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 나의 뱀파이어 연인 ㅣ 트와일라잇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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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재혼을 계기로, 벨라는 아버지가 있는 비와 안개의 마을 포크스로 이사 온다. 사람들과의 교제에 서투른 벨라는, 전학온 학교에서 잘 지내게 될 수 있을까 불안해 하지만 다행히도 친구들은 그런 벨라를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단 한명,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에드워드 컬렌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상대에게서, 이유도 모르고 매번 노골적인 적의가 담긴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 때문에 우울해 하고 있던 벨라는 어느날 우연히 에드워드의 놀라운 힘을 목격하게 된다.

인간사냥을 금지하는 흡혈귀 일족의 에드워드와 인간관계에 서투른 소녀 벨라의 금단의 사랑이야기. 재미있었다. 서로 끌리면서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둘의 관계에 기분 좋은 조바심을 같은 것을 느꼈다. 사람의 피는 빨아먹으면 안된다는 규칙을 애써 지키고 있는 에드워드로서는 달콤한 벨라의 체취를 견뎌낸다는게 참 보통 힘든 일이 아닐텐데, 그런데도 벨라의 곁에 있고 싶어하는 그 기분을 왠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스토커에 가까웠던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분위기 좋으니까 이건 일단 패스.

한편 처음에는 에드워드의 적의에 겁을 집어먹고 있던 벨라가 언제부턴가 에드워드에게 끌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꽤 신선하다. 서로 가까워져 가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규칙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혀서 고뇌하거나 하면서도 점점 정이 깊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쩔때는 바보커플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김없이 히죽히죽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걸 보면 나는 필시 이 바보같은 사랑이야기가 못견디게 재미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자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기같은게 생겨나는건 아마도 처음부터 이 책 트와일라잇에 대해 소녀취향의 망상이야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탓일까.

사실 다 읽고 난 지금도 꼭 편견이였다고 할 수 만은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재미있었다는 것만은 인정할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어렸을 때 사내놈이 그런것 가지고 논다고 놀림받을까봐 옆동네까지 원정가서 종이 인형을 사다 숨겨놓고, 집에 아무도 없을때 몰래 꺼내서 속옷차림의 여자아이 그림에다가 이 옷 저옷 입혀보던 그런 기분... 이라고 하면 너무 멀리까지 온 것 같고, 다 큰 어른이 아직도 게임이나 하고 앉아있네 그런 시선을 받기 싫은 기분? 뭐 이정도쯤 되는것 같다. 소설책 한권 읽으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아무튼 마음만이라면 더이상 나무랄 데 없는 커플이지만, 일단 종족의 차이에서 오는 갭을 어떻게 매꿀것인가 그게 관건이다. 앞으로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어 갈런지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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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서스펜스 컬렉션 2 ㅣ 밀리언셀러 클럽 95
셔린 매크럼 외 지음, 에드 맥베인 엮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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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명 작가 10인의 중편들을 모아놓은 미스터리 작품집. 몇년전 타계한 애드맥베인이 기획한 것이라고 한다. 서문에서는 에드맥베인이 직접 이야기하는 이 책에 기획의도에 대해 들을 수 있고. 각 작품의 첫장에서도 또한 에드맥배인이 직접 해당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전체 3권 중 2번째권에 해당하는 이 책에는 스티븐킹, 에드 맥베인, 셔린 매크럼, 월터 모슬리 4명의 작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들이 남긴 것들 - 스티븐 킹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은 달라지게 마련이며, 우리가 쥐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제로는 우리를 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911 테러사건으로 직장 동료를 한꺼번에 잃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스털리. 그런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죽은 동료들의 낮익은 물건들이 스털리의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선글라스, 골프채, 방귀쿠션등등...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삶과 죽음, 죽은이들에 대한 스티븐킹식 고찰을 맛볼수 있다. 네편의 수록작중 가장 짧은, 단편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킹 특유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오로지 증오뿐 - 에드 맥베인
표지에 그려진 바로 그 택시가 나오는 이야기. 아랍계 회교도 택시 운전사들이 연달아 피습을 당한다. 운전사를 살해한 뒤에는 택시의 앞유리창에 어김없이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 그림을 남겨놓고 가는 이 범인은 과연 누구인지. 87분서 형사들의 범인을 쫓는 과정이 그려진다. 탐문수사가 주가 되는 수사반장식 스토리를 즐길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회교도인들의 삶과, 그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간접적으로 느껴볼수 있는 작품. 에드 멕배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과연 경찰소설의 전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체 도굴꾼 - 셔린 매크럼
"우리가 산 자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죽은 자를 해쳐야 한다네" 공동묘지에서 의학 실습용으로 사용될 시체를 훔쳐내는 흑인 노예의 이야기. 제목이나 그 자극적인 소재를 보면 얼핏 섬찟하고 혐오스러운 호러나 스플레터 계열의 이야기를 연상하기 쉽지만 의외로 가장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였다. 사명감이라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배려, 유대감, 때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미스터리 적인 요소는 약하지만 독특한 분위기로 수록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

아치 볼드 로리스, 잡히지 않는 무정부주의자 - 월터 모슬리
필경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아치볼드 로리스라는 무정부주의자를 만나 그를 위해 일하게 된 주인공. 그가 시키는 일을 하다 살인누명을 쓰게 되는 등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관두겠네 어쩌네 하지만 결국에는 이 일이 적성에 맞는 모양. 재계약에 합의한다. 솔직히 특별히 인상에 남는 부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재미없는 것은 아니고 묘한 매력이 있다. 그냥 벌어지는 사건들을 주인공의 시선으로 열심히 따라가다보면 나름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의 수록작들은 그 분량으로 봐서 중편에 속하는 작품들인 탓에, 에피타이저를 모아놓은것 같은 짧은 단편집과 비교하면 한작품 한작품이 제법 묵직하다. 장편으로만 접해오던 유명작가들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하거나, 다채로운 작품들을 한번에 만나볼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미스터리 팬들에게 흔치않은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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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
세노 갓파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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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표지에 그려진 정교하고 예쁜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인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알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해본적이 없다. 고대 인도 신화라면 확실히 관심대상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신화가 아닌 현실속의 인도라는 나라는 나에게 있어서 그저 물이 더럽고 소가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며 아직도 신분제가 남아있는 외국의 어느 나라, 정도로만 인식되어 있었을 뿐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여행기를 읽고 싶다는 기분보다는 순전히 이런 멋진 그림이 곁들여진 책을 펼쳐보고 싶다는 충동에 가까웠는데, 그런데 처음 몇페이지를 읽는동안 서서히 눈이 휘둥그레지게 하더니, 다 읽고난 지금은 정말로, 절실하게, 인도에 가보고 싶어졌다!!!

여행기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이 여느 여행기와 확연히 다른 책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무엇이 다른가 하면, 일단은 취재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얼마나 좋은 여행기가 되느냐 하는 것은 낮선곳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어디까지 충족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멋진 문장과 사진으로 여행지의 매력을 표현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저자 자신이 얼마나 호기심을 발동하고 있는가가 아닐까 싶다. 만약 독자가 그 자리에 있다면 만져보고 느껴보고 몸으로 부딛혀 보고 싶어 할 것들을 헤아려서 대신 해주는 생생한 여행기,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저자인 세노 갓파가 보여주는 이상한 호기심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일단 뭐든 들이대고 본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만져보고, 먹어보고, 자신의 몸이야 어떻게되는 말든 직접 실험해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가면서까지도! 독자의 호기심을 훌륭하게 충족시켜 준다. 읽다보면 오히려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지? 하고 그게 더 궁금해질 정도다.

인도에 가자마자 이제부터는 다 인도식으로 하겠다며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 왼손으로 밑을 닦아보거나,(익숙하지 않아 다리를 타고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데도, 한다는 말이 자기 왼손도 이제 부정해졌단다. 이런것까지 시도해보는 여행기가 과연 있을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지면으로부터 약 50미터 높이인 고푸람에 올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경험을 해보거나, 여성들이 입는 사리(인도 여성의 민족 의상)를 흉내내어 입어 보거나, 소년과 같은 호기심으로 두리번 두리번 생각나면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세노 갓파에게 설사에 걸리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설사에 걸릴 것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시험해 보고나서 "아, 역시 그렇구나..." 뭐 이런 느낌이다.

인도라는 나라는 누가 여행해도 적당히 그럴듯한 여행기를 써낼 수 있을 것 같은, 온갖 미신과 잡동사니가 혼재하는 이상하고 신기한 나라이지만, 거기에 저자와 같은 호기심으로 똘똘뭉친 사람이 뛰어들고 보니 이건 어떻게 써도 걸작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손에 스케치북을 들고 한 손으로는 잡다한 것들을 집어먹고 설사를 해가면서, 여행을, 인생을, 그리고 사바 세계를 즐기고 있다. 세노갓파의 눈으로 체험한 또다른 생생한 인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인도여행이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저자의 기분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여행 중간중간에 들려주는 인도의 역사나 사건들은 여행의 연장선같이 느껴져서 대단히 흥미롭고 결코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거기에 저자가 직접 그린 세밀한 삽화가 더해져서 유일무이하다 해도 좋을만한 훌륭한 여행기가 되었다. 거리의 풍경, 사람사는 모습, 유적, 물건들의 묘사, 보통의 여행기라면 사진이 들어가 있을 자리에는 물론이고 그저 활자에 의한 설명으로 그칠 부분에까지도 거의 매페이지 어김없이 저자가 스케치한 그림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건물의 내부모습을 그린 조감도는 그야말로 압권. 무대 미술가인 저자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무슨 인도의 설명서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언뜻 들어서는 별것 아닌것 처럼 생각될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무려 6년에 걸쳐서 장기간 연재하던 작품이라는것을 감안하면 보면 그 한점한점의 그림을 그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디테일과 아름다움은, 이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스케치북과 줄자를 든 저자가 바라보는 즐거운 인도가 치밀하게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여행의 방법이나 그 시선이 독특하다고는 하지만 타국의 문화를 가능한한 현지인의 입장에서 체험해보고자 하는 여행자의 기본만큼은 충실하고 있어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행을 끝마치고 막 돌아온 기분, 이 책을 통해서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견해도 많이 바뀌었고 정말이지 기회만 된다면 꼭 한번 인도에 가보고 싶다. 타지마할의 웅장함을 체감해 보고 싶다. 앞으로 인도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이것저것 다방면에 흥미를 가지는 잡식인들이나 디자인 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가능하면 모든 사람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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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모에 - 혼이여 타올라라!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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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의 원작소설. 남편 다카유키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버리자, 59세의 나이에 홀로 남겨지게 된 도시코는 그저 아연해 있을 수 밖에 없다. 정년퇴직한 남편과 함께 지금부터 느긋하게 살아가려고 하던 차에 설마 이런일이 일어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얼마후, 죽은 남편의 휴대전화에 어떤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남편은 죽기 전까지 이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막막해 하던 도시코는, 제멋대로인 아들, 남편의 애인이었던 여자와의 대립을 비롯해, 난생 처음 마주하게 되는 어려운 상황들을 겪으면서 지금껏 모르고 있던 자신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새로운 인생의 길 위를 한걸음씩 내딛기 시작한다.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느낌은 없지만 부부로서는 그럭저럭 서로 도와가며 가정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던 남편. 음악을 하겠다고 미국으로 떠나간 뒤 결혼해서 손자까지 태어났는데도 얼굴 한번 보이지 않다가 유산을 목적으로 귀국한 뻔뻔한 아들녀석. 근처에서 따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자립했다고는 할 수 없는 딸. 가끔씩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오랜 친구들 등등. 다양하지만 현대가정에는 흔히 있을법한 주변인물들과의 사이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갈등과 고뇌를 딛고 내적으로 변모해가는, 주인공 도시코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고 마냥 사람좋게만 보이던 주인공이 점차 강하고 씩씩하게 변모해 나가는 이 이야기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종의 성장담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도시코의 모습을 보면서 같이 조마조마하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도시코의 소극적인 자세와 그 초조해하는 심정이 국적이나 세대를 초월해서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그런 공감의 의미의 조마조마. 이 소설이 '엄마가 뿔났다' 라는 한국 드라마와 비교되는 이유가 비로소 납득이 간다. 씩씩하고 강하게 변모했다고는 해도 역시 주인공은 여전히 방황하거나 고민하거나 혹은 분통을 터뜨리거나 하면서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조바심은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닌다.
 
기리노 나쓰오의 필력이야 새삼 말할것도 없지만 이 작가의 소설의 또다른 매력은,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금 얄미운 인물들(그래도 읽다 보면 어김없이 그런 인물들의 마음까지도 이해하게 된다.)과 약간은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과장된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다마모에에는 모질지 못한 주인공의 나약함이 매력의 하나로 추가된 것 같다. 작가의 전작중 하나인 아웃의 주인공은,  보고있으면 안심되고 믿음직한 느낌의 캐릭터였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도시코는 혼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줌마의 전형이다. 예의 섬뜩할 정도로 리얼한 심리묘사에 이런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들까지 더해져서,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때로는 즐거움을 주는 엔터테인먼트로서도 때로는 순수문학으로서도 모두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을 읽고나면 언제나 포만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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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땅 ㅣ Medusa Collection 5
니키 프렌치 지음, 노진선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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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나 CT같은 의료기기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군대에서 허리디스크로 통증을 호소하다가 꾀병이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요즈음에도 그와 비슷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증상이 눈에 보이는 경우라면 그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는 병명같지 않은 병명이라도 얻게 되지만, 증상이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환자의 경우는 정신과 치료를 권유받는 경우가 많이 있는 듯 하다.

이런 환자중 십중팔구는 어김없이 '심인성'으로 시작하는 병명을 얻게 된다. 한마디로, 있지도 않은 병을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환자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억울하게 하게된 옥살이라면 그래도 끝까지 믿어주는 가족이라도 있을수 있지만, 의사의 진단을 받은 환자는 더이상 반박에 여지가 없는 명백한 정신질환자 반열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오고 있는 것처럼 이런 정신과적 발상은 참으로 위험하다. 이 세상에는 어떤일도 벌어질수 있는 것이건만 사람들은 보이는것, 확인된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당사자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수 없다. 이 소설속 여주인공이 처한 암담한 상황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한 여자가 결박된채 눈은 가리워지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상태로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이름은 애비. 서서히 기억은 돌아오지만 자신이 왜 여기에 이렇게 놓여있게 된 것인지 그 시점의 기억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그때 귓가에서 들려오는 낮선 남자의 목소리. 애비는 이 남자에 의해 자신이 이곳에 납치 감금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정체불명의 범인은 납치의 목적은 밝히지 않고 이따금 그저 물을 먹이고 대소변을 처리해주러 와서는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애비가 처한 상황을 지켜보며 즐기고 있을 뿐이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 보이는 것도 없고, 들리는 것도 없고, 기억도 희망도 사라진 공포. 이 초반부 진행의 임팩트는 대단히 강렬하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범인을 회유하기도 하고 혐상을 시도하기도 하고 용감하게 저항도 해보지만 결국 모든것이 무의미함을, 결국 자신은 이 자의 손에 죽게 될 것임을 애비는 깨닫는다. "애비, 열심히 노력하는 애비. 언제나 울었던 켈리. 그리고 노력하는 애비. 운율도 딱딱 맞는걸. 울고, 노력하고, 죽다cried tried died. 네가 어떻게 나오든 내게는 마찬가지야. 결국에는 다 똑같지." (50쪽)

그러다 뜻밖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애비는 필사의 탈출을 감행해 결국 성공한다. 그러나 극도로 숨막히는 장면이 지나고 이제 모든 악몽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싶던 애비에게 곧바로 또다른 형태의 악몽이 찾아온다. 병원에 실려와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애비를 보면서, 이제 남은 것은 정체불명의 범인과 경찰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적일 것이라는 독자의 예상은 무참히 빗나가고 만다. 증거라고 할만한 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애비는 여전히 어떠한 기억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기억이 없는 그 시간에 실재했던 것으로 밝혀진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애비가 현재 심리적으로 상당히 흔들리고 있는 상태임을 암시하는 것들 뿐, 거기에 뒤늦게 밝혀진 정신과 병력까지 더해져서 피해자로서의 진술들은 신빙성을 잃어간다. 기억의 공백을 채워넣기 위해 혼자 잃어버린 날들을 조사하면서 애비는 끊임없이 자문한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내게 일어난 걸까?  내게 일어난 일이 내 탓은 아닐까? 내가 이 끔찍한 사건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과연 나에게 그런일이 실제로 일어나긴 한걸까?

정체불명의 적, 자기자신에 대한 의문, 주위의 시선, 삼중고와 싸워야하는 애비의 투혼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는 울창한 숲속에 나침반도 없이 홀로 버려진 듯한 긴장감이 시종일관 계속된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조심스러운 시선들, 애비에게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심리적인 공포다.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는 진실을 사람들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 애비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봄이 오고 있어요.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죠."

애비에게는 한없이 가혹하지만 대신에 독자로서는 최상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으므로 작가를 비난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니키 프랜치라는 이름은 한명의 작가가 아니라 공동작업을 하는 니키 제라드, 숀 프렌치 부부의 각자의 성과 이름을 따서 만든 필명이라는 것. 그래서 그런지 산자의 땅은 스피디 하고 선굵은 남성작가의 면모와 여성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공존하는 중성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런 점도 있어서 이 소설의 재미는 독자의 취향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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