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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평점 :
<초급 한국어> - 문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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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에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의 리뷰를 올렸었다. 그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었는데, 그 책과 같이 샀던 책이 바로 <초급 한국어>다.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라는 소재가 흥미로워서 구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완독 후 왓챠피디아에 나와있는 리뷰들을 보니 반응이 다들 뜨뜻미지근했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잘 모르겠다는 리뷰도 있었고, 작품 자체가 애매하게 느껴진다는 후기도 있었다. 이 리뷰들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알 것 같지만 나는 이 리뷰들을 작성한 분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깔깔거리며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 씁쓸한 입맛을 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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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음이 나왔던 이유부터 말해보자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가 ‘숫자체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하나-둘-셋’의 고유어 숫자체계와 ‘일-이-삼’의 한자어 숫자체계를 혼용하는데, 외국인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체계를 사용해야 하는지 혼동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특히 시간 표현에서는 ‘하나시’가 아니라 ‘한시’라고 하는 이유를 묻는 모습이 가장 웃겼다.) 그들을비웃는 게 아니다. 한국인들은 이런 규칙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탓에 당연하게 여기지만, 외국인들에겐 낯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에 대한 웃음이었다. <초급 한국어>에는 ‘숫자체계’ 말고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외국인들의 고군분투가 많이 등장하는데, 한국인도 한국어를 어려워하는데 외국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절로 그들을 응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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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한국어 강의를 듣는 외국인이 아닌, 강사 ‘문지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지혁’이 뉴욕에서겪는 에피소드나 그의 개인사 등의 스토리가 이 작품의 주된 서사다. 나는 이 부분이 달콤씁쓸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되고자 하지만 공모전에는 항상 떨어지고, 어머니나 여동생과는 갈등을 겪고, 7년동안 사귄 애인과는 헤어지는 등 ‘문지혁’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다 가슴 아프지만, ‘문지혁’은 본인이 겪는 이 현실들을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체로 털어낸다. 때문에 ‘문지혁’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와주인공의 이름이 같아서 사실은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조금 각색하여 소설로 담아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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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부분들이 호불호를 가리게 만든 것 같지만 이까도 말했듯이 나는 정말 재밌게 읽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 수능 과목 중 국어를 어려워했던지라 국어를 어려워하는 외국인들에게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고, 내 마음속에 묵직하게 와닿는 문장들이 많기도 했다. 또한, 분량도 얇고 가독성도 정말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평소 소설을 읽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하이퍼리얼리즘(?)을 방불케하는 현실적인 서사와 문체가독자들을 멱살잡고 책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때문에 머릿속으로 소설 속 장면들을 잘 그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작품은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