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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김영진 옮김 / 자화상 / 2021년 5월
평점 :
N23070
한 어린이가 있었다. 그의 신분은 높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귀족이라는 계급에 위축되지도 않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었다.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에는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척도나 비교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오로지 온 마음, 온 영혼,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P.22
어느날 그는 마리아라는 후작의 딸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그녀, 하지만 병약했던 그녀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말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다. 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다.
[우리는 거의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사에 응답이 없는 경우 얼마나 아픈 상처를 입는가를,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던 이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에는 듯이 슬픈 일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영혼의 날개는 깃을 뽑히고 꽃잎들은 거의 찢기고 시들어버린다. 고갈될 수 없는 사랑의 샘에는 단지 몇 방울 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단 몇 방울의 물에 매달려 우리는 혀를 축이고 갈증으로 타 죽는 것을 겨우 면하는 것이다. 이 몇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P.23
그러던 찰나에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그녀가 강하게 박힌다. 사랑이었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었던 그는 이제 마리아가 있는 성으로 놀러가지 못한다. 세월은 흐르고 그도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 대한 기억은 그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튼 나의 모든 사고는 부지중에 그녀와의 대화 형식으로 바뀌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 내가 지향 하는 모든 것, 내가 믿는 모든 것, 나의 좀 더 나은 모든 자아는 그녀에게 속해 있었다.] P.42
‘그녀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직 그곳에 있을까?‘ 어느날 그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진다. 마리아거 그에게 자기를 보러 와달라는 편지를 보낸것이다. 신의 뜻일까?
[˝내가 이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견신례를 받고 너에게 이 반지를 주던 날, 나는 곧 세상을 떠나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토록 여러 해를 살아 오며 여러가지 아름다운 일을 즐기고 있으니. 물론 괴로움도 많았지만, 그런 것은 빨리 잊는게 현명할 테지. 이제 진정으로 작별의 시간이 임박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1시간, 1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안녕, 내일 늦지 않도록 해.˝] P.53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리아를 만나러 간다. 여전히 병약한 신세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종교와 문학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각별한 우정을 나눈다. 비록 마리아의 건강때문에 오래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는것 만으로, 그녀와 이야기하는것 만으로 그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그렇지만 사랑에 관한한, 타인이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 왜냐하면 사랑에 있어서는 그것이 가짜라는 징표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 스스로 사랑을 아는 사람 말고는 누구도 타인의 사랑을 알 수 없다고. 또 그가 자신의 사랑을 믿는 한도 내에서만 타인의 사랑도 믿게 되는 것이라고.˝] P.59
이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마리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녀의 건강 때문에, 그녀와의 신분차이 때문에 그는 그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다른 이유 때문에 떠나는걸까?
[아, 단 한 번 사랑하고 나서 영원히 고독해져야 한단 말인가! 단 한 번 믿고나서 영원히 절망해야 한다니! 한 번 빛을 보고나서 영원히 장님이 되고말다니! 이것은 엄연한 고문이다. 인간이 행하는 여타 모든 고문도 이 고문에 비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P.83
결국 그는 자신이 잘못생각했음을 알고 다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돌아갈 결심을 한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을까?
[그녀를 뒤쫓아가, 저승에서라도 그녀를 다시 만나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나를 용서한다는 말을 듣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아, 인간은 왜 이다지도 삶을 유회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며, 잃어버린 시간은 곧 영원의 상실임을 생각하지 않고, 왜 이렇듯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룬단 말인가.] P.92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가 쓴 유일한 소설인 <독일인의 사랑>을 이제서야 읽었다. 나도 제목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었는데, 난 왜 이제서야 읽은건지 아쉽다. 요즘에는 만나기 힘든 정말 순수한 사랑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겐 심심할수도, 유치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좋았다. 이런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사랑이 꼭 결혼을 염두해야만 하는것도 아니고, 육체적인 열망을 해야만 하는것도 아니다. 그런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왜냐고?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봐. 꽃에 왜 피었냐고 물어봐. 태양에왜 비추냐고 물어봐. 내가 너를사랑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P.138
지난주에 다 읽었으나 너무 좋아서 리뷰를 못쓰고 있다가 오늘 다시 읽고 리뷰를 쓴다. (마찬가지로 윌리엄 트레버의 신작도 너무 좋아서 리뷰를 못쓰고 있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감동은 어느 장편보다도 깊었다. 사랑은 참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