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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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 김초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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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흡인력 넘치는, 그래서 정말 재밌었던 SF 소설이었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와 <백 오피스> 등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실망할 무렵에 이 작품으로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내 마음에 훅 치고 들어왔다. 전에 협찬받은 <마고>도 아주 괜찮았어서 이렇게 ‘핀 시리즈’와 또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닌지… 그렇게 나의 지갑이 가벼워지진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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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므레모사>는 <지구 끝의 온실> 이후로 읽었던 김초엽 작가님의 작품이다. 김초엽 작가님이야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 작품도 SF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본격적으로 <므레모사>를 읽기 전에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 “SF 호러” 장르의 소설이었다. 추리나 미스터리 같은 장르를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장르가 ‘SF’와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가 발생할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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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므레모사>는 어떤 사고로 인해 다리를 잃게 된 무용수 ‘유안’이 재난 지역 ‘므레모사’를 견학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하반신을 잃었지만 기계 다리(의족)을 결합하여 다시 무대 위에 오르는 ‘유안’의 모습을 통해 SF 소재가 가미되었음을 느꼈고, 원인 불명의 화재로 인해 유독성 물질이 잔뜩 퍼져 초토화된 지역 ‘므레모사’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역시 SF적 상상력이 엄청나신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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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토록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명확한 결론을 아직까지도 내리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가설(잠정적 결론)을 세워보았다. 일단 먼저, <므레모사>는 SF적인 느낌이 엄청 강하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전체적인 세계관이나 ‘기계다리’라는 소재를 제하면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작품 초반부터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랄지 SF적 요소가 가득한 서술이 많았다면 심리적 거리감이 생겼을 텐데, <므레모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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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품은 가독성이 엄청 좋았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초반부는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의 소개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 몰입하기보다는 지루해도 참고 집중해서 읽어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므레모사>는 달랐다. 처음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용수 ‘유안’의 파격적인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순간적인 몰입이 엄청났다. 물론 그 이후 ‘므레모사 투어’에 참여하는 등장인물들의 소개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 부분도 해당 직업과 상황을 가진 그 인물들이 ‘므레모사’라는 재난 지역에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를 생각하면서 읽다보니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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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노인이나 장애 등의 요소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작품을 쓰셨기 때문에 분명히 생각할만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저 <므레모사>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스토리 전개에 더 집중하느라 무언가 생각하고 느낄만한 여유가 없었다. 최근들어 계속해서 ‘순문학’이라 일컫는 한국의 문단문학만을 읽었는데, 이런 자극적인 이야기를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정말 재밌었다. 그리고 <므레모사>의 몰아치는 전개의 여운을 느낀 후에는 장애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말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갈지, 특히 불의의 사고로 인해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겪는 우울의 깊이를 내가 감히 가늠해볼 수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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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SF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었던 <천 개의 파랑>을 비롯한 SF소설들은 모두 장편이었고, <종이 동물원>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같은 SF 단편들은 모두 중도하차했다. 과학적 상상력이 매우 빈약한 내가 SF의 소재를 이해하기엔 시간이 조금 걸리기 때문에 ‘단편’의 분량은 내게 너무 짧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SF라고 해서 무턱대고 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중편 이상의 장편 SF소설은 나랑 꽤 잘 맞는 것 같다. 혹시 나처럼 SF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므레모사>를 통해 SF의 진입 장벽을 부수어 보는 게 어떨까 제안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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