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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쇼코의 미소> - 최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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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완독하기까지 총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문장을 적는 나도 당황스럽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수록된 작품이자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가 내게는 너무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뭘 말하려는 건지, 다들 감동받았다고 하는데 어디서 감동을 느껴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고, 그래서 난해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때문에 2020년에 구입하여 첫 작품을 읽은 뒤에 그대로 방치해두고 군입대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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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책을 살 경제적 여력이 마땅치 않은 탓에 알라딘 중고 서점을 애용하게 되었다. 안 읽는 책들을 중고로 내다 팔아버릴 생각에 책장을 뒤져보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출간한지 몇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높은 값을 쳐주는 탓에 곧바로 팔까 생각도 하였으나 한 작품만 읽고 팔기는 조금 아까울 것이라는 생각에 그래도 몇 작품 더 읽어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좋은 작품을 내다 팔려고 했다니… <쇼코의 미소>만 나와 맞지 않았을 뿐, 다른 작품들은 정말 너무 좋았다.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을 읽을 때에도 문장이랄지 표현 등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마음을 표현한 문장 하나하나도 마음에 와닿음을 느꼈고,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우울하면서도 따듯함이 느껴지는 수작이었다. 수록된 모든 작품을 톺아보고 싶지만, 늘 그렇듯이 인스타그램에서 허용하는 글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지와 영주>에 관한 이야기만 조금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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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던 터라 우리 아버지의 애통함이 얼마나 배가 되었을지, 어떻게 그 마음을 감당하셨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다. 장례식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바이트에 가야했던 나는, 아빠가 술을 드시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눈물을 쏟아내듯 꺼이꺼이 우셨다는 말을 엄마와 동생을 통해 전해들었다. 취기를 빌려서 잠시나마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드러냈을 때, 엄마랑 동생은 아빠의 그런 감정적인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당황스럽고, 안타깝고, 위로를 건네고 싶어도 어떤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필연적으로 겪는 통한의 감정은, 영원히 모르고 싶지만 언제가는 닥쳐올 것임을 알기에 너무나 막연하면서도 가장 두려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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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우리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할아버지께서 손자 손녀, 특히 나와 동생을 정말 이뻐해주셨고 우리도 그걸 알았기에 할아버지를 많이 따르고 좋아했다. 그러나 같이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은 정도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쌓여만 갔고, 결국엔 그것이 터져 할아버지의 언성은 높아지고 우리는 할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중간에 있던 엄마 아빠도 계속해서 지쳐갔고, 결국 다시 할아버지와 따로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조금은 진솔하게 그때의 내 마음을 꺼내어보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때 조금 더 참아볼걸 하는 후회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때 당시의 나는 집에 들어가는 게 싫을 정도로 너무 지치고 힘들었기 때문에, 슬퍼하는 마음이 적은 것에 대한 죄책감은 들더라도 그러한 슬픔이 구태여 생겨나지는 않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뜻대로 다룰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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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치르며 조문객들을 맞이하던 중 우리 엄마의 친한 친구분을 뵈었다. 엄마 역시 시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다는 게 적지않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더군다나 할아버지와 손자손녀 사이의 갈등까지 중재해야했기 때문에, 감당해야했던 스트레스가 결코 작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우리 아빠한테 그런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도 없기에 동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 방법으로나마 짜증과 스트레스 속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으셨다. 때문에 그 친구분은 우리가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이야기 및 서로가 힘들었던 양측의 마음을 대강 알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분은 장례식장에서 만난 우리 엄마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시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너희가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너희 마음 편할 수 있도록 정을 떼고 싶으셨나보다. 그래서 마지막엔 너희에게 모질게 대하셨나보다.”
다른 어떠한 장황한 말보다도 우리 가족에게 위로가 되는 한마디였다. 우리 엄마나 동생과 나는 물론, 아빠도 그 말을 전해들으며 격하게 동의하셨고, 더불어 본인의 부모님께 마지막에 예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후회와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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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긴 이야기를, 조금은 부끄럽고 자책스러운 나의 속마음을 적은 이유는 <한지와 영주>을 읽으면서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지’와 ‘영주’는 아무에게도 열지 못한 마음을 서로에게 처음 열어보이며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그 둘은 필연적으로 이별의 시간이 닥쳐올 것이었기에 ‘한지’는 어느 순간부터 ‘영주’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영주’는 그런 ‘한지’를 보며 많이 슬퍼하지만 덕분에 그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지’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한지’ 역시 ‘영주’와의 사랑이 더 깊어지는 걸 경계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도 깊어진 상태에서 이별하게 된다면 그 이별의 고통이 더욱 커질 것임을 ‘한지’는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별’이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는 행복했던 기억마저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