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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어문학사 / 2015년 6월
평점 :
N23053
작품이 작가의 거울이라고 하면, 엔도 슈사쿠는 정말 착한 사람일 것이다. 작품에서 착함이 듬뿍 베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무종교인이지만 엔도 슈사쿠는 정말 좋다. 만약 종교를 가져야 한다면 천주교를 믿을 것이다. (갑자기? ㅋ)
이번에 읽은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에는 총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든 작품에서 엔도 슈사쿠의 자전적 느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밑줄을 그을 수 없을 정도로 내용, 문장들이 정말 좋았다. (사실 책 읽는 동안 연필이 없어서 못그었지만...)
리뷰를 잘 써보고 싶지만, 읽은지 좀 지나서 자세히 쓰긴 좀 그렇고...
<그림자>는 독실한 믿음이 있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종교를 버렸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믿음을 간직한 신부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침묵의 현대판 버젼이라고나 할까? 겉으로는 배교하였지만 마음속에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부님을 보면서 꼭 종교라는게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종견>도 좋았다.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때문에 마음의 짐을 가지고 사는 한 소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강아지 '구우'. 그 소년은 성인이 되어 잡종견 한마리를 또 키우게 되고, 이름을 다시 '구우'로 정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개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주인공은 어렸을적 상실해버린 개와 엄마를 떠올린다.
<6일간의 여행>은 작가인 주인공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위해 친척들을 만나러 가면서 듣게되는 충격적인 어머니의 과거를 담고 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린다. 결국 아버지와 이혼하게 되고, 주인공은 아버지와 사는데, 그런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6일간의 여행을 통해 주인공은 어머니가 남긴 잔혹한 흔적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자신의 행복과 욕망을 위해 주위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사람이 어머니 처럼 가까운 사람이라면?
<노방초>는 부부의 예루살렘 성지순례기를 그리고 있는데, 성지순례라는게 단어처럼 그렇게 성스러운건 아니라는, 힘든 여행 중 하나일 뿐이라는, 오래전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신에 대한 믿음 보다는, 예루살렘을 갔다 왔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려 했던걸까?
<나른한 봄날의 황혼>은 완치한 주인공과 병원에서 죽을날을 기다리는 한 여인, 그리고 과거에 경험하고 들었던 죽음에 대한 기억이 뒤섞인 이야기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주인공은 완치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병실에서 키우던 구관조에게 이렇게 말을 건낸다. "하느님은 정말 있을까?"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엔도 슈사쿠의 자전적 이야기인게 확실한 <만약> 역시 좋았다. 만약 이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누구나 해봤을텐데, 엔도 슈사쿠는 만약의 배후에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말을남긴다. 알수는 없지만...
이러다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모두 소개할까봐 그만써야겠다 ㅋ 엔도 슈사쿠는 장편도 잘 쓰지만 단편도 아주 잘 쓰는거 같다. 엔도 슈사쿠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단편이지만 장편만큼의 깊이와 울림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