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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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 야쿠마루 가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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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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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와닿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걸 요즘들어 자주 깨닫는 것 같다. 또한 그런 작품들을 꾸준히 만난다는 것이 큰 행운이자 축복이라는 것도 그렇다. <어느 도망자의 고백>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예전에 이 작가의 전작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읽었을 때 그다지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받았을 때도 큰 기대가 없었지만, 정말 재밌게 읽었다. 오랜만에 장르 문학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동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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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로 인해 사람을 죽인 범죄를 저지른 ‘마가키 쇼타’와, 그렇게 죽은 아내를 두고 후회하는 남편 ‘노리와 후미히사’ 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제목에서도 ‘어느 도망자’라는 표현을 썼듯이 뺑소니범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초반부터 대놓고 경찰에 잡혀버린 쇼타의 모습을 보고 나의 예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이 작품은 치열한 추적 과정을 담은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한 범죄자의 속죄 서사를 담은 가슴 아픈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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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작품의 문학성을 따지려 들면 그다지 좋은 평을 할 수는 없겠지만, 장르 문학을 읽을 때에는 이러한 요소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읽는 것이 보통이지 않은가. 때문에 나도 이 점을 제쳐두고서 이 작품에 대해 말하고 싶다.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한 20대 청년의 암울함과 그런 그를 바라보는 피해자 유족들의 마음 모두가 너무도 잘 와닿았던 소설이었다. ‘범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해야한다’는 것보다는 ‘그 누구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도 좋았다. 소설 속 주인공이 지금의 나와 동년배인지라 그에게 나를 대입하여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고, 중간중간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에도 아직은 미숙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냥 비난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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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같이 최고기온이 30도가 넘어가는 무더운 여름에, 읽는 동안 다른 생각하지 않고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몰입감 좋은 책을 찾는다면 <어느 도망자의 고백>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절대 협찬받아서 억지로 좋은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전에 나의 피드에 관심이 조금 있었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협찬받은 책이더라도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라는 작품을 정말 재밌게 읽었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편지>가 많이 생각났고, 그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가볍게 읽기 좋은 킬링타임용으로, 하지만 완독한 뒤의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을 읽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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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2 - 호랑이덫 부크크오리지널 5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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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은일당 사건기록 1,2> - 무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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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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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혐오자였던 내가 독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추리소설이다. 때는 바야흐로 낭랑 18세의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야간 자율학습시간(이하 ‘야자’)이었다. 그 날은 기말고사 끝난 직후였기 때문에 공부와 관련된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로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워도 내 머릿속에 안착하기는 커녕 죄다 튕겨져 나오기 일쑤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3-4시간의 야자는 너무도 기나긴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야자시간의 적막함을 이겨내기 위한 걱정이 쌓여만 가는데, 저녁 급식을 먹는 도중 얼마 전에 보았던 ‘추리소설 베스트 3’라는 어느 블로그 글이 문득 떠올랐다. 책을 읽는 것은 싫어했지만 추리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 드라마에는 열광했었던지라, 약간의 관심과 흥미가 생겨 그 블로그 글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급식을 다 먹은 뒤 곧바로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 책들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그때 운명처럼 마주한 책이 바로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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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었다. <고백>의 마지막 장, 마지막 줄을 읽는 순간 ‘온몸의 전율이 흐르는 충격’을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였고, 때문에 그 문장을 읽자 마자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대놓고 소리를 빽 지른 것이 아니다. 충격으로 인해 헉 하는 들숨이었는데, 그 소리의 크기가 상당히 컸다. 그곳에 있던 모든 학생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였고, 때문에 감독 선생님께 복도로 불려가서 따로 꾸중을 들었다.) 그 전까지는 ‘무언가를 배우거나 얻어가기 위해’ 책을 읽는 줄 알았다면 ‘재미 그 자체’를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백>을 통해 깨달았고, 그 이후로 나는 몇 년간 추리소설에 빠져 살았었다. 아니, 추리소설‘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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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두 문단에 걸쳐서 추리소설 관련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그만큼 나는 추리소설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다지 많이 읽진 않지만 예전엔 워낙 많이 읽었어서 나만의 취향이 확고해졌고 그만큼 눈이 높아졌다. 그런 나에게 <1929년 은일당 사건기록>의 협찬이 들어왔다. 편집자님께서 디엠을 주셨었는데, 예전에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조금의 관심을 두었던 책이기도 했고, 2권만이 아니라 1,2권을 같이 보내주신다길래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제안을 덥석 받아버렸다. 그러나 막상 책을 받고 나니 머릿속에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혹여나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안좋은 말을 대놓고 쓰긴 힘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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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그냥 무난한 느낌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거나 하는 긴장감은 없었지만,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지루하지 않게 사건을 진행시키고 적당히 반전을 주는 결말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재미와 반전이었기에, 딱히 이 책이 뛰어나다거나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는 조금 무리일 듯 싶다. 그러나 이 글에 ‘⭐️’을 붙이고 싶긴 하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역사적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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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1929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말만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 당시의 사회상들을 여실히 느낄 수 있던 작품이었다. 주인공만 보더라도 그렇다. 서구적인 문물을 추종하는 ‘오덕문’, 이 사람 때문에 나는 조금 놀랐던 것 같다. 소설, 영화 등을 막론하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십중팔구 어둡고 암울하다. 조선인들은 항상 고개를 숙이지만 일본인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다니는 모습으로 대비되는 것이 보통이고 실제 역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시대에 서구적인 문물을 진취적으로 받아들이다 못해 추종하기까지 하는 ‘모던 보이’ 및 ‘모던 걸’이 되는 것이 유행하였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의 사회상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작가님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었다. 어둡지만은 않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매력으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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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0차원 에디션)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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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 박상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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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는다면 약간의 불안을 안게 될 텐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박상영’ 이름 세 글자만 보더라도 그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감이 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박상영 작가님은 본인만의 작품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은 <1차원이 되고 싶어> 역시 박상영 작가님만의 분위기를 여지없이 느낄 수 있었던 퀴어문학이었다. 다만 전작 <대도시의 사랑법>이 마라맛(?) 어른들의 사랑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10대 청소년들의 순한맛 사랑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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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를 좋아하는 주인공 ‘해리(이름 아니고 별명)’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딱히 내용 요약을 길게 하지 않아도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서 줄거리 소개보다는 나의 감상 위주로 글을 써보려 한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조해진 작가님의 <여름을 지나가다>와의 비교를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읽기 직전에 <여름을 지나가다>를 읽었기 때문에 둘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쉬웠다.) 두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모두 어둡고 우울한 상황에 처해있다.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위주로 말해보자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대놓고 좋아할 수 없다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그 점을 들킨다든지, 혹은 IMF로 인해 가정의 경제적 파탄을 맞게 된다든지 등등 중학생이 감당해내기엔 상당히 암울하고 버거워보인다. <여름을 지나가다>도 인물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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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를 풀어낸 방식이 전혀 달랐다. <여름을 지나가다>는 그런 우울하고 부정적인 상황을 그대로 조명하거나 심지어는 더욱 강조하기까지 하여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우울함의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듯하다. 하지만 <1차원이 되고싶어>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본인의 상황을 약간의 조소와 함께 덤덤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부정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그가 처한 힘듦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1차원이 되고 싶어>의 방식이 나와 더 잘 맞기 때문이다. 대놓고 ‘우울하다’ 식으로 전개되는 것보다 ‘그냥 그래’하고 심상히 말함으로써 그 우울이랄지 힘듦의 감정이 더욱 극대화되는 것 같아서 이 작품을 되게 재밌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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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엔 주인공과 ‘윤도’ 외에 중요한 인물이 몇 명 더 있는데, 그 중에서도 ‘태리’라는 인물에 내 모습이 많이 겹쳐보여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태리’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을 조금 해보자면, ‘태리’는 주인공을 형처럼 생각하는 동갑내기 사촌지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인공을 잘 따랐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매우 기뻐하곤 했다. 사실 ‘태리’는 학교 폭력을 심하게 당하던 학생이었는데, 학폭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종종 주인공을 찾아오곤 하지만 주인공에게 태리는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태리와 친하게 지내면 본인도 따돌림을 당할 것을 걱정하여 주인공은 태리를 모른척 하거나, 일부러 다른 친구들과 붙어있는 모습을 보이고, 그때마다 태리는 씁쓸하게 본인 교실로 돌아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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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끄럽지만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물론 내가 ‘태리’처럼 학교 폭력을 심하게 당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성격이 못되고, 그저 같은 반 한두명 하고만 깊이 지내는 터라 나의 학교생활은 그 친구들의 존재에 많이 의존하곤 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아파서 결석을 하거나 방송반 활동 등으로 학교 생활을 빠지게 된다면, 나는 ‘혼자’라는 고통 속에 그 하루를 정말 힘겹게 보냈다. 지금이야 뭐 혼자서 영화도 보고 빕스도 가고 1인 생활의 거의 만렙(?)이 되었지만, 중고등학생 때의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완벽하게 알진 못하겠지만, 왕따’처럼 보이는 게 두려워서였을지, 주변에는 친구들과 하하호호 하며 행복해보이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과 내가 비교되어서 그랬는지, 그런 비스무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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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인의 교실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태리’의 모습을 보며 너무 가슴 아팠다. 아…… 나는 그 친구들에게 많이 기대었는데 그 친구들에게 나는 그저 숱하게 많은 친구 중 하나였겠구나, 나랑만 친하게 지내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부담이 되거나 귀찮았을 수 있었겠구나, 나는 그들에게 ‘의지’했는데 그들은 내가 ‘의존’하는 것처럼 보였겠구나 싶었다. ‘태리’의 모습에서 나의 중학교 시절이 겹쳐보여 너무 슬프고 또 아픈 공감을 했다. 쓰다보니 술 먹고 쓴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어찌됐든 이 작품은 내게 정말 좋았던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전개니 개연성이니 문장들 뭐 그런 것들 차치하고,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동했고 위로를 받기도 했던지라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내게 그저 좋은 인상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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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2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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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여름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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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문학상’의 후보작들을 계절별로 세 작품씩 엮어 출간하는 ‘소설보다’ 시리즈의 ‘여름’편을 읽었다. 전에 읽었던 ‘봄’편에 수록된 작품들이 모두 좋았던 기억이 있고, 무엇보다도 3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문학성을 갖춘 한국 단편문학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꽤나 큰 메리트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번 ‘여름’의 구입엔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다. 수록된 세 작품을 쓰신 작가님들 중 두 분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고, 나머지 한 분 김지연 작가님은 내 취향과 맞지 않는 글을 쓰신다는 느낌을 전에 받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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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소설 보다 여름 2022>를 구입해서 읽은 이유는 명료했다. 새로운 작가님의 글을 읽어본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있긴 하지만) 아주 가치있는 일이라는, 나의 독서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새롭게 만난 작가님들의 작품보다 이전에 읽었던 김지연 작가님의 작품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가장 좋았던 김지연 작가님의 [포기]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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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작가님의 작품은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공원에서]로 처음 접했다. 별로였다. 페미니즘이라 해서 무턱대고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이 ‘쓰라린 공감’이 아닌 ‘작위적인 불편함’이라면, 내게 그 작품은 좋지 않은 인상으로 남는다. [공원에서]가 딱 그랬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다. 하지만 [공원에서]의 느낌과는 정반대로 [포기]라는 작품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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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대학생에서 사회초년생으로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어느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직접 마주하게 된 현실의 냉혹함과 씁쓸함에 고개를 떨군 채 한숨을 내쉬게 될 때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런 내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채 ‘잠수’를 타버린 인물 ‘민재’의 주변 인물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민재’를 무작정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민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지를 약간의 원망과 연민을 담아 그저 덤덤하게 생각해본다. 그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이 ‘민재’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몰고 갔음을 무의식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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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있고, 차가 있고, 1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고, 함께 갈 애인이나 친구나 가족이 있고, 그런 게 평범한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 게 평범하던 시절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건 아주 어렵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삶이었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는 거, 보통의 수준으로 산다는 거, 하고 말하면서 상상했던 수준들도 다 보통 이상의 것들이었다.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게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거야말로 평범했다. (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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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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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 조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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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이라 말할 정도로 내게 큰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었던 <단순한 진심>을 쓴 조해진 작가님의 다른 작품 <여름을 지나가다>를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가, 읽는 당시의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가, <여름을 지나가다>는 내게 그리 좋은 인상으로 남진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별로였던 책의 독후감을 적는 것은 어떤 점이 좋았고 독서를 하면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세세하게 적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단순하게 어떠한 부분이 나와 맞지 않았음을 기록하는 개념이라 전체적인 글이 짧기도 하고 단순할 수도 있지만, 혹시나 나중에 이 책을 다시 읽으려 할 때 이전의 내가 어떤 점이 좋지 않았었는지를 이 글을 통해 염두해두고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어렵지만 이 책의 감상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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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에 읽었던 조해진 작가님의 작품들이 좋았던 이유는 따뜻한 분위기와 섬세하고도 정확한 표현력을 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름을 지나가다>는 이전(에 내가 읽었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결이었다. <단순한 진심>에서는 주인공이 슬픈 사연을 안고 있더라도 극 전체의 분위기는 따뜻했고 조금은 희망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을 지나가다>는 한없이 어둡고 우울하기만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불행’이라는 한 단어로 가볍게 설명하기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정도의 힘겹고 우울한 나날들을 ‘버티고’ 있다. 

🗣 수호의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이제 은행이 소유하게 되었다. 치료를 미루고 있는 아버지의 안면 마비증은 끝내 회복되지 못할 것이고, 어머니는 어느 평범한 아침 식탁에서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점 관리가 안 된다며 울먹이는 동생의 뺨을 때릴지 모른다. 하지만 수호가 무서운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군대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이 함께 죽음을 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집에 전화를 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수호는 그런 것이 무서웠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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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나의 취향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되짚어 생각해보면, 약간은 밝고 따듯하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이어지거나 혹은 극의 전체를 아우르는 큰 사건 하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름을 지나가다>는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문장에서 나오는 ‘수호’의 가족을 살펴보아도, 어느 수직선 양극단에 ‘행복’과 ‘불행’을 놓았을 때 ‘불행’의 끄트머리에 매달려서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한 정도의, 불행의 근원과도 같은 삶을 사는 듯하다. 다른 인물들도 매한가지였다. 또한, 어떠한 사건의 기승전결이 선명한 전개가 있다면 그나마 괜찮았겠으나, <여름을 지나가다>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그 인물들이 불행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그 낱낱을 덤덤히 보여줄 뿐이었다. 당연히 이런 느낌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조금은 먼 듯했고, 그래서 많은 기대를 했던 조해진 작가님의 작품이었기에 아쉬움도 컸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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