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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와인 ㅣ 환상문학전집 13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애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민들레와인 병속에는 여름날의 반짝임이 가득 차 있다. 1928년, 일리노이주 그린타운에 여름이 왔다가 그리고 떠나갔다. 이번 여름, 12살의 더글라스 스폴딩은 생의 기쁨이나 죽음의 공포, 인생의 고독이나 비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상한 힘이나 우주의 신비등, 다양한 것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더글라스의 한 여름의 추억과 소년을 둘러싼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에피소드 모음집이며, 환상적인 판타지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아주 특별한 계절이다. 한창때에는 특별하게 빛나고 떠나 갈 때는 또한 특별한 안타까움이나 슬픔이 있다. <여름>을 가둬둘수 있다면, 어디엔가 넣어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들레와인은>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준다. 민들레와인이 담긴 병 하나하나마다 여름을 넣어 둔다. 가을에도 겨울에도 그 병의 뚜껑을 열기만 하면 여름이 되살아 나온다. 민들레 와인을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이번 여름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브래드버리의 문장은 소설이면서 시이기도 하다. 한문장 한문장이 머금고 있는 그 희미한 이미지도 함께 맛봐 주었으면 한다. 연작 단편의 형식을 한, 시와 같은 이야기. 이야기는 어린 두 형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시점은 마치 그것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인 것처럼 이리저리로 움직인다. 마을주민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또 어디인지 모를 공간에서 내려다 보듯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항상 주위에 머무르고 있다가 귀 바로 뒤쪽 어딘가에서 속삭이듯 말을 걸어 오는 것이다.
민들레와인을 읽는데는 끈기가 필요하다. 시간때우기로 읽거나 속독을 허락하지 않는다. 책에 집중 해서,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장,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마음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흔들어, 고양시켜, 불안에 빠뜨리고 슬프게해, 어쩐지 나른하고 마음이 편하게 해 준다. 자신의 안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낄수가 있다.
이 작품에는, 병 속에 소중히 담아두고 싶은 여름날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 운동화, 살아 있다는 실감으로 넘치게 해 주는〈무언가>, 전차 피크닉, 그려져 있는 것은 하나같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단편, 비유로 가득 찬 이미지의 세계, 신비한 힘, 상상력으로 가득 찬 꿈, 그리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 우주를 여행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등등 다양해서 읽는이에 따라서 여러가지의 해석이 나올수가 있다. 다만, 언제 누가 읽어도, 더글라스에게 찾아온 것과 같은 그 여름날의 반짝임만은 틀림없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추운 계절이 찾아와도, 여름날의 빛은 결코 바래지않는다. 민들레와인만 있으면 언제라도 그 빛나는 시간 속에 있을 수 있으니까. 가만히 둘러보면 우리주위에도 민들레와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든 봄냄새일수도 있고, 창고안에 잠자고 있는 낡은 책 한권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