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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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1

사실 이런말을 하는 건 작가에게도 실례이고, 너무 뻔한 이야기 같지만 앤드류 포터의 단편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나서 안톤 체호프와 윌리엄 트레버가 떠올랐다. 뭔가 불투명 하면서도, 감정이 속에서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편들이었다. 게다가 여기 실린 단편들은 한결같이 모두 좋았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는 표제작을 포함해서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첫번째 작품인 <구멍> 부터 강렬했다.



<구멍>

가깝게 지내던 사람의 갑작스런 사고사를 목격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직접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엄청난 충격일 것이고, 그 순간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지나도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주인공은 친구인 탈이 구멍속에 빠져 죽는걸 목격하게 된다. 엄청난 충격때문에 주인공은 탈이 사고로 빠진건지, 아님 자신이 밀어서 그런건지, 아님 자신이 내려가라고 부추긴건지 햇갈리게 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애처로움이 깊게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고 하루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인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정확한 순간을 더이상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잔디 쓰레기봉지를 놓치던 순간의 탈의 표정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P.11



<코요테>

평생 단 한편의 작품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그 작품마져 실패였던 아버지는 영화를 찍기 위해 집을 자주 비운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견딜수 없었던 어머니는 회사동료인 다른 남자를 만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그랬던걸까? 아님 외로워서 그랬던 걸까? 이런 아버지를 지켜보던 나의 기억은 안타깝기보다는 담담하게 남아있다. 왜 어떤 사랑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데도 멀어질 수 밖에 없는걸까?

["인생 최악의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런 형편이 되어버린 모습을 본다는 것은."] P.44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표제작이자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크게 외면적인 이유와 내면적인 이유로 나눌수 있다. 개인적으는 내면적인 끌림을 더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내면적인 끌림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대학생이자 여주인공인 헤더에게는 의대를 다니면서 젊고 멋진 콜린이라는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로버트라는 노교수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면서 육체적인 관계가 아닌 정신적 떨림을 경험한다.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얘기는 절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콜린에게 언급할 수 없었던 일들을 로버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도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어도,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나누는 모든 말들은 그 바깥의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 P.106



그녀는 노교수와의 정신적 교감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남자친구인 콜린에게 숨긴다. 아니 숨길수 밖에 없었다. 노교수를 제외하고 어느 누가 그녀의 떨림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난 당신과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는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다예요 나는 우리의 대화가 즐거워요. 당신 역시 즐거워한다고 생각하고."] P.102



결국 남자친구인 콜린은 그녀와 노교수의 만남을 목격하고만다. 하지만 콜린은 그녀에게 다시는 노교수를 만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그녀를 용서한다. 그리고 의대를 졸업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녀는 노교수를 잊을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P.119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가장 좋았다.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싶었는데 책을 읽은지가 좀 지나다보니 기억이 잘 안나서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고전과는 약간 결이 다른 최신판 고급 단편을 읽은 기분이었다. 체호프를 좋아하는 분들이 읽으신다면 만족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Ps. 책을 읽고 바로 리뷰를 쓰는 습관을 길러야 겠다. 다읽었는데 리뷰를 못쓴 두개의 작품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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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14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앤드루 포터의 이 책은 오래
전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
니다.

그 다음에는 거의 소식이 없
네요.

리뷰는 책 읽는 대로 바로 쓰
지 않으면 자꾸만 뒤로 밀리게
되더라구요. 바로 바로 쓰지
않으면 망각 속으로...

새파랑 2022-11-14 12:29   좋아요 2 | URL
아 이 책 말고 다른 작품은 없나보군요 ㅜㅜ 문체도 문장도 마음에 드는데 ㅜㅜ

저도 이놈의 망각 때문에 일단 고민하지 말고 읽고나서 바로 쓰려고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14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편집들 중에 역시 표제작이 좋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정신적 교류가 중요한 듯합니다. 육체적 교감이야... 오래 못가잖아요^^;

새파랑 2022-11-14 16:15   좋아요 1 | URL
괜히 표제작이 아니었습니다 ㅋ 교감도 나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아닐까요? 전 표제작 다 읽고나서 ‘와 좋다‘ 이랬었는데 몇일 지나고 나서 쓰려니 그때의 느낌을 리뷰에 잘 못담은것 같아요 ㅜㅜ

mini74 2022-11-14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순간 새파랑님 이제 물리책까지? 했습니다. ㅎㅎ 표제작의 제목이 독특합니다.

새파랑 2022-11-14 17:33   좋아요 1 | URL
저는 물리책보다는 물리치료가 필요학니다 ^^ 혹시 시간되시면 표제작은 한번 읽어보세요 ~!!

바람돌이 2022-11-14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와 안톤 체홉이라니... 최고의 뽐뿌입니다. ^^
제가 늘 하는 결심이 읽으면 바로 리뷰를 쓰자인데 진짜 진짜 어려워요. 지난 달에는 거의 반정도는 밑줄긋기 외에 아무것도 못하고 넘어갔어요. 이게 또 쓰야 할 책이 막 쌓이면 그냥 포기하게 되더라는..... ㅎㅎ

새파랑 2022-11-14 17:34   좋아요 2 | URL
전 그래서 오늘부터 리뷰를 다 쓰기전까지는 다음책으로 안넘어가겠다는 다짐을 세웠습니다 ^^

페넬로페 2022-11-14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실린 단편도 흥미로워요.
매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ㅠㅠ
책 읽고 바로 리뷰 쓰기, 아자아자^^

새파랑 2022-11-15 11:29   좋아요 1 | URL
이 책은 페넬로페님 100퍼센트 좋아하실 겁니다 ^^ 오늘부터 리뷰 밀리지 않기 시작하시죠 ~!!

파이버 2022-11-14 2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에어 표제작이 제일 좋았습니다ㅎㅎ 책 읽고 리뷰 바로 쓰기 참 어려운 일이에요ㅜㅜ 넘 많이 밀리면 마치 숙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새파랑님 남은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새파랑 2022-11-15 11:30   좋아요 1 | URL
파이버님과 저랑 갬성이 비슷하신거 같아요 ^^

제가 원래 책 두권 읽고 리뷰 쓰기였는데 이젠 바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