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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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이십대 남녀가 우연히 만나며 그후 ‘여덟밤’ 동안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 참 지루했고 로맨틱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워낙 두꺼운 볼륨의 작품인 만큼, 게다가 수많은 갈등이나 사건 등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심리만을 조명하여 그에 온전히 초점을 맞춘 만큼, 작품의 전체적인 전개 속도는 분명 느렸다. 그로 인해 지루한 감정이 필히 느껴질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사랑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 정말 ‘로맨스 소설’의 정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차분하게 한땀한땀 전개되는 밀도 높은 로맨스 소설을 찾노라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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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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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지는 오래 되었지만 ‘여름’이 되면 읽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서야 꺼내든 이디스 워튼의 작품이다. 사실 난 이 책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세계문학전집에 실린 로맨스 작품들, 이를 테면 제인 오스틴이나 프랑수아즈 사강, 에밀리 브론테 등의 작품들이 단 한 번도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은 달랐다. 문장 하나하나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나뭇잎이면 나뭇잎, 꽃봉오리면 꽃봉오리, 잎사귀면 잎사귀가 숨을 불어넣어 향기가 퍼져 나가게 도왔다. 그중에도 코를 찌르는 듯한 소나무 수액이 백리향의 짜릿한 향과 고사리의 희미한 향을 압도했으며, 이 모든 것이 햇볕을 받아 거대한 짐승의 숨결 같은 촉촉한 흙냄새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53p

위의 문장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부터가 ‘여름’인 만큼, <여름>은 여름의 계절감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묘사들이 정말 뛰어나다. 보통은 이런 문장들을 읽을 때면 서사의 진행이 방해를 받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곤 하는데, <여름>은 이런 문장들을 읽는 매력이 뛰어났다. 이 소설을 읽는 지금이 여름이라 그런가, 아니면 장황하지 않게 간결하면서도 뛰어난 묘사가 담긴 문체여서 그런가. 무튼 ‘여름’의 느낌이 아름다웠던 작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따금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할 때 두 사람의 거리는 가장 많이 벌어졌다. 교육과 기회에서 비롯된 격차는 채리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그의 칭찬이 서로를 아주 가깝게 느끼게 할 때조차 어떤 우연으로 말 한마디, 어떤 무의식적인 암시가 채리티를 다시 심연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72~73p

그리고 <여름>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심리 묘사’일 것이다. 자신의 출생 신분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는 여성 주인공 ‘채리티’가, 외모와 교양 모든 것이 완벽한 남성 주인공 ‘하니’를 만나 사랑의 떨리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와 마냥 가까워지기는 힘들어하는 열등감을 이 소설은 너무도 잘 표현해내었다. 

채리티는 하니가 두 팔로 안아 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우유부단하게 몸을 돌렸다. 마지막 빛이 ‘산’ 너머에서 사라졌다. 방안의 모든 물건이 회색으로 변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가을의 냉기가 과수원 아래 골짜기에서 올라와 두 사람의 상기된 얼굴을 차갑게 어루만졌다.

192p

그러나 단 한 가지, 결말이 이 모든 것을 망쳤다… (스포일러 주의)

소설은 초반부터 하니가 채리티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둘 사이가 이어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올바른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른 부분이다. 어째서 채리티가 후견인과 결혼하는 결말로 소설의 끝을 맺게 된 것인가…?! 다시 생각해도 속에서 열불이 솟구쳐오른다. 채리티의 ‘성장’ 과정을 그린 문학이라는 뒷표지의 문구가 무색해지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정말 성장 서사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면 채리티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그곳에서도 혼자서 묵묵히 잘 살아가는 결말이 합당하지 않은가? 대체 이게 무슨… 물론 이 소설의 매력은 차고 넘치도록 충분히 느꼈기에 이디스 워튼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볼 요량이 있으나, 어쨌든 이 소설은 별 다섯개에서 결말로 인해 하나가 빠진, 용두사미 느낌의 작품이었다. 아, 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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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1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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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말부터 하고 싶다.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작품이었다는 걸. 그치만 한마디만 더 붙이자면, 그렇다고 이 소설이 안좋은 작품은 아니었다고도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두고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운동권 세대의 후일담 소설’ 이라든지 ‘평범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난 주인공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 이라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소설은 그저 ‘실패 소설’이었다.



‘실패 소설’이라는 괴상한 단어는 무슨 뜻인가 하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매번 ‘실패’하기만 하는 소설로 읽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1980년대의 대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데모 등의 운동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이 운동에 참여하긴 하지만 간절하고 처절하게 구호를 부르짖으며 정의감을 보이기 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스스로를 운동에 헌신하는 투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결국 그 운동권에서 빠져나와 다시금 죄책감을 느껴한다.



또한 주인공은 대인관계에서도 ‘실패’를 경험한다. 청소년기 시절에는 주변 친구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학에 올라와서도 주체적으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성적 욕망을 자각하지 못하고 방황해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연애를 통해 해결되는 듯 보이나 결국 그 연애 또한 최악의 이유로 인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보다 먼저 결별을 말하고자 했던 애인이 실은, 주인공의 절친과 결혼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주인공은 면도칼로 손목을 긋는 자살 기도를 하게 되지만, 이 또한 결국 포기한다. 즉, 또 한번 실패한다.



이십대 청춘의 모습을 이토록 어둡고 절망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푸르른 틈새>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죄의식과 상처, 무력감과 회환과 같은 심상이 전 세대의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랐던 걸까. 그렇게 이 시대의 감성을 그 후에도 계속해서 공유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분명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좋은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밝고 따듯한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는 나의 취향과 맞지 않긴 했다. 



🗣 저는 작년에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이라는 소설집을 준비하며 ‘다크 권여선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귀환인 까닭은 다크의 시작이 있다는 뜻인데, 저에게 그 처음에 놓인 작품이 바로 <푸르른 틈새>입니다. 어둡고 축축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공기, 그런데 어쩐지 그 안에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다크함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에 오래 젖어 책을 읽어나가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이달책을 구매하면 받을 있는편집자 레터 있던 말이었다. ‘다크 권여선이라니, 역시 그만큼 어둡고 축축한 소설이었구나. 누군가는 소설을 분명히 좋아하고 읽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일단 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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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스페셜 에디션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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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에 이어 두번째로 앤디 위어의 작품 <마션>을 읽었다. <아르테미스>를 읽고 한동안 앤디 위어 작품을 책장에 짱박아(?)두다가 우연하게 만난 학교 선배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강력 추천에 힘입어 먼저 읽게 된 <마션> 이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우주 삼부작 중 가장 마지막에 읽고 싶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아주 유명한 만큼 <마션>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화성에 불시착한 우주 연구원의 우당탕탕 좌충우돌 화성 생존기 및 탈출기. ‘화성’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다루었길래 조금은 지루한 감이 있을 거라 걱정하였는데, 기우였다. 서바이벌 생존 서사의 스릴과 톡톡 튀는 유머를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놓치지 않았다.

다만 책에서 조금 아쉬웠달까, 힘들었던 점은 과학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이 문과적인 뇌를 가진 나로서는 완벽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주인공 와트니가 다루는 로버, 패스파인더 등의 장비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등등... 소설에서 설명을 안하는 건 아니지만 부족한 과학적 상상력을 지닌 나의 두뇌는 그 서술을 온전히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부분들은 영화를 통해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부분들까지 영상으로 구체화되어 관객들에게 정보를 완벽하게 전달한다는 점이 <마션>이라는 작품에서는 아주 큰 장점이 되었다. 소설과 영화의 사소한 몇몇 부분들에서 차이가 있는 점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던 데다가, 애초에 둘은 거의 동일한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를 따라가기 때문에 책을 읽은 뒤 영화를 보니 그 감상이 훨씬 더 크게 보충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정말 재밌게 읽었고, 정말 재밌게 관람했다. 학교 선배가 추천한 <프로젝트 헤일메리> 또한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데, 기대가 점점 더 하늘을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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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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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라는 부제가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해 게시물 삭제자였던 주인공이 겪은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영향을 보여 주고 있는 이 소설은, 아마 소셜 미디어의 확산성 아래 놓인 지금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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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소녀가 아주 무딘 주머니칼로 자기 팔을 쑤시는 실시간 방송을 봤어요. 마구잡이로 쑤셔대서 결국 엄청난 양의 피를 보고야 말았죠. 어떤 남자가 자신의 독일셰퍼드를 발로 세게 차는 영상도 봤어요. 그 불쌍한 개는 냉장고에 쾅 부딪혀서 낑낑댔죠. 내가 본 것 중에는 두 아이가 서로를 노려보면서 위험할 만큼 많은 양의 시나몬을 한꺼번에 입에 욱여넣는 영상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히틀러를 찬양하는 노래 영상도 있었죠. 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공개적으로 이웃과 동료,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히틀러를 찬양해댔어요. 직장 동료들과 임원들에게 보란 듯이, 조그마한 보트에 꽉 차게 들어앉은 이민자들 사진 밑에 ‘히틀러는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했어야 했다’라는 글을 내걸기도 했죠. (…) 학대당하는 개들이나 나치식 경례, 칼로 자해하는 소녀는 전형적인 영상이죠. 이런 영상들은 너무나 많아서 발에 챌 정도였어요. (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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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좌절감은 어떤 젊은 연수자가 자기 차례 때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보면서 조금 괜찮아졌어요. 그 여자가 시험 문제로 받은 건 어떤 남자가 로트바일러 개를 성폭행하는 영상이었는데, 여자는 뛰쳐나간 지 십 분 뒤에야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시험장으로 돌아왔어요. 그래도 결국에는 시험장을 뛰쳐나간 여자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채용되었답니다. (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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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을 포함한 유해 게시물 삭제자들은 폭력적, 비윤리적, 혐오적인 온라인 게시물들을 직업적으로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했다. 아무리 직업적 자아와 본래의 자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런 영상들이나 게시글들에 끊임없이 노출된다면 결국 자신의 사생활에도 영향이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은 그런 인물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단순하게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인물도 있는 반면 지구 평면설 같은 음모론을 맹신하게 되는 인물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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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해소셜 미디어의 어두운 이면, 잔인함과 망상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고통이 되었다. 피해를 인간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뛰어난 소설가가 필요했다. 하나 베르부츠는 기민하고 미묘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에서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말한 이언 매큐언의 의견에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소셜 미디어에 내재된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소설은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온라인 세계를 자주 애용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처럼 읽혀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감상 또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자신이 참으로 모순적으로 느껴져 당황스럽기도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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