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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1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일단 이 말부터 하고 싶다.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작품이었다는 걸. 그치만 한마디만 더 붙이자면, 그렇다고 이 소설이 안좋은 작품은 아니었다고도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두고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운동권 세대의 후일담 소설’ 이라든지 ‘평범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난 주인공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 이라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소설은 그저 ‘실패 소설’이었다.
‘실패 소설’이라는 괴상한 단어는 무슨 뜻인가 하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매번 ‘실패’하기만 하는 소설로 읽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1980년대의 대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데모 등의 운동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이 운동에 참여하긴 하지만 간절하고 처절하게 구호를 부르짖으며 정의감을 보이기 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스스로를 운동에 헌신하는 투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결국 그 운동권에서 빠져나와 다시금 죄책감을 느껴한다.
또한 주인공은 대인관계에서도 ‘실패’를 경험한다. 청소년기 시절에는 주변 친구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학에 올라와서도 주체적으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성적 욕망을 자각하지 못하고 방황해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연애를 통해 해결되는 듯 보이나 결국 그 연애 또한 최악의 이유로 인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보다 먼저 결별을 말하고자 했던 애인이 실은, 주인공의 절친과 결혼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주인공은 면도칼로 손목을 긋는 자살 기도를 하게 되지만, 이 또한 결국 포기한다. 즉, 또 한번 실패한다.
이십대 청춘의 모습을 이토록 어둡고 절망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푸르른 틈새>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죄의식과 상처, 무력감과 회환과 같은 심상이 전 세대의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랐던 걸까. 그렇게 이 시대의 감성을 그 후에도 계속해서 공유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분명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좋은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밝고 따듯한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는 나의 취향과 맞지 않긴 했다.
🗣 저는 작년에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이라는 소설집을 준비하며 ‘다크 권여선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귀환인 까닭은 다크의 시작이 있다는 뜻인데, 저에게 그 처음에 놓인 작품이 바로 <푸르른 틈새>입니다. 어둡고 축축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공기, 그런데 어쩐지 그 안에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다크함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에 오래 젖어 책을 읽어나가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이달책을 구매하면 받을 수 있는 ‘편집자 레터’에 있던 말이었다. ‘다크 권여선’이라니, 역시 그만큼 어둡고 축축한 소설이었구나. 누군가는 이 소설을 분명히 좋아하고 잘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일단 나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