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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산문
박준 지음 / 달 / 2021년 12월
평점 :
N22025
개인적으로 시를 즐겨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시인이 있는데, 박준 시인님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한분이고, 시인님의 작품도 네권 소장하고 있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계절 산문> 네 작품이다.
83년생 시인이어서 그럴까? 나랑 거의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지 다른 시인의 작품에 비해 공감이 잘 되고, 잘 읽혔다. 그리고 시인의 성격(?) 같은 것이 왠지 나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독한 술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이 책은 읽기 시작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읽었다. 그리고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한번 읽을 책이 아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은 살다보면 시인의 감성이 필요할 테니까.
시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보다는, 즉각적인 감성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계절은 끝나지 않고 계속 돌아온다. 인생의 어떤 것도 가끔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기쁨이든지 슬픔이든지 간에 말이다.
[시작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나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시간과 공간을 얼마쯤 비우고 내어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P.15
[온갖 무렵을 헤매면서도
멀리만 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
그 끝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니더라도] P.21
[몇 해가 지난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아직 그 길 어딘가를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탓에 과거는 가깝고 미래는 멀게 느껴집니다.] P.38
[과거를 생각하는 일에는 모종의 슬픔이 따릅니다. 마음이 많이 상했던 일이나 아직까지도 화해되지 않는 기억들이 슬픔을 몰고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문제는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은 장면을 떠올리는 것에도 늘 얼마간의 슬픔이 묻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낸 일이라 생각합니다.] P.38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너처럼 후회하고 괴로워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 P.91
[어쩌면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에 반쯤 머물러 있고, 나머지 반은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P.97
[지상의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애초부터 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어쩌면 날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180
[누가 먼 곳에서 부르면 가야지. 당장은 못 가더라도 길이 아무리 고단해도 가야지. 멀리 있는 이를 이유 없이 부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가 멀리서 부르면 가야지.] P.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