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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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거나, 피해자와 가족들이 떠안은 상처에 비해서 너무나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사건들을 보면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통이 터질때가 있다. 이럴때는 간혹 내가 정의의 사도가 되어서 가해자에게 응분의 댓가를 치루게 해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불합리한 사법체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상상이 만화속, 소설속 슈퍼히어로들을 탄생하게 한 것은 아닌지... 여기 <살인위원회>에 또 하나의 영웅이 등장한다. 다만 빨간 빤스입고 하늘을 나는 슈퍼히어로는 아니다. 평범한 가장인 팀 랙클리가 그 주인공이다.

연방법원 집행관인 주인공 팀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두뇌회전이 빠르고 잘 단련된 뛰어난 육체의 소유자. 현지 부보안관인 아내 드레이와, 올해 7살인 외동딸 지니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어느날 행복했던 가정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소름 끼치는 참극이 벌어진다. 한 아동 성범죄자가 딸 지니를 끔찍하게 살해한 것이다.

팀은 아내의 동료들에 의해 은밀하게 현장으로 불려가 딸을 살해한 범인인 킨델을 직접 처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팀은 분노를 억누르고, 처벌은 법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판단해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킨델은 사법체계의 맹점을 뚫고 무죄판결을 얻어 석방되고 만다. 아내 드레이는 팀을 책망한다... 왜 그때 킨델을 죽이지 않았느냐고. 삐걱거리기 시작한 부부사이가 더욱 절망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초반의 스토리만을 놓고 보면 한없이 울적하고 어둡기만한 이야기일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후 어떤 비밀 위원회로부터의 제의, 인물들의 직업상, 가치관으로 인한 트러블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서로 얽혀, 클라이막스까지 쉬는 시간없이 다이랙트로 달려간다. 템포도 좋고, 또 지속적으로 "앞으로 몇명...", "앞으로 몇시간..." 하는 식으로 목표나 제한사항이 주어지고 있어서, 상당히 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느슨해져 버린다거나 하는 참사는 발생하지 않는다. 딸을 살해한 것은 킨델뿐만이 아니라 또다른 공범자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포함해서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 사이사이에 계속해서 의문점들을 끼워넣는다.

캐릭터를 그려내는 솜씨가 절묘하다. 평범한 에피소드나 짧은 몇문장의 묘사만으로 각각의 캐릭터의 인물상이 손에 잡힐듯 전해져 온다. 예를 들면, 평소에는 강하고 완고한 여자인 드레이가 딸의 생일 파티를 위해서 서투른 솜씨로 케이크를 필사적으로 구워내는 장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딸을 향한 넘치는 애정, 노력파, 돈으로 살수있는 것보다는 정성을 중요시하는 타입등등,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수 있게 해준다. 그 외에도, "위원회"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수상한 놈들만 줄줄이 모아놓은 것 같지만 그 한명 한명의 특징을 보면 정말 잘도 이렇게까지 각각의 개성을 부여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진짜 현실속의 사회라면 아무리 공통의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라고 해도, 저마다 다양한 기질, 의견, 가치관을 가진 제각각의 인간들이 모여서 충돌을 빚어내기 마련이다. 살인위원회에서는 이런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딸을 살해당한 아버지가 법의 손길을 빠져나간 범인을 자신의 손으로 처벌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헐리우드의 B급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을 A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저자의 능력. 왜 <살인위원회>가 그저 그런 스릴러와는 다르냐 하면, 우선 철저한 디테일의 세세함. 장황하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매우 공들여서 작은 부분까지 그려낸 인물상이나 세계관. 묘사등이 리얼하면서도 정말로 강력한 박진감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디테일한 스릴러 소설을 써낼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후기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의하면 그렉 허위츠라는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두 직접 체험해 봐야 하는 열정적인 작가인 듯하다. 잠입수색, 정보원의 고용, 심지어는 낙하산이 펴지지않아 죽을뻔 한적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이 소설의 디테일이 그저 우연히 어디서 그냥 굴러 나온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그런 "책상머리 상상만으로는 쓸 수 없는 실감나는 묘사"가 여기저기 충실하게 채워넣어져 있어서 <살인위원회>를 반드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스릴러로 만들어 내고있다.

한가지 더, 그저 무작정 쏴죽이고 "이것이 나의 정의다" 하며 끝내는 단순 바보 전개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단지 오락만을 원한다면 악당을 닥치는대로 쓸어버리면서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것도 물론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연히 깊이는 없다. 이 작품에서는 "법의 한계"와 "범죄와 정의의 경계는 어디인가?" "개인에게 심판의 자격이 있는가?" 와 같은 주제를 꽤 깊숙히까지 반복해서 접근한다. 제대로 된 도덕,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팀은, 한 개인, 아버지로서의 범인에 대한 원망과, 법을 준수해야 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고뇌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싹오싹 잔혹한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가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분통터지는 사건들이 종종 보도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에 감정이입할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결말은 그런 "사법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강렬한 야유"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엔터테인먼트로서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멋진 소설. 올해의 마이 베스트 후보에 또 한 작품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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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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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지금까지 달은, 사냥개에게 목줄을 매어둔 것처럼 언제나 그 하늘 그 자리에 있겠거니 하고 방심했던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세상에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쌈해가는 해괴한 도둑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228쪽. 달나라 도둑 중)

살면서, 작은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아둥바둥하면서도 정작 소중한 것들에는 소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무런 댓가 없이도 그들은 항상 내 옆에 있어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살기 쉽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부모, 형제 사랑하는 사람들, 건강, 행복... 밤하늘의 달처럼 언제나 변치않고 나의 곁에서 묵묵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작은 탐욕과 성취감에 사로잡혀서 등한시 한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곁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발하던 빛이 사그러든 뒤에 후회해도 그때는 이미 늦다.

객주, 똥친막대기의 저자인 김주영 선생님의 우화집. 예의 따뜻한 교훈을 담은 짧은 이야기들이 바구니안의 사탕처럼 가득 담겨있다. 우화라는 것은 그렇다. 사람을 발가벗겨 놓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누구라도 어린시절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이 되게 만든다. 요즘처럼 온갖 자기계발서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때에 우화가 아니어도 교훈이 되는 책이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정말로 마음을 열고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에서 우화속 교훈은 더욱 빛을 발하는것 같다. 묵은 때를 벗겨내는 기분이랄까. 정화되는 느낌.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워 듣는 옛날 이야기.

달나라 도둑은 참 예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비록 활자를 읽는 행위이지만 시각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만은 없구나. 이렇게 잘 디자인된 책을 읽을수 있다는 것은 것은 각박하다 삭막하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누릴수 있는 고마운 것들 중에 하나다. 동심을 불러 일으키는 아기자기한 삽화들이 원래의 따뜻한 가르침이 있는 이야기들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그리운 기분에 젖어 있게 해준다. 아무래도 무드있는 곳에서 받는 프로포즈가. 밍숭맹숭한(혹은 순대를 먹으면서 받는) 그것보다는 훨씬 감동적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주영님의 글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라면 그림은 할아버지의 손길이고 무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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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생과 직업 - 더 많이 일할수록 행복해지는 삶
데일 카네기 지음, 최염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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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누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좋겠다" 라던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던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 부와 명예,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도 아니면 적어도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이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얻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그 수단을 위해 우리가 할애하고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나 될까. 하루 8시간? 9시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일을 하는데에 하루중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정규시간 이외의 추가업무는 물론이고 출퇴근시간,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자기 관리, 충분한 휴식등등 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감안하면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일과 관계된 시간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마지못해 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면, 직장이 온갖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곳이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적어도 일이 끈기와 인내를 발휘해야 하는 버티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피할수 없다면, 보람을 찾고 성취감을 느낄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것이 현명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업무를 최상으로 수행하면서 흥분과 만족감을 느끼며 충실하게 인생을 살 것인가, 그렇지않으면 좌절과 권태, 피곤함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 것인가를 결정짓는다.

<카네기 인생과 직업>은 데일 카네기가 쓴 "카네기 인간관계론", "카네기 행복론" 두권의 베스트셀러에서 이런 주제에 부합하는 내용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비록 이전의 두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일과 직장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적용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 책에서 카네기는 일하는 시간 동안 우리 스스로 그 시간을 만족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나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그동안 몰랐던 숨겨진 재능과 능력을 찾아내고, 그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관건임을 일깨워 준다. 결코 난해하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태도를 비교해보면 그가 제시하는 방법들이 얼마나 핵심을 찌르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늘 더 만족스러운 인생, 조화로운 인생, 목표가 있는 인생을 원한다. 이 책은 원하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이정표다. 보다 나은 인생을 위한 조언이자 힌트이다. 다만, 어떤 조언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때 인생의 전환점 이라는 것도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안에는 이미 우리 삶을 빛나게 해줄 무언가가 잠재되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드러내려는 결심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카네기가 제시하는 이 지혜로운 방법들이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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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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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백작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백작"은 별명이고 실제 직업은 괴기 소설가다. 검은코트 차림에 큰키가 백작 같기 때문에 백작이다. -_-;; 이 백작과,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삼십대 총각 사루와타리가 엉뚱한 계기로 만나 의기투합한다. 둘다 비길데 없는 두부애호가라서 묘하게 마음이 잘 맞는다. 한가한 사루와타리는 백작의 취재에 동행하거나 여행에 따라가거나 한다. 전국각지의 맛있는 두부를 먹으러 다닌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기도 한다. 사루와타리-백작(백수-백작) 콤비가 마주치는 이상한 사건들을 그린 연작 단편집.

두사람 다 두부를 너무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타지를 돌아다니기도 하는 대단한 미식가들. 기담속에 등장하는 두부라는 것이 참 태평해 보여서 좋다. 게다가 너무 맛깔나게 묘사하는 바람에 듣고 있으면 군침이 돌기도 한다. 미식가들인 만큼, 특정지방의 진귀한 게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했더니 어느새 그 게를 맛보러 직접 가고 있다. 그곳에서 제대로 기묘한 사건을 만나 버린다.

게 뿐만이 아니고 수록된 8편의 단편이 거의 모두 동물(혹은 생물)과 관련되어 있다. 여우라든지 게라든지 물소라든지 송장벌레라든지. 조금(많이) 이상한 동물들, 읽다보면 동물들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자꾸 먹을거리와 얽히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아닌게 아니라 먹을거리일때도 있긴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화법은 표표하다. 일상적이지만 달관한 이들처럼 여유가 있다. 문체에서 고전이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시대배경이 몇십년쯤 전이려나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고, 그것은 아마도 분위기를 위한 의도된 문체인 듯 하다. 평범한 일상의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었나 싶으면, 어느새 이야기가 기이한 세계 안으로 들어와있다. 그 순간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오싹오싹하다.

일상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 사이의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절묘한 밸런스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홈즈-와트슨을 떠올리게 하는 투톱체제라고는 해도 추리의 범주에 넣기는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쿄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에 가깝지만, 수수께끼 풀기의 영역을 넘어서는 무언가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다. 예를 들자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그건 무엇이었던 걸까하고 상상에 맡기는 부분도 많아서, 그게 또 결말에서 굉장히 오싹하게 만들거나 한다. 확실히, 정체를 모르는 것은 언제나 무섭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경우는 정체를 알아도 무섭다. 

각 단편은 시간상의 배열이 뒤죽박죽인데다가, 회상과 같은 이야기도 있어서 더욱 불가사의함을 자아낸다. 하나 하나가 밀도 높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원래보다 훨씬 두꺼운 책을 읽고 난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건 그렇고 백작도 특이하지만 사루와타리도 참 대단한 인생이다. 여자복도 없고, 돈복도 없고, 사업운도 없고, 특히 차가 제일 불쌍하다. 그나마 자랑할거라곤 외제차(중고)밖에 없었는데... 그런데도 딱히 초조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고 느긋한걸 보면 역시 기담집의 주인공답다. 남의 밑에서 일할 그릇은 아니다. 이정도는 되야 무서운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끌어 갈수 있는 법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송장벌레". 시각적으로도. 마지막 장면이 눈꺼풀 안쪽에 스며드는 듯한 강렬함이 있다. 곤충표본을 취급하는 회사에 있는 사루와타리의 친구가 젊은 사원과 함께 해외의 어느 밀림을 찾았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일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젊은 사원은 난치병에 걸려버렸다. 더이상 가망은 없다고 한다. 그런 친구에게서 사루와타리는 카메라를 빌려온다... 무언가에 홀려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안타깝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은 대체로 먹을거리에 대해서 이상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두부 정도라면 별로 이상할것도 없지만, 두부로 끝나질 않으니까 그게 기담이 되어 버린다.

어느 단편도 매우 레벨이 높다. 무서운 이야기도, 이상한 이야기도, 각각 그 단편만의 포인트가 있다. 결말을 마무리 하는 방법도 다양해서 결코 지루하거나 하지 않다. 일관되게 상냥하고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입맛의 이야기들이라는 것도 여타 기담, 괴담집과는 다른점. 괴기와 만담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좋다. 특히 사루와타리- 백작 콤비의 캐릭터가 일품.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떠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의 영상. 농담 아니고 정말로(진짜 진짜 진짜로 너무 먹고 싶어서) 슈퍼에 가서 두부를 사다 먹었다. 결국 애초에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은 두부 이야기였던 것이다! 기괴한 사건들과 매력적인 명콤비로 교묘하게 위장한 대단한 두부 예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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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1 - 바이러스 밀리언셀러 클럽 7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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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생물병기 연구소에서 치사율 99%의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유출된다. 엄중한 경계태세에 들어가지만, 감염율도 지극히 높고, 미국은 몇일 만에 괴멸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죽음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창궐해 전인류가 사멸 직전에 몰리게 된다는 식의 스토리는, 만화, 소설, 영화등 매체를 불문하고 지금은 제법 익숙한 설정이다. 그 와중에 간신히 살아 남은 사람들이, 살아 남은 또다른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는 설정도 마찬가지. 

그런 SF적인 접근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모던 호러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킹의 소설인만큼, 역시 그후로는 초자연 현상을 베이스로 한 이야기로 전개되어 간다. 세계의 다른 나라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까에 대해서는 일절 그리지 않고, 미국이라는 무대에만 한정 해서, 그것도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내세운다. 일반적인 SF소설의 경우처럼 전세계에 만연한 치사 바이러스에 대한 국가 수뇌부의 대책이나 전문 과학자의 분석등의 묘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고작해야 1권에서 군실험시설의 관계자가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정도.

미국 시골 마을의 아저씨, 할머니, 언니, 오빠등의 일반인이, 사멸한 세계에서 장렬한 체험을 하면서도 약속의 땅을 찾아 간다. 대략적으로 그런 스토리 전개가 된다. 병원에서, 감옥에서, 뉴욕에서, 시골 마을에서. 마지막에 남겨진 것은, 범죄자, 농아와 지적 장애가 있는 청년, 임신한 십대와 오타쿠 소년, 록큰롤 가수. 외견상으로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꿈 속에 기묘한 공통의 광경이 보일듯 말듯.

살아 남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느날 갑자기 일상이 중단되어 버린것이다. 자신 이외의 일가친척은 모두 픽픽 쓰러져 죽는다. 친구도, 지금까지 줄곧 왕진을 와주던 의사도 죽었는지 더이상 오지 않게 된다. 거리에 나와 보아도 자신 이외의 타인은 모두 죽어 있다. 그사이 전기도 끊겨 전자제품등도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도로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시체를 타넘으면서... 다수의 등장 인물이 나오지만, 한사람 한사람 각각의 인생에 대해서 집요하게 써넣는 압도적인 필치나, 강박 관념에 사로 잡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본작 스탠드가 그야말로 킹 소설의 집대성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킹은 원래 확실한 주제를 정해놓지 않고 스탠드를 쓰기 시작했다는 모양이다. 이야기는 SF로 시작해서 파멸 후의 세계의 재건으로부터, 신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애버게일과 악마의 대리인 랜들 플랙의 대결이라는 묵시록적인 테마로 옮겨 가며 읽어 나갈수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 멸망이라는 바이오 호러적인 설정은, 이 소설의 출발점에 불과할 뿐, 스토리는 현대를 무대로 한 리얼판타지를 거쳐서 대하소설과도 같은 장대한 스케일로 전개되어 간다. 핵심이라 할수있는 인간의 선과 악의 이면성도 보기좋게 표현되고 있다. 불만 없음.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인간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 사회를 다시 한번 형성할 방법을 찾아 간다. 살아가는 의미를 자신에게 물어 본다.

그렇지만 이런 주제도 6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에서 차지하는 전체적인 비중으로 따지자면 의외로 서브 테마격으로 묻히는 경향이 있다. 악역인 소년도 생각한 것만큼 악랄하게 그려지지는 않고, 원래 궁극의 악마일 터인 랜들플랙 마저도 그 악마성의 철두철미함 이라는 관점에서는, 이야기의 초점이 될 정도의 임팩트는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인물들이 너무나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좋은 의미에서), 오히려 "추상화 된" 이계의 존재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야기의 비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발단에 30%, 주요한 등장인물들에게 60%, 결말에 10%정도라는 느낌. 결과적으로, 등장인물의 개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주제가 희석되어 버린 감은 있다. 단지,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킹의 재미는, 어떤 면에서는 예술적,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변형된 캐릭터 그 자체의 매력에 있으니까. 적어도, 다크맨이라든지 키드, 방화를 일삼는 쓰레기통맨같은, 이런 인물을 활자로 그려낼 수 있는 작가는 킹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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