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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1 - 바이러스 ㅣ 밀리언셀러 클럽 7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평점 :
미군의 생물병기 연구소에서 치사율 99%의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유출된다. 엄중한 경계태세에 들어가지만, 감염율도 지극히 높고, 미국은 몇일 만에 괴멸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죽음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창궐해 전인류가 사멸 직전에 몰리게 된다는 식의 스토리는, 만화, 소설, 영화등 매체를 불문하고 지금은 제법 익숙한 설정이다. 그 와중에 간신히 살아 남은 사람들이, 살아 남은 또다른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는 설정도 마찬가지.
그런 SF적인 접근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모던 호러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킹의 소설인만큼, 역시 그후로는 초자연 현상을 베이스로 한 이야기로 전개되어 간다. 세계의 다른 나라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에 대해서는 일절 그리지 않고, 미국이라는 무대에만 한정 해서, 그것도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내세운다. 일반적인 SF소설의 경우처럼 전세계에 만연한 치사 바이러스에 대한 국가 수뇌부의 대책이나 전문 과학자의 분석등의 묘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고작해야 1권에서 군실험시설의 관계자가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정도.
미국 시골 마을의 아저씨, 할머니, 언니, 오빠등의 일반인이, 사멸한 세계에서 장렬한 체험을 하면서도 약속의 땅을 찾아 간다. 대략적으로 그런 스토리 전개가 된다. 병원에서, 감옥에서, 뉴욕에서, 시골 마을에서. 마지막에 남겨진 것은, 범죄자, 농아와 지적 장애가 있는 청년, 임신한 십대와 오타쿠 소년, 록큰롤 가수. 외견상으로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꿈 속에 기묘한 공통의 광경이 보일듯 말듯.
살아 남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느날 갑자기 일상이 중단되어 버린것이다. 자신 이외의 일가친척은 모두 픽픽 쓰러져 죽는다. 친구도, 지금까지 줄곧 왕진을 와주던 의사도 죽었는지 더이상 오지 않게 된다. 거리에 나와 보아도 자신 이외의 타인은 모두 죽어 있다. 그사이 전기도 끊겨 전자제품등도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도로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시체를 타넘으면서... 다수의 등장 인물이 나오지만, 한사람 한사람 각각의 인생에 대해서 집요하게 써넣는 압도적인 필치나, 강박 관념에 사로 잡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본작 스탠드가 그야말로 킹 소설의 집대성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킹은 원래 확실한 주제를 정해놓지 않고 스탠드를 쓰기 시작했다는 모양이다. 이야기는 SF로 시작해서 파멸 후의 세계의 재건으로부터, 신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애버게일과 악마의 대리인 랜들 플랙의 대결이라는 묵시록적인 테마로 옮겨 가며 읽어 나갈수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 멸망이라는 바이오 호러적인 설정은, 이 소설의 출발점에 불과할 뿐, 스토리는 현대를 무대로 한 리얼판타지를 거쳐서 대하소설과도 같은 장대한 스케일로 전개되어 간다. 핵심이라 할수있는 인간의 선과 악의 이면성도 보기좋게 표현되고 있다. 불만 없음.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인간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사회를 다시 한번 형성할 방법을 찾아 간다. 살아가는 의미를 자신에게 물어 본다.
그렇지만 이런 주제도 6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에서 차지하는 전체적인 비중으로 따지자면 의외로 서브 테마격으로 묻히는 경향이 있다. 악역인 소년도 생각한 것만큼 악랄하게 그려지지는 않고, 원래 궁극의 악마일 터인 랜들플랙 마저도 그 악마성의 철두철미함 이라는 관점에서는, 이야기의 초점이 될 정도의 임팩트는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인물들이 너무나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좋은 의미에서), 오히려 "추상화 된" 이계의 존재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야기의 비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발단에 30%, 주요한 등장인물들에게 60%, 결말에 10%정도라는 느낌. 결과적으로, 등장인물의 개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주제가 희석되어 버린 감은 있다. 단지,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킹의 재미는, 어떤 면에서는 예술적,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변형된 캐릭터 그 자체의 매력에 있으니까. 적어도, 다크맨이라든지 키드, 방화를 일삼는 쓰레기통맨같은, 이런 인물을 활자로 그려낼 수 있는 작가는 킹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