다. 십년전 소설가인 주인공은 팔을 다치는 바람에 글을 쓸 수 없어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이 때 마침 해외에 나가 부재중이였던 당대 최고이자, 천재, 괴짜작가인 클로스터의 타이피스트였던 루시아나를 출판사의 소개로 임시로 고용하게 된다. 젊고 매력적인 루시아나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애틋한 감정을 가지게 된 주인공은 어느날 키스를 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크게 반발하면서 그대로 작업실을 나가 버렸다. 그것이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의 전부. 

그렇게 잠깐의 인연으로 스쳐지나갔던 그녀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지난 십년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범인은 대작가인 클로스터라는 황당한 말과 함께. 주인공의 집을 방문한 그녀는 예전에 싱그러운 모습을 도저히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흉하게 변해버린 외모와, 잔뜩 겁에 질려 히스테릭한 상태였다. 주인공과 헤어진 다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클로스터의 인생에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십년이라는 세월동안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씩 사고사로 목숨을 잃었다. 맨 처음은 그녀의 남자친구, 그리고 부모님, 오빠까지. 남은것은 그녀와 젊은 시절의 그녀를 쏙 빼닮은 여동생뿐. 루시아나는 그 일련의 사고사가 모두 클로스터의 교묘한 계획임에 틀림없다면서, 클로스터가 어떤 식으로 사고사로 위장하여 살인을 저지를수 있었는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클로스터를 만나 자신에게 그런짓을 하는 이유를 물어봐 달라고 한다. 주인공은 마지못해 클로스터를 찾아간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사건의 해결이라는 요소가 없다. 보통의 추리소설이라면 일단은 사건이 발생하고, 탐정역을 맡은 등장인물중 누군가가 단서를 모으고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게 정석이자, 당연한 과정이다. 방법이나 기교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독자는 난해하게만 보이던 사건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감탄하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살인자의 책>에는 그런 탐정역을 하는 인물이 없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철저하게 독자의 대리인 같은 역할을 한다. 루시아나와 클로스터, 두 인물을 왔다갔다 하면서 독자를 대신해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하는 역할. 두 인물에 모순된 주장 사이에서 주인공은 종종 갈등을 하지만, 그것은 곧 그 시점에서 독자가 느낄 갈등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그런 갈등은 그것 자체로 어떤 결론을 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의 독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환기시키기 위한 시츄에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어느 시점의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대립하고 있는 두 인물이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상반된 견해. 그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관찰하고, 거기에 양면성이라고 할만한, 각 인물의 숨겨진 면을 교묘하게 보여주면서, 거기에서 받게되는 인상으로 독자가 자신만의 심증을 만들어가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 굉장히 치밀하다. 사람을 믿을 것인가, 상황을 믿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철학과 기하학에 근거한 확률을 신뢰 할 것인가. 모든 것은 독자의 몫이다. 굳이 이 책의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직접 중재자가 되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입장, 혹은 판사나 배심원이 되어 판결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는 것 같다. 다른 소설에서는 독자가 등장인물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가는 입장인데 반해서, 이 책에서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당히 능동적인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런만큼 그 흡입력도 대단하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판단해야 하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증거가 확실하게 존재할리 만무하다. 결국은 판결을 내리는 자가 어떤 인상을 받고 어느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게 되느냐가 큰 영향을 끼칠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법적인 시스템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변호사의 실력에 따라 판결에 차이가 나는데서 보듯이 역시 인상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 판결이 과연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죄를 짓고도 버젓이 돌아다니는 사람들, 혹은 저지르지도 않은 죗값을 억울하게 치루고 있는 사람들이 상상이상으로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일이라도 벌어질수는 있다. 보이지 않는 진실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그 어떤 일중 하나를 찍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 같다. 여운이 오래 남는 소설은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난 뒤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리를 굴리게 한 책은 없었다. 내가 간과한 부분은 없는지, 혹여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은 어떤 결론을 내릴런지, 다른 독자의 감상이 너무 궁금하다. 읽은 사람끼리 한데 모여서 토론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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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JUSTICE 1 - 정식 한국어판 ㅣ 시공그래픽노블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 외 그림,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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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설마 한국어로 그들을 만날수 있는 날이 올줄이야. 만약 어렸을 적에 이 책이 나왔다면 나는 반쯤 까무러쳤을지도 모른다.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그린 랜턴, 플래시, 아쿠아맨, 마샨 맨헌터, 호크맨, 아톰, 그린 애로우......하악하악. 이 쟁쟁한 수퍼 영웅들을 각각의 작품에서 따로따로 보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곤 하는데 이렇게 모듬으로 나와주니 더이상 말할것도 없다. 가령 일본식 로봇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퍼로봇대전 시리즈에 열광하듯, DC의 영웅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야말로 선물도 이런 큰 선물이 없다. 그런데 이쯤에서 드는 의구심 하나. 이렇게 원래 따로 기획된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을 하나로 엮어놓으면, 각각의 세계관이 다르고 스토리가 다른 캐릭터들의 개성을 죽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점. 그리고 아무래도 이벤트성이 짙게 느껴지는 만큼 스토리의 치밀함이나 그 깊이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 

아니요. 솔직히 지금까지는 이 책이 기존의 캐릭터들의 인기에 편승한 짬뽕 만화책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DC의 수퍼영웅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그 열망하는 마음 만큼 마음대로 만나 볼 수 있는 분들이 아니였기 때문에, 속시원하게 다가갈수 없었던 그들을 한꺼번에 만날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펼쳐든 책이지, 애초에 스토리까지 기대한건 아니다. 그렇지만 막상 펴들고 보니 저스티스의 스토리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본래 단일작품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치밀하고 훌륭하다. 각자 다른 작품에서 활약하던 영웅들간의 위화감이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정작 수퍼 히어로들중에서도 조금은 생소한 캐릭터들이 이 안에는 포함되어 있고,특히 악역을 맡고 있는 수퍼빌런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각 권의 뒤쪽의 삽화와 함께 각 캐릭터들의 자세한 신상과, 성장배경, 사상등이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어서, 수퍼히어로들과 더불어 마치 이전부터 잘알고 있던 익숙한 존재들처럼 느껴진다.  

중후하고 치밀한 미국식 스토리도 매력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은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이 최대치로 발휘되고 있는, 정말이지 눈이 휘둥그레질 것 같은 작화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그것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최고의 그림들을 만나볼수 있다. 그야말로 그래픽 노블이란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릴수가 없다. 한장한장 감상하면서 페이지를 넘길때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만큼 황홀하다. 권선징악의 구도. 선과악을 명확하게 선을 긋는 수퍼히어로물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하고는 있지만 그건 뭐 그것대로 좋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인거니까. 나는 그런 단순한 구도까지 포함해서 수퍼히어로물을 동경하는거다. 이런 동경하는 영웅들을 최고의 작화로 만나볼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소장가치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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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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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와 아키. 같은 지붕아래에서 몇년 동안 함께 살아 온 둘은 지금 이별을 하려고 하고 있다. 계기는 일년전의 사건. 여행지에서 둘이 고용한 가이드의 추락사. 남자의 죽음은 사고로 처리되었지만, 그 배후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사고였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밤이 깊어가는 속에서, 그들은 진실과 마주하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설속에서의 근친간의 로맨스란 요소는 상당한 매력으로 비치는 듯하고, 아무래도 온다리쿠도 그 중 한사람이 아닐까 싶다. 온다리쿠는 기존 작품에서도 혈연 관계가 있는 남녀의 미묘한 거리감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형시켜 그려 왔지만, 이번에는 사촌지간도 아니고, 양부모와 자식도 아니고, 정말로 진짜 남매지간이라는 금단의 관계. 

이만큼 서로를 의식하고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극한까지 팽팽하게 긴장된 실은 언제라도 끊어질수 있듯이, 계속해서 높은 부하가 걸려오는 둘의 정신 상태는 붕괴 직전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사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채, 이별하기로 결정한 둘은 마지막 하룻밤 동안 결말을 짓기 위해 마주하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그런 이야기.

온다리쿠의 작품이 자주 그렇듯이 이번 작품도 확실히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인 연극의 체재. 출연자는 두 명의 남녀. 한 남자의 죽음을 두고 서로 상대를 의심하고 탐색하는 하룻밤은 정말이지 심리전 그 자체다. 함께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서로의 심리를 탐색하는데 써버린다. 단지 하룻밤의 일일뿐인데도, 터무니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두 명의 미묘한 감정의 움직임이 교묘하게 그려져 있어서 시종일관 조마조마. 읽고 있자니, 실로 온다리쿠다운 작품이 아닌가. 이 둘의 관계가 보통의 연인 사이였다면, 이렇게 긴박한 상태로까지 되지는 않았을것이다.

뒤얽혀 있던 기억의 실이 조금씩 풀려, 진상에 다가가는 과정의 묘사는 역시 대단하다. 작품으로서는 등장 인물도 적고 복잡하지 않아, 산뜻하게 읽혀지기 때문에, 나중에 기억에 남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온다리쿠의 소설적 기교가 응축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미스테리로서도 드문 스타일이고. 거의 확실하게 진상이 밝혀지므로, 뭉게뭉게 애매한 감도 별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이것이 백프로 진상이다!' 라고는 단정짓기 힘들 것 같은 것이 또 온다리쿠다운 부분지만.... 그렇지만 아마도, 한쪽의 인물이 생각한 진상이 진실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단지, 이 진실은 나로서는 별로 현실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왜 갑자기 제 삼자가 튀어 나와버리는 건지. 거기에 대한 복선은 좀 더 있었던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로 서로 견제하면서, 조금씩 상대의 진실을 끄집어내 가는 대화는 정말 희곡의 그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진정한 끝이 아니라 1막이 내린 듯한 감각이었다. 클라이막스도 그야말로 연극의 라스트 같은 연출. 그건 그렇고 마지막까지 와보니 첫인상과는 달리 아키가 굉장히 무서운 여자처럼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두 사람 모두 대단히 머리의 회전이 빠른 인상이지만, 그럼에도 둘의 심리전은 압도적으로 아키쪽에 무게가 쏠려있다. 특히 귀고리의 반쪽에 대한 고찰은 매우 흥미로웠다.

관계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아키의 깨끗한 변심. 역시 갑작스런 현실과 마주쳤을 때, 한발 빨리 냉정하게 되는 것은 역시 여자 쪽이려나. 히로가 아키가 아닌 누군가와 결혼 해서 가정을 이룬다고 해도, 역시 히로의 마음 속에는 아키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아키는 깨끗하게 히로를 '과거의 인간' 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건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연애소설적인 면으로서는 온다리쿠의 작품들 중에서 단연 선두. 그동안 이 사람의 작품에서는 연애라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피해간다는 느낌조차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의외이자 놀라움이었다. 그렇지만, 두 주인공 모두 마지막까지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역시 온다리쿠 답기도 하고, 반대로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랄까. 온다리쿠가 쓴, 좀 더 끈적끈적한 이야기도 한번쯤은 읽어 보고 싶다. 세밀한 심리 묘사, 비유와 단어의 선택은 더욱 능수능란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밤에서 아침으로 변해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둘을 묶고있던 연애의 마력이 서서히 풀려 간다.

표지와 제목의 싱그러운 분위기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긴박한 심리를 그린 미스테리. 역시 온다리쿠 다움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새벽은 불문곡직하고 밤을 비집어 열어버린다', '아침은 언제나 뭔가를 단념하게 한다'. 체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개를 둘이 끌어안고 있는 조용한 클라이막스가 마음에 든다. '노스탤지어의 마술사' 라는 작가의 명성답게, 한 낮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남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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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코치 기적의 영어학습법
박정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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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은 도저히 어떻게 할수가 없다. 영어에 소질이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손 놓은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왠지 기적의 영어학습법 운운하는 거창한 제목을 보면 솔깃해지고 만다. 그래 소질이 없던게 아니고 방법에 문제가 있는거다. 나한테 맞는 진짜 올바른 영어학습법이 분명히 있을거라는 생각이 은근슬쩍 고개를 쳐들고 마는 것이다. 어쨓든 그러한 유혹으로 읽게 된 책. 제목 앞에 붙은 박코치라는 이름도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데 한 몫했다.

박코치라는 강사를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영어책이라기보다는 스포츠를 연상케 하는 코치라는 호칭이 거리감을 없애주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알고보니 이 사람 진짜 체대출신이더라. 변변치 않은 영어실력의 체대 졸업생이 단 이년만에 억대연봉을 받는 인기 영어강사가 된 특이하고도 놀라운 경력의 소유자.

원래 어학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짧은 시간동안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이뤄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 실린 박코치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사람은 그런 부류가 아니였다. 한참 취업에 신경써야할 무렵 학력과 부족한 영어실력때문에 많이 고민한 모양이더라. 마음먹고 죽어라고 팠는데도 영어실력이 별로 늘지 않을때의 좌절감과 시행착오는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그러던 사람이 어떻게 그 짧은 시간동안에 영어강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수강생을 거느리고 있다는 최고의 강사가. 이 책은 한마디로 이 언뜻 들어서는 믿기 힘든 결과를 만들어낸 한 영어강사의 영어공부의 대한 경험담과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자신의 영어공부 방법을 알고 실천하면 영어를 잘할수 있다는, 특히 영어때문에 죽쓰는 사람이라면 귀가 솔깃해지는 그런 이야기. 

책의 내용은 저자가 영어공부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과정과 잘못된 공부방법의 원인과 진단, 영어를 잘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들, 그리고 자신의 방법의 효과가 어떻게 입증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읽다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아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구나. 이런식으로 했어야 하는거구나. 혹은 나도 이렇게 해보고 싶다. 등등 그리고 나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나 할까.

물론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맞는 학습 방법은 있을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방법들 중에는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방법들도 상당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혹 다 아는 내용을 무슨 비법이라고 저러냐고 조금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 알면서도 그동안 노력에 맞는 결실을 이루지 못한 것은 왜일까. 그저 단순히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그동안 영어에 쏟아부은 시간이 너무나도 많다. 

하나하나의 방법을 어떤식으로 조합해서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실력을 향상시킬수 있느냐 그것이 핵심이 아닐까. 머리속에 명심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그것을 공부에 올바로 적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면 그건 무용지물이다. 저자는 저자 자신으로서 이 책에 실린 방법의 효율성을 증명하고 있고, 자신의 수강생들의 성취도로서도 분명 그 방법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기적의 영어학습법이란 제목을 거창하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기적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야 그건 거창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기적을 기적이라고 하는것일 뿐이니까. 그리고 나에게 영어를 잘하게 되는건 곧 기적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야기이지만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노력에 효율적이고 뛰어난 방법이 뒷받침된다면 기적이 이루어질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내 영어실력이 급상승할리는 없겠지만, 바로 이거다 하는 확신은 얻을 수 있었던만큼, 나에게는 적어도 새로이 도전하는 계기가 되어준 가치있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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