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히로와 아키. 같은 지붕아래에서 몇년 동안 함께 살아 온 둘은 지금 이별을 하려고 하고 있다. 계기는 일년전의 사건. 여행지에서 둘이 고용한 가이드의 추락사. 남자의 죽음은 사고로 처리되었지만, 그 배후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사고였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밤이 깊어가는 속에서, 그들은 진실과 마주하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채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설속에서의 근친간의 로맨스란 요소는 상당한 매력으로 비치는 듯하고, 아무래도 온다리쿠도 그 중 한사람이 아닐까 싶다. 온다리쿠는 기존 작품에서도 혈연 관계가 있는 남녀의 미묘한 거리감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형시켜 그려 왔지만, 이번에는 사촌지간도 아니고, 양부모와 자식도 아니고, 정말로 진짜 남매지간이라는 금단의 관계. 

이만큼 서로를 의식하고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극한까지 팽팽하게 긴장된 실은 언제라도 끊어질수 있듯이, 계속해서 높은 부하가 걸려오는 둘의 정신 상태는 붕괴 직전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사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채, 이별하기로 결정한 둘은 마지막 하룻밤 동안 결말을 짓기 위해 마주하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는 그런 이야기.

온다리쿠의 작품이 자주 그렇듯이 이번 작품도 확실히 무대 위에서 행해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인 연극의 체재. 출연자는 두 명의 남녀. 한 남자의 죽음을 두고 서로 상대를 의심하고 탐색하는 하룻밤은 정말이지 심리전 그 자체다. 함께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서로의 심리를 탐색하는데 써버린다. 단지 하룻밤의 일일뿐인데도, 터무니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두 명의 미묘한 감정의 움직임이 교묘하게 그려져 있어서 시종일관 조마조마. 읽고 있자니, 실로 온다리쿠다운 작품이 아닌가. 이 둘의 관계가 보통의 연인 사이였다면, 이렇게 긴박한 상태로까지 되지는 않았을것이다.

뒤얽혀 있던 기억의 실이 조금씩 풀려, 진상에 다가가는 과정의 묘사는 역시 대단하다. 작품으로서는 등장 인물도 적고 복잡하지 않아, 산뜻하게 읽혀지기 때문에, 나중에 기억에 남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온다리쿠의 소설적 기교가 응축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미스테리로서도 드문 스타일이고. 거의 확실하게 진상이 밝혀지므로, 뭉게뭉게 애매한 감도 별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이것이 백프로 진상이다!' 라고는 단정짓기 힘들 것 같은 것이 또 온다리쿠다운 부분지만.... 그렇지만 아마도, 한쪽의 인물이 생각한 진상이 진실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단지, 이 진실은 나로서는 별로 현실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왜 갑자기 제 삼자가 튀어 나와버리는 건지. 거기에 대한 복선은 좀 더 있었던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로 서로 견제하면서, 조금씩 상대의 진실을 끄집어내 가는 대화는 정말 희곡의 그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진정한 끝이 아니라 1막이 내린 듯한 감각이었다. 클라이막스도 그야말로 연극의 라스트 같은 연출. 그건 그렇고 마지막까지 와보니 첫인상과는 달리 아키가 굉장히 무서운 여자처럼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두 사람 모두 대단히 머리의 회전이 빠른 인상이지만, 그럼에도 둘의 심리전은 압도적으로 아키쪽에 무게가 쏠려있다. 특히 귀고리의 반쪽에 대한 고찰은 매우 흥미로웠다.

관계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아키의 깨끗한 변심. 역시 갑작스런 현실과 마주쳤을 때, 한발 빨리 냉정하게 되는 것은 역시 여자 쪽이려나. 히로가 아키가 아닌 누군가와 결혼 해서 가정을 이룬다고 해도, 역시 히로의 마음 속에는 아키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아키는 깨끗하게 히로를 '과거의 인간' 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건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연애소설적인 면으로서는 온다리쿠의 작품들 중에서 단연 선두. 그동안 이 사람의 작품에서는 연애라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피해간다는 느낌조차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의외이자 놀라움이었다. 그렇지만, 두 주인공 모두 마지막까지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역시 온다리쿠 답기도 하고, 반대로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랄까. 온다리쿠가 쓴, 좀 더 끈적끈적한 이야기도 한번쯤은 읽어 보고 싶다. 세밀한 심리 묘사, 비유와 단어의 선택은 더욱 능수능란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밤에서 아침으로 변해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둘을 묶고있던 연애의 마력이 서서히 풀려 간다.

표지와 제목의 싱그러운 분위기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긴박한 심리를 그린 미스테리. 역시 온다리쿠 다움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새벽은 불문곡직하고 밤을 비집어 열어버린다', '아침은 언제나 뭔가를 단념하게 한다'. 체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개를 둘이 끌어안고 있는 조용한 클라이막스가 마음에 든다. '노스탤지어의 마술사' 라는 작가의 명성답게, 한 낮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남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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