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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도서협찬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라는 부제가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해 게시물 삭제자였던 주인공이 겪은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영향을 보여 주고 있는 이 소설은, 아마 소셜 미디어의 확산성 아래 놓인 지금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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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소녀가 아주 무딘 주머니칼로 자기 팔을 쑤시는 실시간 방송을 봤어요. 마구잡이로 쑤셔대서 결국 엄청난 양의 피를 보고야 말았죠. 어떤 남자가 자신의 독일셰퍼드를 발로 세게 차는 영상도 봤어요. 그 불쌍한 개는 냉장고에 쾅 부딪혀서 낑낑댔죠. 내가 본 것 중에는 두 아이가 서로를 노려보면서 위험할 만큼 많은 양의 시나몬을 한꺼번에 입에 욱여넣는 영상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히틀러를 찬양하는 노래 영상도 있었죠. 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공개적으로 이웃과 동료,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히틀러를 찬양해댔어요. 직장 동료들과 임원들에게 보란 듯이, 조그마한 보트에 꽉 차게 들어앉은 이민자들 사진 밑에 ‘히틀러는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했어야 했다’라는 글을 내걸기도 했죠. (…) 학대당하는 개들이나 나치식 경례, 칼로 자해하는 소녀는 전형적인 영상이죠. 이런 영상들은 너무나 많아서 발에 챌 정도였어요. (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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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좌절감은 어떤 젊은 연수자가 자기 차례 때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보면서 조금 괜찮아졌어요. 그 여자가 시험 문제로 받은 건 어떤 남자가 로트바일러 개를 성폭행하는 영상이었는데, 여자는 뛰쳐나간 지 십 분 뒤에야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시험장으로 돌아왔어요. 그래도 결국에는 시험장을 뛰쳐나간 여자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채용되었답니다. (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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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을 포함한 유해 게시물 삭제자들은 폭력적, 비윤리적, 혐오적인 온라인 게시물들을 직업적으로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했다. 아무리 직업적 자아와 본래의 자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런 영상들이나 게시글들에 끊임없이 노출된다면 결국 자신의 사생활에도 영향이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은 그런 인물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단순하게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인물도 있는 반면 지구 평면설 같은 음모론을 맹신하게 되는 인물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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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대해 “소셜 미디어의 어두운 이면, 그 잔인함과 망상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고통이 되었다. 그 피해를 인간적으로 탐구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뛰어난 소설가가 필요했다. 하나 베르부츠는 기민하고 미묘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에서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말한 이언 매큐언의 의견에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소셜 미디어에 내재된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온라인 세계를 자주 애용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처럼 읽혀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감상 또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나 자신이 참으로 모순적으로 느껴져 당황스럽기도 한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