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감에 젖어 언제까지고 버스가 오지 않길 바라고 있건만, 당신은 그런 도취를 함께 나눌 수가 없다. 배는 뱃사공에게 맡기고 자신은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련만, 당신은 시각표 끄트머리에 자신의 일정표를 덧붙이며, 모처럼의 중단을 뛰어넘어 조급히 미래로 내달리려 한다. - P15
계획과 다른 열차를 타고 빨리 도착한다는 마음에 우쭐해 있으면, 여행의 신들에게 노여움을 사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애초에 타려고 한 열차에서 사고가 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앞 열차를 탔다가 쓸데없는 사고를 당하면 모두 자기 책임이 되어버릴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전철을 떠나보내고 멍하니 플랫폼에 서 있었다. - P25
그래, 이미 시작한 얘기에서 물러설 순 없어. 지옥에 가도 친구는 생긴다. 이렇게 된 이상 갈 데까지 가보자. 독을 마실 바엔 그릇까지 핥아야지, 범죄자의 촌극을 끝까지 지켜봐주자 등등 마음에도 없는 생각이 당신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P35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어쩌면 하고픈 말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아직 언어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말이 되기 이전의 ‘뭘 찾고 있는가‘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야간열차의 선로 소리 같은 걸까. - P45
청춘의 아름다움은 다리가 없어도 쏜살같이 도망친다고들 하잖아 - P69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시베리아 대륙 한가운데 오그라든 균열 하나가 있다. 그것 때문에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도 언젠가 둘로 갈라져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해진다. 호수치고는 너무 크다. 일본 혼슈 지역 면적과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혼슈보다 클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물에는 바닷물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요컨대 옛날에는 그곳이 바다였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대륙은 두 대륙이 맞부딪쳐서 하나로 합쳐진 걸까. 바이칼 호는 벽에 난 균열 같기도 하다. 그리로 들여다보면 저 너머로 태고의 세계가 보인다. - P75
잊힌 이별이 가장 쓰라린 법. 당신 마음은 헤어진다는 상상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로 헤어져버리는 대신 여행을 떠나 잊으려고 한 거죠? 그래서 열차를 탔죠? - P1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