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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드라큘라 백작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백작"은 별명이고 실제 직업은 괴기 소설가다. 검은코트 차림에 큰키가 백작 같기 때문에 백작이다. -_-;; 이 백작과,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삼십대 총각 사루와타리가 엉뚱한 계기로 만나 의기투합한다. 둘다 비길데 없는 두부애호가라서 묘하게 마음이 잘 맞는다. 한가한 사루와타리는 백작의 취재에 동행하거나 여행에 따라가거나 한다. 전국각지의 맛있는 두부를 먹으러 다닌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기도 한다. 사루와타리-백작(백수-백작) 콤비가 마주치는 이상한 사건들을 그린 연작 단편집.
두사람 다 두부를 너무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타지를 돌아다니기도 하는 대단한 미식가들. 기담속에 등장하는 두부라는 것이 참 태평해 보여서 좋다. 게다가 너무 맛깔나게 묘사하는 바람에 듣고 있으면 군침이 돌기도 한다. 미식가들인 만큼, 특정지방의 진귀한 게를 화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했더니 어느새 그 게를 맛보러 직접 가고 있다. 그곳에서 제대로 기묘한 사건을 만나 버린다.
게 뿐만이 아니고 수록된 8편의 단편이 거의 모두 동물(혹은 생물)과 관련되어 있다. 여우라든지 게라든지 물소라든지 송장벌레라든지. 조금(많이) 이상한 동물들, 읽다보면 동물들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자꾸 먹을거리와 얽히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아닌게 아니라 먹을거리일때도 있긴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화법은 표표하다. 일상적이지만 달관한 이들처럼 여유가 있다. 문체에서 고전이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시대배경이 몇십년쯤 전이려나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고, 그것은 아마도 분위기를 위한 의도된 문체인 듯 하다. 평범한 일상의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었나 싶으면, 어느새 이야기가 기이한 세계 안으로 들어와있다. 그 순간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오싹오싹하다.
일상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 사이의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절묘한 밸런스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홈즈-와트슨을 떠올리게 하는 투톱체제라고는 해도 추리의 범주에 넣기는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쿄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에 가깝지만, 수수께끼 풀기의 영역을 넘어서는 무언가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다. 예를 들자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그건 무엇이었던 걸까하고 상상에 맡기는 부분도 많아서, 그게 또 결말에서 굉장히 오싹하게 만들거나 한다. 확실히, 정체를 모르는 것은 언제나 무섭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경우는 정체를 알아도 무섭다.
각 단편은 시간상의 배열이 뒤죽박죽인데다가, 회상과 같은 이야기도 있어서 더욱 불가사의함을 자아낸다. 하나 하나가 밀도 높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원래보다 훨씬 두꺼운 책을 읽고 난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건 그렇고 백작도 특이하지만 사루와타리도 참 대단한 인생이다. 여자복도 없고, 돈복도 없고, 사업운도 없고, 특히 차가 제일 불쌍하다. 그나마 자랑할거라곤 외제차(중고)밖에 없었는데... 그런데도 딱히 초조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고 느긋한걸 보면 역시 기담집의 주인공답다. 남의 밑에서 일할 그릇은 아니다. 이정도는 되야 무서운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끌어 갈수 있는 법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송장벌레". 시각적으로도. 마지막 장면이 눈꺼풀 안쪽에 스며드는 듯한 강렬함이 있다. 곤충표본을 취급하는 회사에 있는 사루와타리의 친구가 젊은 사원과 함께 해외의 어느 밀림을 찾았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일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젊은 사원은 난치병에 걸려버렸다. 더이상 가망은 없다고 한다. 그런 친구에게서 사루와타리는 카메라를 빌려온다... 무언가에 홀려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안타깝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은 대체로 먹을거리에 대해서 이상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두부 정도라면 별로 이상할것도 없지만, 두부로 끝나질 않으니까 그게 기담이 되어 버린다.
어느 단편도 매우 레벨이 높다. 무서운 이야기도, 이상한 이야기도, 각각 그 단편만의 포인트가 있다. 결말을 마무리 하는 방법도 다양해서 결코 지루하거나 하지 않다. 일관되게 상냥하고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입맛의 이야기들이라는 것도 여타 기담, 괴담집과는 다른점. 괴기와 만담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좋다. 특히 사루와타리- 백작 콤비의 캐릭터가 일품.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떠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의 영상. 농담 아니고 정말로(진짜 진짜 진짜로 너무 먹고 싶어서) 슈퍼에 가서 두부를 사다 먹었다. 결국 애초에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은 두부 이야기였던 것이다! 기괴한 사건들과 매력적인 명콤비로 교묘하게 위장한 대단한 두부 예찬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