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2번째 장편소설이자 내가 읽은 5번째 작품이다.
(남아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마, 클라라와 태양, 창백한 언덕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최근에 하드커버로 이시구로의 책들의 개정판이 발매되었다는데, 사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된다 ㅎㅎ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작품인 ‘창백한 언덕풍경‘ 처럼 초반부와 중반부에는 모호하고 창백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후반부는 모호하고 창백한 안개 대신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며, 이후의 ‘이시구로‘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특징인 결말을 향한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그러면서 독자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되고...마치 스릴러 장르를 보는 기분이 들게 된다.
책의 줄거리는 화가인 ˝오노˝의 2차세계대전 전과 후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전쟁 전 그는 일본의 유명한 화가로, 아내와 아들, 그리고 두 딸을 두었다. 하지만 전쟁과 폭격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전쟁 후에는 미술계를 은퇴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둘째딸인 ˝노리코˝가 아버지의 과거 때문인지 또는 다른 이유 때문인지 첫 연인과 해어지게 되고....
다른 명망있는 가문에 ˝노리코˝를 시집보내기 위해 ˝오노˝는 과거의 인물들을 찾아가 그의 과거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 시대에는 결혼 전에 사람을 고용하여 상대방의 집안조사를 했었다고 한다.)
「저는, 사죄의 의미로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아야 마땅한데 너무 비겁한 나머지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내서 그런 고귀한 행동은 저희 회장님 같은 이들이 떠맡는 거죠. 벌써 전쟁중에 있던 자리로 복귀한 사람들도 많답니다. 그 중에는 전범이나 다름없는 이들도 있고요. 정말 사죄해야 할 사람들은 그런 이들일 겁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과거 그가 저지른 만행이 독자들에게 들어나게 되고, ˝오노˝는 ˝노리코˝를 결혼시키기 위해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을 반성하게된다.
(그전까지는 과거의 그의 행동은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오노˝의 그림 스승인 ˝모리˝는 예술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로 그가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오노˝는 예술의 길을 버리고 전쟁과 천왕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며, 이를 통해 명예와 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과 멀어지게 되고, 동료들을 다치게 한다.)
그리고 전쟁 후에는 주위로부터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전범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기억속에서 그의 잘못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반성을 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과거의 잘못은 어쩔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삶의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함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과 권위가 틀림없이 있다. 어쨋든 신념에 차서 저지른 실수는 그렇게 부끄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수치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인식을 끝으로 ˝오노˝는 젊은이들의 미래를 기대하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것은 ‘기억‘과 ‘과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관적인 생각을 정리하자면,
1.과연 현재의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것이 정확한 것인가?
2. ‘기억‘이란 것이 중요한 일부분이 첨부되고 삭제된 보정된 것이 아닌가?
3. 동일한 ‘과거‘를 가지고 내가 ‘기억‘하는것과 상대방이 ‘기억‘하는것은 왜 차이가 나는 것인가?
4. ‘과거‘의 나의 잘못을 현재의 내가 인정한다고 해서 그 ‘과거‘의 잘못이 없어지는것인가?
인데, 이러한 것이 ‘이시구로‘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닐수도 있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인 ‘부유하는 화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데
˝오노˝의 스승인 ˝모리˝가 추구했던 것이 ‘가장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을 그리는 화가‘ 였다면,
˝오노˝가 살았던 인생은 ‘정치적 그림을 그리는 화가‘ 였기 때문에
‘예술의 순수성에서 벗어나 현실과 타헙한 타락한 화가‘를 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 ‘이시구로‘는 정말 글을 잘쓴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다만 ‘일본‘ 중심의 2차대전 역사가 배경으로 약간 들어가 있다 보니 이 점을 참고해면 좋겠다.
책의 날 기념 리뷰는 여기서 마무리~!!
다음 ‘이시구로‘의 책으로 ‘녹턴‘을 읽어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