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문트의 여정 너무 좋다. 타인의 머리속을 여행하고있는 기분이 든다‘

「아니야, 전혀 그런 게 아니야. 인생 자체가 나에게로 다가온 거야. 나는 떠나겠어. 아버지 없이, 누구의 허락도 없이 말이야. 너한테는 부끄러워. 나는 달아나는 셈이지」 - P125
너의 우정과 인내심, 그 모든 것이 고마워. 그리고 힘든 형편인데도 오늘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잖아. 또 나를 제지하지 않은 것도 고마워 - P127
누군가에게 의존해 있던 시절을 돌이켜본다는 것이 사실 그에겐 답답하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보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헤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친구가 저 건너 예배당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고 아무런 역할도 못 하다니! 그리고 이제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친구와 헤어져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고 그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며 그의 고결한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 P132
「네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있는 셈이지. 네가 소녀를 그리워한다면 나는 소년을 그리워해」 - P132
사랑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기가 느낀 것과 똑같은 깊은 쾌감을 상대방에게도 줄 수 있었다면 그런 느낌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것인가? 그런데도 어째서 온전히 행복하지는 못했던 것일까? 그 자신의 젊은날의 행운과 나르치스의 미덕과 지혜속에는 어째서 때때로 이 기묘한 고통이 스며드는 것일까? 이 나지막한 불안이, 덧없음에 대한 비탄이 스며드는 것일까? 그 자신이 사색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때때로 회의하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는것일까? - P155
<어째서 아무도 내 곁에 머무르지 않는‘것일까? 분명히 나를 좋아하고 사랑의 밤을 위해 불륜까지‘범하면서 어째서 내 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일까? 대개는 매를 맞을까 겁내면서도 어째서 모두들 금방 남편한테 되돌아가는 것일까? > - P159
긴 하지만 어디에서나 사랑이 그토록 덧없이 사라지는 것은 기이했고 다소 슬프기도 했다. 여자들의 사랑이든 그 자신의 사랑이든 그토록 빨리 충족되었다가 그토록 빨리 사그라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옳은 행동이었을까? 언제 어디서나 늘 이런 식이었을까? 아니면 그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비록 여자들이 그를 원하고 좋아하면서도 짚더미 속이나 이끼 위에서 잠깐 말없는 시간을 보내는것 이상으로는 함께 있기를 원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 자신의 성향 때문이 아닐까? 그가 방랑 생활을 하기 때문일까? 집이 없는 사람들의 삶을 대할 때면 집이 있는 사람들은 그 어떤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여자들이 그를 귀여운 인형처럼 가지고 싶어하고 껴안아주면서도, 그러고 나서는 매맞을 일이 뻔히 예견되는데도 모두들 남편에게로 되돌아간다면 오직 그 자신에게, 그 자신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 P160
이미 한참 전부터 골드문트는 그녀가 말에서 내리기 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던가. 사랑에는 말이 필요없지 않은가. 입을 다물고있어야만 햏는데. - P173
당신한테 제 본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니 유감이군요. 대체 제가 어째서 당신을 들뜨게 만들려고 애쓰겠습니까? 당신은 아름답고, 저는 그 아름다움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꼭 제입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군요. 이런 말보다 백배 천배 더 멋지게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말로는 당신한테 드릴 게 아무것도 없다구요! 말로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배울 게 없고, 또 당신이 저한테 배울 것도 없습니다」 - P179
당신은 너무 사랑스럽고 쾌활해 보여요. 그런데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면 쾌활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슬픔뿐이에요. 당신의 눈은 마치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든 것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거든요. 당신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가장 슬퍼 보여요. 당신한테는 고향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은 숲속에서 나타나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는 다시 길을 떠나 이끼 위에서 잠을 자면서 방황을 계속할 테죠. 그런데 저의 고향은 대체 어디일까요? 당신이 떠나가더라도 물론 저한테는 아버지도 계시고 여동생도 있죠. 제가 들어앉아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방과 창문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마음의 고향은 사라지고 말거예요. - P182
그래, 이봐, 세상은 죽음으로가득 차 있어. 온통 죽음뿐이야. 울타리마다 죽음이 걸터앉아 있고, 나무마다 그 뒤엔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 그러니 너희들이 담장을 쌓아올리고, 기숙사와 예배당과 교회를 지어도 아무 소용 없다구. 죽음은 창문 안쪽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웃고 있지. 죽음은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알고 있어. - P219
그런데 죽음에 맞서 저항했던 것이야말로 가장 강렬하고 기묘한 체험이었다. 자기 자신이 왜소하고 비참하며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죽음에 맞서 최후의 각오로 절망적인 싸움을 벌일 때면 생명의 아름답고도 놀라운 힘과 끈질김이 몸 속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그 체험은 여운을 남겼다. 그 체험은 쾌락의 몸짓이나 표정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슴속에 새겨졌다. - P221
선생님께서 만든 마리아 상에 표현되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저는 그것을 발견하고 너무나 기쁘면서도 놀랐습니다. 제가 찾아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 그 마리아 상의 아름답고 사랑스런 얼굴에는 너무나 많은 고뇌가 서려 있었고, 그와 동시에 모든 고뇌는 순연한 행복과 미소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하자 마리아 상은 마치 불길처럼 제 속을 스쳐갔습니다. 몇 해 동안 품어온 모든 생각과 꿈들이 입증되는 것 같았으며, 갑자기 이제는 더 이상 무용지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니클라우스 선생님, 진심으로 부탁드리오니 선생님 밑에서 배우게 해주십시오. - P238
죽음과 쾌락은 하나였다. 사랑과 욕망을 인생의 어머니라 부를 수 있다면 무덤과 사멸 또한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골드문트의 어머니는 이브였다. 그녀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죽음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녀는 영원히 낳고 또 영원히 죽이는 존재인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과 공포는 하나였다. 그녀를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뭔가를 말해 주는 비유가 되었고 신성한 상징이 되었다. - P265
제가 원하는 것은 생생한 삶을 맛보고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여름과 겨울을 느끼고, 세상을 구경하고, 세상의 름다움과 혐오스러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겪고 싶고, 이곳 선생님 밑에서 생활하고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잊고 벗어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마리아 상처럼 아름답고 가슴 깊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처럼 되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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