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9
넬라 라슨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패싱> - 넬라 라슨

.

두 번의 시도 끝에 완독에 겨우 성공한 책이다. 이 말인 즉슨 재미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야기가 재미없더라도 문장이 깊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패싱>은 그런 점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였다.

🗣 어떤 자기 보호 본능에서 그녀는 정확한 표현으로부터 한발 물러났다. (122p)

이게 뭐람… 철학적인 사유가 담겨있어 어려운 거라면 모를까, 대체 이건 번역이 잘못된건지 원래 이런 글투로 쓰인건지… ‘어려운’게 아니라 ‘잘못된’ 느낌이 드는 이상한 문장이었다. 이렇듯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계속 받다보니, 다 읽지 않은 상태로 책을 덮어둔 뒤 넷플릭스에서 만든 영화나 봐볼까 싶어 영화를 틀었다.

.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도 뭔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책을 펼쳐들어 읽었다. (의도치 않게) 이런 노력을 기울이다보니 내가 놓친 부분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소설 속 ‘패싱’을 하는 주인공들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보다 훨씬 밝은 피부톤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백인처럼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이든 영화든 처음에 이런 설정을 놓치다보니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국 다 읽은 이 책이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

어찌되었든 이 작품을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소설에는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패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백인과의 결혼으로 신분 상승 급의 변화를 이룬 ‘클레어’와 ‘패싱’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은 채 흑인 공동체에서 가정을 이룬 ‘아이린’. 독자들은 이 둘의 완전히 상반된 처지를 보며 어느 한 쪽에 이입할 것 같고, 특히 ‘아이린’의 시점으로 전개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아이린’의 처지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클레어’에게 더 마음이 갔다.

.

🗣 “네가 화낼 만도 해. 그럼에도 그날 넌 근사하게 행동했지. 하지만 난 정말 네가 이해하리라고 생각했어, 린. 어떤 면에서는,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거잖아. 그날 일이 벼락치듯 모든 것을 바꿔놓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난 너희들 중 누구도 만나지 않고 계속 전처럼 살았을 거야. 하지만 그 일이 내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고 이후로는 늘 너무 외로웠어! 너는 모를거야. 가까운 사람이 하나도 없어. 진심으로 얘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91p)

.

‘아이린’은 ‘클레어’의 백인 남편 ‘잭’에게 인종 차별적 모욕을 당하고 그녀와 손절하기를 바라지만, ‘클레어’는 ‘아이린’을 만난 뒤 흑인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가 애타게 ‘아이린’을 찾고는 한다. ‘아이린’이 ‘클레어’를 피하고 외면하려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클레어’의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그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패싱’을 선택해야만 했던 속사정을 알게 된 후로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성취를 좇은 ‘클레어’의 모습이 멋있게 보였고, 그래서 남편이 장기 출장을 갈 때마다 ‘아이린’을 맹목적으로 찾고자 하는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

이렇듯 작품 자체가 상당히 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독후감을 적는 이유는, 책을 다 읽은 뒤에 생각해볼 거리가 좀 많았던 것 같아서 나름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엔 책을 읽은 뒤에 이러한 사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세계문학전집의 매력인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