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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쇳밥일지> - 천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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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는 용접 등의 현장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현장 르포’이자, 작가 개인의 쓰라린 인생사를 덤덤하게 담아낸 ‘에세이’이기도 하다. 아주 거친 문장과 내용들이 많아서 어쩌면 ‘투박’하다고도 느낄 수 있지만, 이 책 만큼은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거칠고 투박하기 때문에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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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모르면서 노동자 후려치려고 헛소리하는 인간들이 좀 있어요. 돈 잘 버는 정규직은 귀족 노조라고 욕하고, 돈 못 버는 비정규직은 공부 못해서 그 꼴 났대요. 그런 인간들 입에 재갈을 물려주고 싶어요. 제 현장 경험과 회사의 데이터로 논리를 만들어서 개망신을 주고 싶어요.” (2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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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혀, 단 한번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하고 괴로운 삶을 천현우 작가님은 버텨내셨다. 감히 그 인생을 누추한 이 글에 요약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부분은 직접 책에서 읽길 바란다. 다만, 작가님이 경험하신 이 현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너무도 가혹하고 거대한 벽과도 같았다. 절대 넘을 수 없을 듯한 높이와 두께를 가진, 참으로 부조리한 벽. 그럼에도 그 벽에 조금의 흠집과 균열을 내기 위해, 현장 노동의 비참한 현실을 이 사회에 알리기 위해 작가님은 이 책을 쓰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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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십대 중반인 나는, 작가님이 그려내신 이 현실에 대해 ‘공감’한다기 보다는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마치 이런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교훈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뼈저리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무거운 마음을 지니게 된 부분도 있었다. 바로 학벌에 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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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입은 말하지 않았지만 눈이 떠들고 있었다. 대학 안 가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고졸’이란 딱지는 수갑이며 죄수복이자 족쇄나 다름없다고. (중략) 대학을 강요하는 세상이 못마땅했다.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사람 착하고 몸 건강하며 상식 있는 것만으론 부족한 걸까. (18-19p)
🗣 학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면 거짓말. 수능도 안 봤지만 대학 순위표는 머릿속에 줄곧 각인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명문대란 만병통치약 같아서 어딜 가나 약발이 들었다. (중략) 대체 그놈의 학벌이 뭐라고 사람들을 줄 세우고 급을 나누게 만드는 걸까?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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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부끄러웠다. 고등학생 때, 특히 수능을 준비하던 3학년 때는 너무나 만연하고도 견고한 한국의 학력주의를 아주 많이 원망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벌에 따른 차별을 직접 겪으며 학력주의에 대한 그 원망의 정도는 더 커졌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 또한 학벌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보는 색안경을 끼고 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위의 문장들을 보며 깨달았다. ‘대학 순위표’를 ‘머릿속에 줄곧 각인’해둔 채 더 높은 대학에 합격하고자 노력하였고, ‘대학을 안 가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학벌주의를 원망했으면서도 그런 학벌주의에 따른 생각을 갖고 있던 모순적인 내 자신이 겸연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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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중에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미래의 나는 아마도 현장 노동의 현실을 모른 채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저 위로만 올라가려는 ‘화이트칼라’가 되어 ‘블루칼라’들을 무시하지는 않을까 싶어 무섭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불편할 수는 있어도, 우리는 모르지만 이 사회에선 아주 중요한 부분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라도 꼭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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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현우야. 우리 없으면 누가 다리 만들어주냐? 우린 뿐만 아냐. 청소부, 간호사, 택배, 배달, 노가다, 이런 사람들 하루라도 일 안 하면 난리 나. 저기 서울대 나온 새끼들이 뭐하는 줄 알어? 서류 존나 어렵게 꼬아놓고, 돈으로 돈 따먹기만 하고, 땅덩어리로 장난질이나 치지. 그런 새끼들보다 우리가 훨씬 대단한거야. 기죽지 마.” (11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