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제가 빈티지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 누군가의 인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빈티지 의상을 보면 이 옷을 입은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요.
정말 그들의 인생이 궁금해져요.
오늘 서울의 하늘은 다소 흐리긴 했지만, 화단에는 여러가지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공원에도 이런저런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저마다 센티멘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잠시 감상을 미루고 공공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 타고 온(새로 산)자전거를 도둑맞았습니다.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던지요. 요전날 타고 다니던 중고 자전거를 친구에게 생색내며 건네주고 난 참입니다. 그것을 다시 돌려달라고 할 생각을 하면 다소 마음이 무겁습니다만, 미리 걱정 해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 때는 그 때 가서, 그냥 되어가는 대로 해결해 가려고 생각합니다. 인생, 어느 정도의 계획성은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을 두고 일일이 속앓이 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걱정은 피하고, 사고회로는 잠시 정지해 놓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케세라세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일단 독서로 현실도피. 즐거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일명 "칙릿" 소설 한권을 집어들었습니다. "이사벨 울프"(Isabel Wolff)의 <꿈을 파는 빈티지샵>(A Vintage Affair)입니다. 낮선 작가이지만, 이사벨 울프는 이미 가든 디자이너, 애완동물 조련사, 기상 캐스터등, 조금 개성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수의 로맨틱 코미디를 써 온 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합니다. 저자의 8번째 작품인 <꿈을 파는 빈티지 샵>의 주인공 피비는 유명한 경매회사 "소더비"에서의 경력을 버리고 "빌리지 빈티지"(Village Vintage)라는 이름의 작은 빈티지샵을 시작한다는 설정입니다.
이 빌리지 빈티지의 진열대를 장식하는 것은,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의 벼룩시장에서 사온 드레스처럼 이름 없는 것에서부터, 1930년대의 마담 그레이의 이브닝 드레스, 1940년대부터 80년대의 유명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친 시대를 반영하는 컵케이크 드레스, 실크 새틴 나이트 가운 등등의 여러종류의 드레스나 슈트, 그외의 장신구까지 다양합니다. 훌륭한 디자인이나 천의 감촉, 섬세한 재봉, 특히,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 묘사를 읽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여성이라면 황홀함에 넋을 잃고 취합니다.
각각의 빈티지에는 각각의 역사가 있습니다. 일찌기 그것들의 소유자였던 여성들의 옛 이야기와 새로이 그것을 입는 현대여성들의 지금의 삶의 방식이 시간을 넘어 교차합니다. 세월의 흐름이나 죽음, 우정의 상실, 그리고 재생의 이야기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드레스의 역사와 함께 말해진다는 취향입니다. 따라서 피비의 빈티지샵은 시대를 초월해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자 이런저런 과거가 모여드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여든 과거들 중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쓰라린 아픔도 있습니다. 우선 피비의 아픔이 그렇습니다. 훌륭한 빈티지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드레스는 떠나보내려 합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것은 바보지요. 어쩔 수 없는 것을 두고 일일이 속앓이 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걱정은 피하고, 사고회로는 잠시 정지해 놓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과거와 마주했을 때 그 과거는 후회가 아닌 추억이 될수 있는 것이겠지요. 비록 가슴 아픈 추억이라 해도 추억이 된 과거는 더이상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이웃 할머니의 아픔을 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비의 그것은 결국 자신의 자아찾기입니다.
칙릿소설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정도까지 잘 짜여진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그냥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어지는 소설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공 피비의 주위에, 다정하고 핸섬하고 부자인 삼박자를 갖춘 남자가 3명이나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교제하고 있던 옛 남자친구, 이 소설 안에서 만나 교제하는 그(분), 소설의 마지막에 교제가 시작되는 그(이). <꿈을 파는 빈티지샵>은 2009년에 출판된 소설로, 시간적 배경도 최근입니다. 따라서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런던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의 광풍이 세상 어느곳 보다도 거세게 불어닥친 곳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금융 위기 속에서도 버젓이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부족해 이 3명의 남자의 면면을 보면, 엘리트 비지니스맨, 프랑스 와인 농장의 공동 소유자이기도 한 세련된 재벌 꽃중년, 할머니에게서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다비드 상을 빼닮은 핸섬 청년.... 이쯤되면 평범한 남성은 다 죽어야 하는 걸까요?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여자들의 참혹한 과거가 치유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상처입은 주인공 1명을 달래는데 3명의 퍼펙트한 남성은 과잉입니다. 빈티지 드레스가 정성스런 수선과정을 거쳐 새로이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 모티브가 되고 있기 때문에, 다소 심신이 지친 남자라든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자가, 실은 깊은 맛의 빈티지었다 하는 식으로 전개되리라 생각했더니, 그 점이 열등감을 불러일으켜서 조금 감점. 음, 기어코 별은 반개 빼야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반대로 여성이라면 등장하는 남자 수만큼 별을 추가하고 싶어지려나요.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