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의 여름
미쓰하라 유리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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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제작인<열여덟의 여름>을 포함해서, 꽃을 모티브로 한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으로 알게 된 <미쓰하라 유리>라는 작가의 작품집입니다. 미스터리로 소개되고는 있지만, 특별히 미스터리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인상에 남았던 것은, 4편의 단편의 주인공이 모두 남자라는 사실. 책표지가 주는 인상만으로 멋대로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쩐지 의외였습니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이렇게 부드러운 느낌을 줄수 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특별히 임팩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아주 청량감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록된 어느 작품에나 감돌고 있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느낌이... 매우 기분 좋았습니다. 분명 작가는 이런 인품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묘하게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 버리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와, 연상의 여성이 만들어내는 한 여름의 이야기 <열여덟의 여름>. 아내를 잃은 서점 직원이 사랑에 빠지게 되어, 8살인 아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하는 <자그마한 기적>. 은사의 아내를 자신의 형이 사랑하는 듯하다. 동생의 입을 통해 듣는 <형의 순정>. 이 <형의 순정>에 나오는 조금(많이) 특이한 형의, 전혀 의외의 명대사.

"원래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야. 타인을 위해서라고 해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거지. 누군가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슬퍼 하는 것을 보면 자기가 괴롭기 때문이야. 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자기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란 말이야.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단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돼. 그걸 잊으면, 나는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해줬다는 우월감이 생겨나거든.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위해서 해준게 없다면서 원망을 품게 되지. 정말 바보같은 이야기야."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입니다. 움찔했습니다. 듣고보니 정말로 바보같은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사를 언제까지고 잊지않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리고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이노센트 데이즈>. 아내의 친정에서 운영하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주인공의 앞에, 제자였던 여자아이가 어느날 6년만에 갑자기 모습을 나타냅니다. 6년전, 그녀에게 닥쳐 온 꺼림칙한 사건의 진상은 과연.....? 이런 느낌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작품이 가장 미스터리색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도 꽤 질척질척하고,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분위기는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신기합니다. 선생님인 주인공의 자상한 마음씀씀이가 어두운 분위기를 중화시키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나팔꽃, 금목서, 헬리오트로프, 협죽도. 꽃에 대한 지식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입니다. 더불어 책을 덮고 난뒤의 느낌도 좋았습니다. 읽는 사람마다 여러가지 감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작품집이 될 것 같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 책과 만나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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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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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경고
 이 다음부터는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인 일이 발생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으신 분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

살인사건을 소재로, 그것을 둘러싼 인간 관계나 인간 심리, 사회문제 등을 깊게 파고 드는 작품도 좋아하지만, 현실에서 한발짝쯤 벗어난 철저하게 미스터리를 위한 미스터리, 다른 작품의 오마주가 가득하고 이과 계열의 문제를 풀 듯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추리게임을 즐기며 진행해 나가는 이른바 본격계열의 추리소설도 정말 좋습니다.

시급 11만 2000엔의 구인 광고를 보고 모여든 12명의 사람들. 그들은 주최측으로부터 어떤 <실험>을 위한 아르바이트라는 설명을 듣지만, 그 실험이란 다름아닌 외부로부터 단절된 수수께끼의 건물 '암귀관' 내에서의 살인 게임이였습니다. 라운지의 테이블 위에는 인원수 만큼의 인디언 인형, 개인실에는 한사람당 각각 다른 한가지의 무기, 의미 심장한 십계, 각 개인실의 방문은 잠그는 것이 불가능하고 복도는 원형으로 휘어져 있어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살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암귀관 내에서의 모든 행동은 이 실험의 주최측이 24시간 계속해서 관찰하게 됩니다.

소설속에 나오는 아이템들은 죄다 미스터리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도구들이므로, 등장 인물들 안에서도 미스테리 매니아인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다릅니다. 예를 들자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니코틴' 에 대해서 보통 사람이라면 우선적으로 담배의 관련된 정보를 떠올리게 되겠지만, 미스터리를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각 알아채게 되는 것 처럼 말입니다.

특이하게 설계된 암귀관의 형태라던가 배식 방법등에서도 그것 자체만으로 그 특별함에 담긴 의미를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참가자들보다 한 걸음 유리한 입장이지만, 또 역으로 말하면 선입관에 사로잡히기 쉬운 입장이기도 합니다. 후반부에 그런점이 잘 반영된 장면이 있어서 '오옷~' 하고 순간 감탄했습니다. (속으로, 입으로 직접 소리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본격추리소설의 매니아라면 본능적으로, 어떤 식으로도 진실을 부인할 수 없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논리를 찾아내려고 하고, 그것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보기좋게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범인을 지적하거나 추리를 피력하는 행위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미스터리 팬처럼 철저하게 심증을 배제하고 완벽한 논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부조리한 상황에 갑자기 던져진 사람들이라는 설정도 그렇지만, 악취미라고 밖에는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스터리에 집착한 이 특별한 실험에 매료되서 그야말로 쭉쭉 읽어나갔습니다. 여러가지 룰이 있습니다. 범인을 지적하는 탐정역이 되면 시급이 3배로 뻥튀기 된다던가, 그 때 탐정역인 사람에게 조수로 지명되면 시급이 1.5배가 된다던가, 한사람 죽일때마다 2배가 된다던가하는.

그렇게 구속된 상황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 고액의 시급을 버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장 안전하고 건전한 방법으로부터 어쩔수 없이 멀어져 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도 관심있게 볼만한 부분입니다. 이 아르바이트에 모인 등장인물들의 배경이,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보여지지 않는 것은, 순수하게 이 암귀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일까요. 불필요한 개인사는 가차없이 빼버리고 철저하게 추리게임만 남겨놓았습니다. 원한이나 애정관계라던지, 그만둘래야 그만둘수없는 사정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에 감정에 호소 할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그저 이야기에 진행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만 국한되고 있습니다. 이유 같은 것 묻지 말고 이 난제를 능력껏 해결해 봐라 하는 느낌. 오히려 그런점이 시원시원합니다. 최근 그런 작품을 읽지 못해서 더 반가웠습니다.

<THE INCITE MILL> 은 본래는 이 작품의 부제입니다. 원제는 <인시테미루, インシテミル> 역자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미스터리에 淫してみる 빠져보자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클로즈드 서클'이나 '무슨무슨 관' 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두근두근하는 사람에게라면 그것만으로도 일단 추천을 해야겠네요. 단지, 주인공이 너무 낙관적이어서, 간혹 긴박감이 사라지곤 하는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굉장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후속편을 암시하는 것이려나요. 제발 그런것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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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나누시 후계자, 진실한 혹은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소연 옮김 / 가야북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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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케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 하타케나카 메구미의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원제: 만마코토 - まんまこと)입니다. 137회 나오키상 후보작. 이 소설에는 혼령이나 요괴는 나오지 않지만, 이야기의 분위기나 구성면에서 샤바케 시리즈와 많이 흡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대는 물론 에도, 주인공은 간다 부근의 8개의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나누시의 아들 마노스케. 나누시라는 직책은 몇개의 마을을 다스리는 하급관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저는 촌장과 비슷한 이미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다의 나누시 자리는 세습되며, 마노스케도 머지않아 아버지인 다카하시 소에몬의 뒤를 이어, 장차 나누시가 될 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마노스케가 말입니다. 어릴 적에는 실로 성실하고 품행이 방정해서 주위의 평판이 아주 좋은 젊은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열여섯살을 지나면서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 버렸다고 하네요. 20살하고도 2살이나 더 지난 지금은, 매사에 태평하고 느긋한 백수건달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듯 합니다. 그런 어느 날의 일입니다. 마노스케의 절친한 악우이자, 이웃마을 나누시의 아들인 세이주로가 마노스케에게 도움을 청해 옵니다. 바람둥이인 세이주로가 처해있는 이 난감한 상황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마노스케 본인의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왠걸 마노스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아가씨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 마노스케는 순간 당황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상대인데다가, 아가씨의 거짓말도 곧바로 드러나 버립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아가씨에게도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모양. 나누시가 하는 일중에는 공동주택 관리인의 힘으로는 수습하기 역부족이고, 그렇다고 손이 부족한 봉행소로 보낼 정도는 못되는 사건들을 중간에서 조정 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때마침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대신해 마노스케는 이 뱃속의 아이의 아버지가 과연 누구냐 하는 사건을 떠맡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누시 대리 마노스케는 첫 중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판하는 본인이 느긋한 탓인지, 악인에게 확실하게 죗값을 치루게 하는 권선 징악의 판결보다는, 조금 현실과 타협하거나 꾀를 부려 변칙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그것이 의외로 솔로몬의 지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현명하기도 해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 중재라고 해야 할까, 모든 사람이 좋은 윈윈 전략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이 맞아 떨어져 읽고 나면 흐뭇해지는 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샤바케와 비교하면, 응석받이라고 할까 고생을 모르는 도련님이라는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은 주인공이 22살의 성인이기 때문에, 연애 관계등을 포함한 어른들의 미묘한 심리가 자주 그려지고 있어서 샤바케와는 또다른 맛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앞으로 계속해서 마노스케의 이야기가 시리즈물로 나와준다면, 이후의 매력있는 두 아가씨(혹은 한명의 아가씨와 한명의 아줌마), 오유나 오스즈와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매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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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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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지나가면서 울리는 기적소리에 조용하던 양지마을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 기적 소리가 아니였다면 백양나무 가지는 똥친막대기 신세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논두렁 옆으로 소를 몰고 가는 광경. 초가집, 외양간, 측간. 개울가를 뛰어다니며 개구리를 잡는 아이들. 어느 정겨운 시골 마을의 풍경은 그 묘사만으로도 가슴이 푸근해지는 그런 느낌이다. 

예전에는 내 안에도 이런 풍경들이 매우 익숙하던 때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시골마을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어릴적에는 이런 책을 참 지겨울 정도로 많이 읽었더랬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의 책은 전부 배경이 시골마을인가 하고 생각했을까. 때때로 디즈니나 서양작가들의 동화를 읽을때면 참 색다른 별미를 즐기는 그런 기분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백양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한 어린 가지의 이야기를 그린 이 한권의 그림소설을 읽고, 나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처음 접하는 것에 대한 낯설음 때문이 아니고,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하지만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감정들과의 갑작스런 상봉이 주는 놀라움이였다. 눈앞의 모든 광경이 일순간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잊고 있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던 오랜 벗과 갑작스레 해후한 것 처럼. 그동안 오락적인 것들, 자극적인 것들만 즐겨찾던 결과이다. 무엇이든 한쪽에만 편중되는 것은 사람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것 같다. 아 이런 글도 있었지 하는 애틋함.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태어나서부터 알게 모르게 가슴속에 담고 살아가게 되는 노스텔지어로 가득찬 따뜻한 책. 한편의 동화같으면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성우의 나레이션처럼 정감어린 글들이 또한 가득하다. 예쁜 글을 더욱 빛내주는 퀄리티 높은 삽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이 베어 나오는 것만 같다. 한번도 가본적 없는 시골길을 걸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느끼게 되는 편안함. 언젠가 분명히 와본것처럼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우리네 정서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친숙함. 똥친 막대기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런 곳이다. 이 어린 똥친막대기는 언젠가 분명히 멋진 백양나무로 자랄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재희의 모습을 언제까지고 내려다 볼 수 있으리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편하게 권할수 있는 이런책은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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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고래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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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상 수상작가인 츠지무라 미즈키의 세번째 작품. 데뷔작인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가 고등학생의, 두번째 작품인 <밤과 노는 아이들>이 대학생들의 학창 생활과 사적인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었다면, <얼음 고래>에서는, 신진 여류 사진가인 '아시자와 리호코'의 고교시절을 그리고 있다.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생활과 내면의 갈등을 그려내는데에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던 작가의 특징은 그대로이지만, 앞선 두 작품이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데 반해서, 이 책에서는 어떤 사건들을 겪으면서 주인공인 리호코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모습이 주가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는 SF적인 요소, 미스터리적인 요소등 다양한 장르의 특징이 공존하는데다가, 후지코 F 후지코(도라에몽의 원작자)라는 대작가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기도 한, 조금 이상한 SF(sukoshi-fushigi, すこし ふしぎ)소설이지만, 어쩐지 나는 보통의 성장소설로서 이 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가의 장점인 십대들의 감정 묘사는 더욱 현실적이고 세밀해졌다. 솔직히 다른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고 순수하게 청춘소설이나 성장소설로 썼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데뷔작을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작가의 작풍은 미스터리와 아주 궁합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작가가 쓰는 아픈 심리 묘사는 너무 진지하고 소녀취향인 면도 있어서 조금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어서, 현실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상황에 놓였을 때에야말로 비로소 그 예리함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다. 그러나 얼음고래를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묘사 능력은 이미 어느 한정적인 상황에서만 제대로 발휘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굳이 미스터리나 SF라는 형식을 빌려오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의 작가로 성장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츠지무라 미즈키가 그리는 미스터리도 읽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능력은 대단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데뷔작인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만 해도 적당히 참신하고 재미있는 소재였지만, 두번째작품이나 이 소설에서의 미스터리적인 요소는 그다지 눈에 띄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차라리 미스터리를 떼어내고 순수하게 강점인 소설속 인물들의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려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여고생인 주인공의 특유의 생각하는 방식을 세밀하게 그리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의해 그녀가 잘못된 것들을 깨닫거나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거나 하는 청춘 소설, 혹은 성장소설을 기본으로 거기에 약간의 미스터리 적인 요소가 덧입혀진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대로 크게 감명깊지는 않지만, 청춘소설, 성장소설로서는 상당히 좋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세세한 부분들을 제외하면 소설로서의 전개는 최상이다. 특히 주인공과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의 관계가 부각되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을 느낄수 있었다. 아마 내가 어린 소녀였다면 어쩌면 이부분에서 실제로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도라에몽의 주머니속 신비한 도구들을 매개체로 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법도 꽤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참신한 요소이다.

심리 묘사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성향을 가진 주인공이 주위와의 작은 위화감에 사로잡혀 갈등하는 모습을 더이상 세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려내고 있다. 스스로 생각이 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 게다가 자신이 머리가 좋다는 점까지 잘 알고 있는 경우에,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한 발 앞서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만의 생각과 척도에 얽매여 무의식 중에 타인을 무시하고 경시하게 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리호코를 응원하는 친구로서의 시선과 그녀의 성장을 바라는 어른의 시선 양쪽 모두를 경험 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고민하는 리호코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내가 리호코 또래의 고교생 친구가 되어 듣고 있는 것처럼 리얼리티가 느껴지지만, 그녀가 자진해서 위험한 상황 속으로 말려들어 가는 장면과 마주하면, 그때는 또 내가 어른의 입장에 서서 한 소녀의 심리적인 방황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물에 감정에 깊이 몰입하면서도 결코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소설가로서는 노련한 경지에 도달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작품을 쓰던 당시에 불과 이십대 중반이였던(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작가의 젊음이 발휘되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 왔기에 그 나이에 이런 역량을 지닐수 있게 되었는지, 조금 불가사의 (SF sukoshi-fushigi)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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