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끝
미나토 가나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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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끝> - 미나토 가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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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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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까지의 나는 책은 물론이거니와 활자 자체를 읽는 것을 혐오했다. 학생 때 학교 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 공부 외의 시간에 굳이 또 글자를 찾아서 읽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 당시의 내가 생각했던 ‘독서’는 또다른 ‘공부’의 일종이었다. 그런 나에게 독서의 기쁨을 알게 해주었던 책이 바로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었다.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 하나만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독서를 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나토 가나에 작가는 내게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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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을 출판사에서 협찬받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를 따름이다. 사실 최근에는 나의 독서 취향이 많이 변하여 장르문학 보다는 문단문학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미나토 가나에를 비롯한 다른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가끔은 자극적인 맛의 추리 소설이 끌릴 때가 있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에 기대감을 품고 이번 신작을 펼쳐들었는데… 추리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었다.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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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작 <이야기의 끝>은 [하늘 저편]이라는 미완결 단편 소설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하늘 저편]을 읽으며 주인공의 상황에 본인을 대입하기도 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하며 본인들에 알맞는 결말을 스스로 짓는 구조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연작소설이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의 전반적인 큰그림이 맞춰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장편소설보다는 단편 소설집의 느낌이 더 강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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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감상을 먼저 말하자면, <고백>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끝까지 밀고 붙이는 미나토 가나에의 추리 소설을 기대했었으나 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조금 김이 샜다.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 (인물들) 중 일부는 별로였다. 초반부의 전개는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도 괜찮네’ 싶었으나 계속 같은 구조가 반복되니까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말까지 다 읽고나니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결말대로 [하늘 저편]이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챕터의 주인공 서사에도 많은 공감이 가서 뒤에서 묵묵히 그 인물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이런 느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중간에 ‘읽덮’의 위기가 살짝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 읽으니 꽤나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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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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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 김초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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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흡인력 넘치는, 그래서 정말 재밌었던 SF 소설이었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와 <백 오피스> 등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실망할 무렵에 이 작품으로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내 마음에 훅 치고 들어왔다. 전에 협찬받은 <마고>도 아주 괜찮았어서 이렇게 ‘핀 시리즈’와 또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닌지… 그렇게 나의 지갑이 가벼워지진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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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므레모사>는 <지구 끝의 온실> 이후로 읽었던 김초엽 작가님의 작품이다. 김초엽 작가님이야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 작품도 SF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본격적으로 <므레모사>를 읽기 전에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SF 호러” 장르의 소설이었다. 추리나 미스터리 같은 장르를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장르가 ‘SF’와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가 발생할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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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므레모사>는 어떤 사고로 인해 다리를 잃게 된 무용수 ‘유안’이 재난 지역 ‘므레모사’를 견학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하반신을 잃었지만 기계 다리(의족)을 결합하여 다시 무대 위에 오르는 ‘유안’의 모습을 통해 SF 소재가 가미되었음을 느꼈고, 원인 불명의 화재로 인해 유독성 물질이 잔뜩 퍼져 초토화된 지역 ‘므레모사’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역시 SF적 상상력이 엄청나신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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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토록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명확한 결론을 아직까지도 내리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가설(잠정적 결론)을 세워보았다. 일단 먼저, <므레모사>는 SF적인 느낌이 엄청 강하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전체적인 세계관이나 ‘기계다리’라는 소재를 제하면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작품 초반부터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랄지 SF적 요소가 가득한 서술이 많았다면 심리적 거리감이 생겼을 텐데, <므레모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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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품은 가독성이 엄청 좋았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초반부는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의 소개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 몰입하기보다는 지루해도 참고 집중해서 읽어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므레모사>는 달랐다. 처음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용수 ‘유안’의 파격적인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순간적인 몰입이 엄청났다. 물론 그 이후 ‘므레모사 투어’에 참여하는 등장인물들의 소개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 부분도 해당 직업과 상황을 가진 그 인물들이 ‘므레모사’라는 재난 지역에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를 생각하면서 읽다보니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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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노인이나 장애 등의 요소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작품을 쓰셨기 때문에 분명히 생각할만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저 <므레모사>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스토리 전개에 더 집중하느라 무언가 생각하고 느낄만한 여유가 없었다. 최근들어 계속해서 ‘순문학’이라 일컫는 한국의 문단문학만을 읽었는데, 이런 자극적인 이야기를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정말 재밌었다. 그리고 <므레모사>의 몰아치는 전개의 여운을 느낀 후에는 장애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말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갈지, 특히 불의의 사고로 인해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겪는 우울의 깊이를 내가 감히 가늠해볼 수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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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SF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었던 <천 개의 파랑>을 비롯한 SF소설들은 모두 장편이었고, <종이 동물원>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같은 SF 단편들은 모두 중도하차했다. 과학적 상상력이 매우 빈약한 내가 SF의 소재를 이해하기엔 시간이 조금 걸리기 때문에 ‘단편’의 분량은 내게 너무 짧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SF라고 해서 무턱대고 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중편 이상의 장편 SF소설은 나랑 꽤 잘 맞는 것 같다. 혹시 나처럼 SF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므레모사>를 통해 SF의 진입 장벽을 부수어 보는 게 어떨까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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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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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 이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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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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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이희영 작가님의 작품이다. <페인트>라는 청소년 소설을 워낙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큰 편이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나나>라는 작품이 상당히 별로였어서 그 기대가 많이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희영 작가님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 좋아서 신작 <챌린지 블루>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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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이 한 명 있다. 근데 내가 24살이니까… 그렇다. 우리 동생은 지금 고3이다. 가족 내의 막강한 ‘권력’과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부담’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대한민국 고3이다. 갑자기 내 동생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챌린지 블루> 속 주인공이 내 동생과 똑같은 3학년 여고생이기 때문이다. 나이만 같았다면 굳이 내 동생을 언급하지 않았겠지만, 작중 주인공과 내 동생은 ‘미대 입시’를 준비 중이라는 점까지 똑같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에서 내 동생이 겹쳐보였고, 그래서 몰입이 더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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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주인공 ‘바림’이 그림에 회의감을 느끼던 차에 설상가상으로 오른손 부상을 당하며 미술 학원을 떠나 잠시 시골로 내려가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미술을 배워왔으니 미대 입시를 거쳐 미술과 관련된 미래를 그리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어느날 갑자기 그림이 싫어진다면, 부모를 비롯한 온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가시처럼 본인을 찌르는 것 처럼 느껴진다면, 속으로 얼마나 혼란스럽고 괴로울까. 부담을 넘어서 ‘중압감’을 느낄 만한 이 상황을 이겨내기에 열아홉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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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아직은 미성숙한 청소년의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잘 그려내었다. 몇 년동안을 잘 그려오던 미술에 어느 순간 싫증이 난 것에 대한 충격과 그로 인한 당황스러움, 미술 입시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해주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은 데에서 느끼는 죄책감, 머리로는 빨리 털어내고 다시 그림을 그려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자기자신의 마음에 대한 짜증과 분노 등등. 지금의 나도 아직 많이 어리지만 지금보다도 더 어렸던 고3 시절의 나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행동이 주인공 ‘바림’에게서 보이는 것 같아서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공감이 되었다. 또한 그런 격동의 고3 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생이 가엽기도 하고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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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음이 많이 동했던 <챌린지 블루>였지만,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이희영 작가님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이 작품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전에 정말 좋게 읽었던 <페인트>는 ‘입양’을 위해서 부모가 될 사람이 역으로 자식에게 면접을 본다는 설정이, 별로였던 <나나>마저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육체를 허망하게 바라보게 되는 영혼이라는 소재가, 아주 참신하고 독특해서 작품 자체가 재밌든 재미없든 이희영 작가님만의 그 느낌은 좋았으나 <챌린지 블루>에서는 그런 독특한 소재나 설정이 없었던 것 같다. 후반부에 무언가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거라 그다지 ‘새롭다’거나 ‘신선하다’는 감상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 점이 조금 아쉽게 남았던 이희영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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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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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 장강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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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이후로 처음 읽은 장강명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책 겉표지에는 ‘연작소설’이라고 하고 작가의 말에서도 그 사실을 밝히고 있지만, 지금까지 읽어온 연작소설과는 살짝 다르다. 보통 연작소설이라 함은 같은 세계관 안에서 등장인물 중 주인공이나 주제 및 내용이 살짝씩 달라지는 단편들의 모음집같은 느낌인데, <산 자들>은 그저 ‘한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룬 단편 소설들을 모은 ‘단편 소설집’인 것 같았다. 어찌됐든 이 작품에서도 장강명 작가님만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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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작가님의 글은 우리의 현실을 유머러스하고 맛깔나게 표현하지만 그 속에선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시니컬함’을 소설로 풀어보라 하면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이 그에 대한 정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11년동안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셨던 작가님의 남다른 인생 이력 덕분인 것 같다. 특히 이 <산 자들>은 한국 사회의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등등의 서민 현실을 소재로 하였기에, 그런 우리나라의 비참한 현실을 더욱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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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집인 만큼 정말 좋았던 작품도 있었고, 반대로 많이 아쉬웠던 작품도 있었다. 아쉬웠던 작품을 먼저 얘기해보자면, 이 작품집의 제목이기도 한 ‘산 자들’이 나오는 [공장 밖에서]가 제일 별로였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공장 노동자들의 시위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읽을 때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게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르포’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상당히 무겁다보니 내가 장강명 작가님의 글에 기대했던 시니컬한 유머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노동자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만을 보았다. 내가 그런 글을 보고 싶었다면 소설이 아니라 르포집을 읽었을 텐데, 기대하지 않은 느낌의 글이 소설집에서 느껴지니 조금 지루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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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거의 다 좋았다. 대기발령에 처한 회사원들의 처절한 적요와의 싸움을 다룬 [대기발령], 같은 상권 내의 세 개의 빵집 간 각축전을 다룬 [현수동 빵집 삼국지], 이 두 작품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먹고 사는 활동에서의 피할 수 없는 치열함이 너무도 잘 와닿았다. 작가님만의 뒷맛 씁쓸하게 만드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들의 수많은 대외활동을 소재로 한 [대외 활동의 신], 학교의 급식 비리를 고발하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이 두 작품에서는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대여서 느낄 수 있는 동질감과 공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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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작품은 [알바생 자르기]였다. 어느 회사에서 ‘알바생’처럼 쓰이고 있는 비정규직(계약직) 직원을 해고하기 위한 회사 윗선들의 눈치싸움(?)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어떻게든 빨리 회사에서 털어내려는 상사와 한푼이라도 더 받아가려는 계약직, 양측 모두의 입장이 동시에 공감되어 웃음이 나면서도 안타까웠던, 말 그래도 ‘웃프다’는 감정이 크게 들었다. 아직 회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대학생인 나도 몰입을 정말 잘 할 수 있었던, 그래서 현실이 참 뼈아프게 차갑다는 걸 알려주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창비에서 나온 <땀 흘리는 소설>이라는 소설집에서 엮이기도 하고 젊은작가상을 받기도 했단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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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다. 내 대학교 동기들 중에는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간 친구도 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학교를 다니며 발령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그런 사회초년생을 맞이할 친구들에게,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딱 지금 이 시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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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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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麻姑> - 한정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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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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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라는 작품을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고 싶다. [역사]와 [페미니즘]. 내가 페미니즘을 다룬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소설들 중에서는 이 작품이 가장 강한 페미니즘 색채를 띄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페미니즘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밑도 끝도 없이 부정하기만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페미니즘 사상이 많이 녹아든 작품을 읽다 보면 뭔가 작위적인 느낌이 들긴 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정도의 페미니즘 문학은 현실 사회에서 억압당하기만 하는 여성의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의 나는 그런 작품들을 굳이 찾아서 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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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작품은 페미니즘의 느낌이 아주 강함에도 불구하고 작위적인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미군정기’라는 한국의 근대 사회이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군정기’란 일제강점기에서 광복한 직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용어로, 역사를 좋아하고 한때 (나름) 깊게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그 당시의 여성들의 인권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시당하고 유린되었는지를 배웠었기 때문에,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안타까움과 딱한 마음이 절로 들었던 것 같다.

🗣 경험마저도 불평등한 조선에서의 선거는 이 부인에게 최초의 공평한 설렘이리라.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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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은 ‘윤박 교수’ 살인 사건의 세 여성 용의자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사실 사건의 진범은 작품 초반에 밝혀진다. 바로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어떤 미군이다. 하지만 그 미군의 범죄를 그대로 보도한다면 미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것이고 이는 ‘미군정’의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경찰 윗대가리(?)들은 세 명의 여성 용의자를 따로 설정하여 이들 중 한 명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한다. 여기까지가 작품 초반부의 내용이다. 여기서도 느껴지듯 <마고> 전체의 이야기는 아주 복잡하고 촘촘하게 짜여있었고, 그래서인지 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략적인 느낌만 느껴질 뿐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 한번의 독서로 이 작품을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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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싫지 않았다.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지럽고 난잡하게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아니라, 작은 퍼즐 조각 하나하나를 맞춰가며 마지막에 큰 그림이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머릿속에 <마고>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야기의 조각들이 점차 맞춰지는 게 신기하면서도 신선하고 좋았다. 또한 역사적 배경 및 여성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로 인한 감정선들을 작가님께서 정말 명확하고 선명하게 쓰셨기 때문에 인물들이 납득되는 수준을 넘어서 충분히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보통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거나 그 이유가 납득되지 않으면 그 작품이 좋지 않게 느껴지곤 하는데, <마고>는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어려웠으나, 좋았고,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 송화는 이제 남자 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화장이 지겹지만, 자신이 화장을 하지 않으면 어떤 남자 손님들은 돈이 아깝다며 나가버리기 때문에 안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겹고 고달픈 화장이 또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즐거우면서도 절박한 일이었다. (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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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갈등’이 너무 과열되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마고>를 비롯하여 페미니즘을 녹여낸 문학 작품들이 갈등과 분열을 고조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적인 연대를 추구하고자 쓰였음을 알고서 작품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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