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북 - 젊은 독서가의 초상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워싱턴 포스트>지의 북리뷰 담당기자이며 서평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실공히 이 시대의 책읽기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저자의 어린시절은 과연 어땠을까. 이 책<오픈북>에서 저자 마이클 더다는 책과 함께한 자신의 어린시절, 사춘기, 그리고 대학생활을 회고하고 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위 고수의 독서일기를 들여다 볼수 있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수 없다.

마이클 더다는 러시아계 아버지와 슬로바키아계 어머니 사이의 이민자집안에서 태어났다.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 그리고 '작은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배다른 여동생들까지 포함해 세명의 여동생들과 함께 자란 어린시절은 어떻게 보아도 유복하고 좋은 환경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허약하고 뚱뚱하고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어린 더다의 가장 친한 친구는 독서였다. 어린이용 모험소설부터 만화책, 백과사전에 이르기까지 더다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어치웠다.

부모님이 간간히 사다주는 책으로는 넘치는 독서욕을 충족시키지 못해 사촌의 책을 빌려와 밤새워 흥분해가며 읽어내려가고, 가판대에 몰래 쭈그리고 앉아 신간을 독파한다던가 책 한권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모습은 책좋아하는 우리네 또래 어린이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책을 세권씩 세트로 모아 봉지에 담아 파는 책을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으로 맞추기 위해 칼로 봉지를 몰래 찟어 안에 내용물을 맞바꾸는 장면에서는 왠지 이해할수 있을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사춘기에 접어 들어 소위 야설을 몰래 읽고 난 뒤의 감상이라던가, 이제껏 읽어온 책들과는 다른 고난이도의 문학작품을 소화해 낸 뒤부터는 어린이 소설을 읽기 힘들게 되었다는 고백은 나의 경우와도 흡사해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퓰리처상 수상자의 독서에 대한 애정만은 어린시절부터 남달랐다. 자신이 읽은 책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곱씹어보고... 청소년기, 대학시절을 거치는 동안에도 독서는 저자의 삶에 더욱 깊이 파고든다. 아니 저자가 독서의 바다속으로 스스로 더 깊이 헤엄쳐 들어갔다고 해야 맞을것이다. 만져보고 싶고, 직접 해보고 싶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으로 가득했을 그 시절에도 저자의 가장 큰 관심은 독서였다. 결국 그것이 전공이 되고 그것으로 인해 삶의 영감과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을 만나, 저자는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할수 있는 곳에서 이름을 떨치는 그런 인생을 지금 살고 있다.

어렸을때는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쓸정도로 책벌레라는 소리를 듣다가도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쯤 되면 벌써부터 빡빡한 학교 교육에 짓눌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수 없는 우리아이들의 현실과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더더군다나 요즈음에는 독서 말고도 어린 아이들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것 같다. 오히려 고등학생쯤 되는 나이에 독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게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해야할 일, 흥미를 사로잡는 것들이 주위에는 넘치고 넘친다. 독서에 애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지속해 가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저자의 말마따나 자서전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본인의 이야기를 조금은 신비화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홍보하는 다른 자서전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그 중심에 독서라는 행위가 놓여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 책을 읽는 방법,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책등등...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만큼 수수하고 정겹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다. 간간히 나에게도 추억이 있는 책의 제목이 나올때면 퓰리처상 수상자와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고 감동이던지. 책읽기를 썩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재미있는 회고록을 읽고 있다보면 분명 어딘가에서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무리 책을 안좋아한다고 해도 어릴때 만화책 한권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테니까. 그 책읽기의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드디어 딘쿤츠가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이 스피디하고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작인 <남편> 이후로 쿤츠의 작품들이 연달아서 꽤 많이 소개되기는 한 것 같은데 하나같이 기대에는 조금씩 못미쳤기 때문이다. 막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려던 참에, 모처럼 좋아하게 된 작가에게 등돌리려던 참에, 타이밍도 기가막히게 이 <벨로시티>가 나와주었다.

딘쿤츠의 명성이야 <남편> 이전에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뭐랄까 주로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몇몇 작품에서는 그다지 감흥을 받지 못하다가, 정통 스릴러라고 할만한 <남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작가의 팬이 되었다. <남편>도 그렇고 <벨로시티>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 작가는 초자연적인 것 보다는 이 쪽이 더 잘 어울리는 듯 싶다. 사실은 쿤츠는 전자가 메인이고 이 작품들이 오히려 외도에 가깝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남편>에서의 그 스피디함, 유괴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내달리는, 특별한 반전도 없는 주제에 플롯만으로도 그렇게 호쾌한 느낌을 주는 그런 논스톱 스릴을 이 작가에서 기대하고 싶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벨로시티>는 <남편>과 많이 닮아있다. 폭발적으로 달려나가는 한마리 치타같은 이미지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반전이 거의 미비했던 남편에 비하면 시종일관 의문을 달고 내달린다는 점은 다르다. 물음표달고 뛰는 치타! 어느면으로 보나 남편에 비해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두작품은 평범한 남자 3부작이라는 동일한 컨셉하에 쓰여진 것들인 모양이더라.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딘쿤츠라는 작가의 또다른 면모를 볼수 있는 드문 기회인 셈이기도 하다. 3부작의 다른 한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이다.

약혼녀가 식물인간이 되면서 집필에 대한 정열을 잃어버린 작가 빌리는 바텐더로서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동차 와이퍼에 이상한 쪽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공포의 게임은 시작된다. 쪽지의 내용은, "이 쪽지를 경찰에 전달하지 않으면 금발의 젊은 여교사를 죽이고, 전달하면 자선사업하는 할망구를 죽이겠다. 남은 시간은 여섯 시간, 선택은 네 몫이다." 라는 불합리한 요구. 어떤 금발의 여선생인지 어떤 할머니인지도 밝히지 않는 누구라도 장난으로 치부해 버렸을법한 이 쪽지에 빌리도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찝찝한 생각이 들었는지 평소에 형처럼 잘 알고 지내는 경찰관에게 이야기 해두는 정도로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 또다시 두번째 쪽지가 도착하고 이것이 장난이 아니였음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때부터 이야기는 의문에 의문을 거듭하면서 폭발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쪽지와 함께 빌리의 범행으로 보이게 만든 살인이 계속되어 간다. 어디선가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면서 가지고 노는듯한 베일에 쌓인 범인과의 대결은 의문 투성이에다 근육이 팽팽해지게 만드는 공포와 긴장감의 연속이다. 어째서 회피하지 못하고 빌리는 이 위험한 진흙탕 속으로 자꾸만 휘말려가는가? 언뜻 의문이 들수도 있지만 여기에 빌리의 연인이자 아내인 바바라의 존재가 있다. 바바라는 식물인간 상태에 놓여있다. 무방비 상태인 그녀의 안위야 말로 빌리의 약점이자 이 불공정한 게임에서 빌리가 벗어날수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범인의 의도가 보이지 않는 공포, 그리고 스스로 자진해서 범죄에 손을 더럽힐수 밖에 없는 선택을 강요해오는 정신적인 공격. 그리고 빌리의 육체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물리적 공격까지. 정신적인 고통과 신체적인 고통. 이런 흉악하고 불합리한 짓을 하는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만 고양이인지 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럴수도 없다. 점점 궁지에 몰리는 빌리를 보면서 초조해 하다보면, 정말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는 표현을 실감할 수 있을 것. 다만 마지막 반전은 조금은 작가의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을 것 같지만 반전은 그저 보너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도 이 작품의 가속도를 즐기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아무튼 마지막까지 가속만 할뿐 감속은 없는 속도감 넘치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센트 1 Medusa Collection 7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1988년 히말라야, 산악가이드인 아이크는 등반객들을 이끌고 산에 올랐다가 지옥으로 끌려가 버렸다! 그리고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을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외모, 온몸을 뒤덮고 있는 흉터와 문신들, 그리고 인간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신체적 능력. 지옥에서 그 자신 노예이면서 다른 인간 노예들을 관리 감독하기도 했던 아이크지만 지금은 인간의 편에 서서 다시 그 지옥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악명높은 지옥의 배신자로 대활약한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헬보이와 같은 캐릭터 중심의 만화를 보고 있는것 같지만(그런데 정말로 아이크가 등장할때마다 헬보이를 떠올리긴 했다.) 실은 대단히 디테일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 그 사건들에는 항상 정체를 알수없는 이상한 생명체들이 관련되어 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사람의 몸을 발기발기 찢어 인육을 먹는 짐승과 같은 모습의 한편으로, 인간에 가까운 지적생명체이기도 한 이들은 헤이들(호모 헤이들리스)이라 불린다.

현생인류의 역사보다도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지하에서 살아온 지저인이라는 설정. 자칫하면 외계에서 온 파충류들이 지구를 점령한다는 식의 SF로 흐를 여지가 다분한 소재이지만, 생생한 지하세계의 묘사와 헤이들의 습성, 생활방식, 역진화의 이론과, 언어, 종교의 기원을 되집어 올라가는 작업을 통해서 지하문명에 대해 파헤치는 치밀한 스토리는 실제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면 조금 과장일지는 몰라도, 상당히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다 읽고 난 지금은 의외로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공원과 닮은점이 많은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재미도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절대 원금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마이클 크라이튼 하니까 문득 "시체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13번째 전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이 소설에도 헤이들과 같은 정체불명의 족속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아랍지역의 사자의 자격으로 바이킹의 땅을 방문한 주인공이 13번째 전사가 되어 이 시체를 먹는 종족들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인데, 저자서문인가 후기엔가 보면 작가는 이것이 주인공의 실제로 남긴 기록을 토대로 쓴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존재들이 인류와는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된 인류의 사촌, 예를들자면 네안데르탈인일수도 있고... 이런 의문들과 함께 이 종족에 대해 상당히 많은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데, 거기에 비해서는 너무 두리뭉실하게 이야기의 끝을 맺는 바람에 넘치는 호기심을 미처 해소할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혹시라도 이 실존했다는 문서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또다른 책이 있을까 싶어서 이러저리 찾아 헤맨적이 있는데 전혀 찾을수가 없었고 결국 이 신비의 종족 이야기는 모두 크라이튼의 상상이였다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 디센트를 읽고 있는 동안에 그 생명체들이 이 책에 나오는 헤이들과 동일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게다가 안개처럼 희뿌옇게 보이던 그 실체를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나게 해주는 이것은 그 결정판이 아닌가. 천년전의 인류로서는 도저히 밝혀낼수 없었던 그 수수께끼를 현대과학을 앞세운 이 소설에서는 철저하게 파헤쳐 내고 있다. 지상과 땅밑이라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인류와는 엇갈린 진화를 거듭해온 이 종족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로 흥미롭다. 또한 인류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이기주의적인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인류에게 발견된 이상 헤이들은 앞으로 어떤식으로는 멸종의 수순을 밟을수밖에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는 스릴러 소설로서 디센트를 즐긴 것이라면 지금부터는 지하문명에 대한 신 보고서로서 디센트를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볼루셔너리 로드
리처드 예이츠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타이타닉 커플>이 다시 뭉쳤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로 그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동명의 원작소설이다. 결혼에 대한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어디에나 흔히 있을법한 부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고,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점점 무겁고 침울한 기분이 되어 간다. 읽는 사람의 처지 (기혼인가 미혼인가, 혹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에 따라 감상도 여운도 크게 달라질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읽을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였다. 재미있었으니까. (여주인공인 에이프릴에게 케이트 윈슬렛의 이미지가 오버랩되서 앞뒤 안가리고 읽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리처드 예이츠라는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1950년대, 코네티컷주. 교외에서의 단란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딱 어울리는 동네 "레볼루셔너리 힐"에 살고 있는 프랭크 휠러와 에이프릴은, 사이에 귀여운 두아이를 두고 있는 이상적인 젋은 부부. 하지만, 군제대 후 평범한 회사원으로 단조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프랭크는, 허무한 날들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한편, 한때는 여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육아와 가사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에이프릴은 그 정열을 다시 한번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다는 일념으로 프랑스 파리로의 이주를 결심하지만, 현실에는 그것을 가로막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주위에서 보기에는 매우 이상적인 커플. 그렇지만 변화없는 단조로운 생활속에서 날마다 커져만 가는 공허함. 이것을 그려내는 방식이 대단히 절묘하다. 작가는 과잉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주인공의 직장생활의 묘사나, 혹은 주인공의 사소한 신변잡기나 심리의 묘사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주변상황들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런 묘사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그냥 남아있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어가는 주인공의 심리변화도 비로소 납득할수 있게 된다.

반면에 그와 비교하면 이런 묘사가 전혀 없는 아내가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하고 있음을 독자는 저절로 느끼게 된다. 따로 묘사하지 않아도 그 공허함이 눈에 보여온다. 이것만으로도, 갑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는 욕구를 표출하는 아내의 행동도, 그녀가 지금 마음의 병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까지도 모두 이해할수 있게 된다. 이 묘사의 유무가, 이 부부사이의 엇갈림을 간접적으로 표현해 준다.

영화는 비교적 원작을 꽤 충실히 연출해 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소설에서 영화보다 더욱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 부부와 좋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웃 부부. 특히, 그 남편 셰프에 대해서 보다 깊이 파고 들고 있어서, 영화에서는 약간 충동적인 것처럼 생각되던, 에이프릴과의 차내 불륜에 이르는 과정도 명확하게 내면화 되고 있다.

싸우고 난 다음날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식탁에 마주앉아 오랫만에 근사한 아침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왜인지 모르지만 울컥했다. 감동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프랭크가 흘리던 기쁨의 눈물과도 다른,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라고나 할까... 이후의 전개를 이미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흘러가는 마지막 진행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기본적으로는 주인공의 시점이던 소설이, 결정적인 순간에 아내의 시점으로 바뀌면서 그녀의 내면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한다던가, 당혹스러운 이웃집 남자의 심리상태를 마치 한편의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행동으로 표현한다던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방법이 정말 능수능란하다. 마치 사람의 심리가 물감이 되어서 그려지는 것 같은 이런 대사나 행동들은 리처드 예이츠라는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인지 보여준다. 이런 작품이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말그대로 비운의... 라는 수식어가 붙고도 남을만한 일이다.

여러가지 감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감만은 공통적으로 맛보게 될 것 같다. 그 갭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결국 순탄한 결혼생활의 비법이 될수 있으려나. 이 책을 읽고 동질감을 느끼는 커플이라면 아마도 지금쯤 무언가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는건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관의 피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경관의 피>는 부자 3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오는 경찰가문을 그려낸 장대한 드라마다. 종전후의 격동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60여년이라는 긴 시간적 배경안에서 일본 경찰의 역사를 체감할수 있다. 경찰관 삼대의 휴먼드라마에만 그치지 않고, 일본의 시대별 사회상, 범죄의 역사, 개인과 조직의 갈등, 그리고 선대의 순직에 얽힌 의문등등, 단순한 미스터리나 경찰 소설이 아니라 경시청을 무대로 한, 한편의 대하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삼대가 대를 이어 경찰이라는 한 조직에 몸담으면서 1대인 할아버지의 의문의 사인을 손자대에 이르러서야 밝혀낸다는 그 설정만으로도 대단히 스케일이 큰 이야기인데, 동시에 '무엇이 경찰관으로서의 올바른 삶의 방법인가'와 같은 심오한 물음에 대한 해답찾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또한 흥미롭다.

같은 경찰이지만 소속부서도 근무 내용도 미묘하게 다른 3명. 각각의 인물이 살아온 시대배경에 실제사건과 허구를 교묘하게 끼워 넣어서 풀어가는 스토리는 블랙홀 정도의 흡입력이 있다. 일인칭 시점으로 그리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둘러싼 가족이나 동료, 또는 그 밖의 주변인물들의 숨결까지도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특히 1대 안조 세이지의 이야기인 1부에서, 전후의 불안정한 시기를 어떤 식으로든 살아 남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과 경찰과의 관계나, 2대인 안조 다미오의 이야기를 그린 2부에서의, 잠입수사를 명받고 그로 인해서 심신이 망가져 가는 다미오의 모습은, 경찰관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과 고충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기본적으로는 삼대 각자의 경찰관으로서의 삶의 방법을 그려 가는 것이지만, 각 인물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줄기로써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어떤 사건이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대에까지 이르는 그 미해결사건은 최종적으로 이것이 밝혀짐으로써, 소설 전체를 통해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물음들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해결사건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수수께끼>는 아니다. 뜻밖의 결말을 기대하고 있어보았자 그저 헛다리 짚기로 끝날뿐이다. 3대에 걸쳐 쫓는 사건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모든것이 예상내의 범주. 치밀한 수수께끼 풀이를 예상하고 있었다면 분명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관의 피>는 애당초 범인 맞히기가 목적인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오랜 세월동안 묻혀있던 수수께끼가 해명되는 깜짝 결말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아마도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도 되는가 하는 경찰이 안고있는 일종의 패러독스를 그리려고 했을 것이다. 즉, 정의를 수행하기 위해서 경찰 스스로가 법을 위반하는 모순적인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서 <경관의 피>는 쓰여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경찰관 삼대가 하나같이 일반적인 경찰관과는 다른 특수한 입장에 놓여있는 것은 앞서말한 '무엇이 경찰관으로서의 올바른 삶의 방법인가'까지 포함해서 그 대답에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장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영원히 구할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두고두고 곱씹으며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는다.

자연스러운 문장,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묘사가 상하 2권의 두꺼운 책임에도 술술 읽히게 한다. 전쟁 직후 우에노의 혼돈스러운 풍경,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물질만능의 풍조가 만연하는 현대의 도쿄, 각각의 시대는 그것 자체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매우 밀도높은 작품이다. 장면 전개, 인물의 조형, 등장 인물의 심리, 무심코 몇번이나 감탄사를 내뱉게 만드는 맛깔난 문장, 최근에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몰입할수 있었던 소설은 없었다. 주제에 대한 특별한 접근방식에서는 작가만의 고유한 향기가 난다. 따라서 보편적인 추리소설로서의 지위에는 다소 의문이 남지만, 적어도 경찰소설의 대가가 그려낸 최고 레벨의 경찰소설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