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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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해자가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거나, 피해자와 가족들이 떠안은 상처에 비해서 너무나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사건들을 보면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통이 터질때가 있다. 이럴때는 간혹 내가 정의의 사도가 되어서 가해자에게 응분의 댓가를 치루게 해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불합리한 사법체계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상상이 만화속, 소설속 슈퍼히어로들을 탄생하게 한 것은 아닌지... 여기 <살인위원회>에 또 하나의 영웅이 등장한다. 다만 빨간 빤스입고 하늘을 나는 슈퍼히어로는 아니다. 평범한 가장인 팀 랙클리가 그 주인공이다.

연방법원 집행관인 주인공 팀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두뇌회전이 빠르고 잘 단련된 뛰어난 육체의 소유자. 현지 부보안관인 아내 드레이와, 올해 7살인 외동딸 지니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어느날 행복했던 가정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소름 끼치는 참극이 벌어진다. 한 아동 성범죄자가 딸 지니를 끔찍하게 살해한 것이다.

팀은 아내의 동료들에 의해 은밀하게 현장으로 불려가 딸을 살해한 범인인 킨델을 직접 처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팀은 분노를 억누르고, 처벌은 법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판단해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킨델은 사법체계의 맹점을 뚫고 무죄판결을 얻어 석방되고 만다. 아내 드레이는 팀을 책망한다... 왜 그때 킨델을 죽이지 않았느냐고. 삐걱거리기 시작한 부부사이가 더욱 절망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초반의 스토리만을 놓고 보면 한없이 울적하고 어둡기만한 이야기일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후 어떤 비밀 위원회로부터의 제의, 인물들의 직업상, 가치관으로 인한 트러블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서로 얽혀, 클라이막스까지 쉬는 시간없이 다이랙트로 달려간다. 템포도 좋고, 또 지속적으로 "앞으로 몇명...", "앞으로 몇시간..." 하는 식으로 목표나 제한사항이 주어지고 있어서, 상당히 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느슨해져 버린다거나 하는 참사는 발생하지 않는다. 딸을 살해한 것은 킨델뿐만이 아니라 또다른 공범자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포함해서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 사이사이에 계속해서 의문점들을 끼워넣는다.

캐릭터를 그려내는 솜씨가 절묘하다. 평범한 에피소드나 짧은 몇문장의 묘사만으로 각각의 캐릭터의 인물상이 손에 잡힐듯 전해져 온다. 예를 들면, 평소에는 강하고 완고한 여자인 드레이가 딸의 생일 파티를 위해서 서투른 솜씨로 케이크를 필사적으로 구워내는 장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딸을 향한 넘치는 애정, 노력파, 돈으로 살수있는 것보다는 정성을 중요시하는 타입등등,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수 있게 해준다. 그 외에도, "위원회"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수상한 놈들만 줄줄이 모아놓은 것 같지만 그 한명 한명의 특징을 보면 정말 잘도 이렇게까지 각각의 개성을 부여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진짜 현실속의 사회라면 아무리 공통의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라고 해도, 저마다 다양한 기질, 의견, 가치관을 가진 제각각의 인간들이 모여서 충돌을 빚어내기 마련이다. 살인위원회에서는 이런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딸을 살해당한 아버지가 법의 손길을 빠져나간 범인을 자신의 손으로 처벌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헐리우드의 B급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을 A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저자의 능력. 왜 <살인위원회>가 그저 그런 스릴러와는 다르냐 하면, 우선 철저한 디테일의 세세함. 장황하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매우 공들여서 작은 부분까지 그려낸 인물상이나 세계관. 묘사등이 리얼하면서도 정말로 강력한 박진감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디테일한 스릴러 소설을 써낼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후기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의하면 그렉 허위츠라는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두 직접 체험해 봐야 하는 열정적인 작가인 듯하다. 잠입수색, 정보원의 고용, 심지어는 낙하산이 펴지지않아 죽을뻔 한적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이 소설의 디테일이 그저 우연히 어디서 그냥 굴러 나온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그런 "책상머리 상상만으로는 쓸 수 없는 실감나는 묘사"가 여기저기 충실하게 채워넣어져 있어서 <살인위원회>를 반드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스릴러로 만들어 내고있다.

한가지 더, 그저 무작정 쏴죽이고 "이것이 나의 정의다" 하며 끝내는 단순 바보 전개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단지 오락만을 원한다면 악당을 닥치는대로 쓸어버리면서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것도 물론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연히 깊이는 없다. 이 작품에서는 "법의 한계"와 "범죄와 정의의 경계는 어디인가?" "개인에게 심판의 자격이 있는가?" 와 같은 주제를 꽤 깊숙히까지 반복해서 접근한다. 제대로 된 도덕,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팀은, 한 개인, 아버지로서의 범인에 대한 원망과, 법을 준수해야 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고뇌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싹오싹 잔혹한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가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분통터지는 사건들이 종종 보도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에 감정이입할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 결말은 그런 "사법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강렬한 야유"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엔터테인먼트로서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멋진 소설. 올해의 마이 베스트 후보에 또 한 작품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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