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감정이 잘 느껴진다. 무해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러한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다 읽음) 와 이 책 너무 좋다ㅜㅜ






어린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 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어렸을때 만났던 사람들의 의미) - P97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른이 되어서는 기다려도 기다리는건 오지 않는다.) - P99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언젠가 다시 펴볼수 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 P158

나에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준다는, 나를 세상에 매달려 있게 해준다는 안심을 준 사람이. 그러나 모래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 P163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거야. - P179

나는 무정하고 차갑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모래를 사랑했고, 운이 좋게도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은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 P182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 P222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마술. 그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는 가지만 다시 무에서 유로는 가지 않는 분명한 법칙을 따랐다. 그 룰을 알고 있는 이상 꽃이 필 때 웃고 비둘기가 손등에 앉아 있을 때 감탄할 일이었다. - P223

그러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면. 사실 사라졌다는 것이 너무도 교묘한 트릭이라면 어떨까. - P224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쉽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너무너무너무 멋지고 와닿는 문장이다ㅜㅜ) - P225

(사람과의 만남이) 이 정도로 간편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대체 왜 우리는 그렇게 수없이 만나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거지.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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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12 0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떠낸 문장만 읽어도 또 좋으네요ㅠㅠ 최은영 돌아와…

새파랑 2021-06-12 07:49   좋아요 2 | URL
공쟝쟝님의 1픽 작가님의 이책 너무 정말 좋네요^^ 왜 이제 읽었는지 안타까웠어요 ㅜㅜ

페크pek0501 2021-06-12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25쪽의 글. 저도 너무 와닿습니다.
제 식으로 문장을 바꿔 쓰면 -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 사랑하게 되고, 잊기로 마음먹으면 잊게 되는 게 마음이라면 인간은 지금보다 합리적인 인간이 되리라.

새파랑 2021-06-12 16:46   좋아요 2 | URL
비슷한 부분에 공감이 되니 반갑네요. 마음이라는게 항상 생각대로 되는게 아니어서 가끔은 슬프지만 그래서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는거 같아요^^

scott 2021-06-12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은영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이라서 더더욱 호감!!


새파랑 2021-06-12 16:56   좋아요 1 | URL
스콧님이 호감이라니 전 극호~!! 오늘부터 팬시작 해야겠어요^^ 리뷰 써야되는데 ㅎㅎ

희선 2021-06-13 0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소설집이 나온다는 말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아직 소식은 없네요 몇해 전에 《쇼코의 미소》 보고 좋게 생각했습니다 이 책도 만났습니다 다른 한국 소설은 좀 어렵기도 한데, 최은영 소설은 어쩐지 슬픕니다 슬픈데 보는... 그러고 보니 한동안 소설을 못 썼다는 말 본 것 같네요 어디에서 그 말 봤는지...


희선

새파랑 2021-06-13 16:24   좋아요 1 | URL
저도 <쇼코의 미소> 보고 이 책 읽었는데, 이책이 저는 40퍼센트 만큼 더 좋네요. 신작나오면 바로 달려가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