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좋다. 이런 일관된 단편집이라니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 - P28

그녀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 젊은 그녀에게서 미래를 지워내버린 것인지, 아무런 희망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게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자흔이 지쳤다는 것. 이십몇 년이 아니라 천 년이나 이천 년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사람처럼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다만 신기한 것은 때때로 자흔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이었다. 모든 것에 지쳤으나 결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은 것 같은 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이 순간순간 거짓말처럼 그녀의 어둠을 지워내버리곤 했다. 그런 자흔을 보면서 나는 종종 어떻게 사람이 저토록 희망 없이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의아해지곤 했던 것이었다. - P33

그리고..... 열차표가 한 장 들었어요.
어디로 가는 푭니까?
...여수 - P41

어느 곳 하나 고향이 아니었어요. 모든 도시가 곧 떠나야 할 낯선 곳이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죠. 여수에 가보기 전까지는 그랬어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 P44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 거예요. 난 너무 기뻐서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지경이있이요, 죽는 게 무섭지 않다는 결 그때 난 처음 알았어요. 별게 아니있이요. 저 정다운 하들, 바람, 땅, 물과 섞이면 그만이었이요....이 거추장스러운 몸만 벗으면 나는 더 이상 외로울 필요가 없겠지요. 더 이상 나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내 외로운 운명이 그렇게 찬란하게 끝날 거라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큰 소리로 그 기쁨을 외치고 싶었는지, 난 그때 갯바닥을 뒹굴면서 마구 몸에 상처를 냈어요. 더운 피를 흘려 개펄에 섞고 싶었어요. 나를 낳은 땅의 흙이 내 상처 난 혈관 속으로 스며들어 오게 하고 싶었어요. - P56

"넌 언제나 좋은 것만 생각하지? 좋은 방향만, 아주 잘되어 나갈 것들만 말이야. 하지만 난 달라, 난 언제나 나쁜 쪽만 생각해. 내 인생도!"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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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5-06-09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 좋죠♡
전 한강의 초기 단편이 좋더라고요!
<노랑무늬영원>도 좋아요.

새파랑 2025-06-10 10:13   좋아요 0 | URL
곧 노랑무늬영원도 만나보겠습니다~!!!
이책 완전 좋아요^^

초록비 2025-06-10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인용문 중 하나를 읽고 또 읽고 그것도 모자라 수첩에 적어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새파랑 2025-06-10 10:12   좋아요 1 | URL
아직 밑줄을 다 못적었어요~! 재독하고 있는데 너무 좋습니다. 역시 한강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