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즈 어웨이 안전가옥 쇼-트 1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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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 - 배예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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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리뷰를 남겼던 <푸르게 빛나는>이 많이 실망스러워서 이 책을 읽을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다른 인친님의 리뷰를 보고선 호기심이 생겼더랬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상당히 재밌게 읽었으나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음. 때문에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을 활용하여 14페이지까지를 읽어본 뒤에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추천함.”

여기에 적힌 대로 별 생각없이 알라딘 어플에 들어가서 미리보기 기능으로 이 책의 도입부를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딱 14페이지까지 읽어본 뒤의 내 감상은 이랬다.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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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즈 어웨이>에는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고, 제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세 단편 모두 ‘좀비물’이다. 좀비를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좀비물을 굳이 즐기지도 않는 편이다. 비단 책 뿐만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고려하더라도, 영화 ‘부산행’도 그저 그랬고, 미드 ‘워킹 데드’는 아빠 따라서 같이 보다가 중도 하차했다. 그래서 미리보기 할 때도 큰 기대를 두지 않고 읽었던 것인데, 왜인지 이 책은 꽤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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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미리보기를 통해 접했던 첫번째 수록작 <피구왕 재인>이었다. 주인공은 학교에서 피구 경기를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소에 피구에 재능이 출중한 편이 아니었던 주인공은 그저 공을 피해 도망다니기 바빴는데, 그러던 중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순간적으로 딱 잡는다. 그러나 그건 공이 아닌 사람의 머리통이었고, 그 순간 공포는 시작된다. 한때 같은 반 학생들 다같이 피구에 미쳐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흐뭇한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소름끼치는 공포스런 분위기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결말도 상당히 인상적인데, 이 부분은 직접 읽어보고 확인하길 바라는 마음에 말을 삼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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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세 편의 작품이 각각 독립된 단편이 아닌, 크게 봤을 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연작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 <좀비즈 어웨이>에는 작품 말미에 <피구왕 재인>의 주인공 ‘재인’이 깜짝 등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작품 <참살이404>에는 이런 좀비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좀비즈 어웨이>는 그저 그랬지만, <참살이404>는 <피구왕 재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서웠고 스릴넘쳤다. 그래서 나 역시도 사람들에게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을 활용한 뒤에, 본인의 취향과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선명히 갈릴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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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민음의 시 256
손미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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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 손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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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공포시집…? 아니면 스릴러시집…? 시집을 읽으면서 ‘무섭다’는 감정을 느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시집으로부터 처음 느껴보는 이런 감상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새롭고 참신해서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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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었어요. 빼 주세요.

너의 몸통을 피워 무는데

피부 속에서 무언가 속삭인다.


… 살아 있어 …


이불 밖으로 빠져나가며

깊게 찌르는 너는

피도 없어 보인다


문밖에서 자동차가 뒤집힌다.

네가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 <사혈(瀉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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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찔러서 피를 뺀다는 뜻의 ‘사혈(瀉血)’을 제목으로 하는 이 시에서, ‘죽었어요. 빼 주세요.’라며 ‘피도 없어 보’이는 ‘너’를 화자는 ‘깊게 찌르’지만 어디선가 ‘… 살아 있어 …’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이 시의 화자는 실제로 사혈을 하는 것일까, 더 무서운 것은 ‘문밖에서 자동차가 뒤집’히는 것을 보며 그 자동차 안에 ‘네가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하는 거다. 화자가 상대를 직접 죽이고 있는 과정 중에 든 생각인지, 아니면 상대를 죽이는 상상 도중에 문밖의 자동차를 보고서 머릿속 장면이 전환된 건지, 어찌되었든 읽으면서 정말 찝찝하고 무서운 여운이 계속 마음 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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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열린다 네가 닫힌다

따라 나가던 내가 닫힌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문을 열고 들어가

무수히 많은 의자에 앉았었지만


벌컥 열고 들어와

누군가 너를 훔쳐갈까 두려웠다


비밀이었던 문이 삭제된다

힘주어 문고리를 물고 있던 복도도 사라진다


더는 애쓰지 말자


손잡이 떨어진 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참 오래도 서 있었다


어쩌면 문 같은 건 아예 없었던 거다

나는 이제 네가 궁금하지 않다


 - <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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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가 <사혈(瀉血)>같지는 않다. 위의 <문>이라는 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별 과정을 덤덤하게 그려낸 듯한, 그래서 가장 와닿았던 시다. ‘나’에게서 ‘네’가 떠나는 것을 ‘문이 열린다 네가 닫힌다’고 표현한 것도, 그렇게 떠나는 상대를 잡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잡지 못하는 화자의 마음을 ‘따라 나가던 내가 닫힌다’고 표현한 것도 너무 좋았다. 더이상 닿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을 둘 사이에 ‘손잡이 떨어진 문’을 둔 것으로 표현한 것이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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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이에는 문이 있었고, 그 문에는 손잡이가 없으므로 화자는 그 문을 열고 상대를 따라갈 수 없었고, 그럼에도 화자는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었기에 오랜 시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고 하듯이 이 시의 화자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나는 이제 네가 궁금하지 않다’고 결국 선언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읽으면서 화자가 상대를 아직 잊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문장은 ‘아직 잊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잊어보려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욱 슬프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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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친한 학과 동기 형이 추천해주었다. 읽는 동안에는 놀란 가슴 진정시키느라 무던히 애썼지만, 다 읽고 나니 그 여운이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시집을 주저 않고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이 시집을 추천받을 때 ‘첫번째 시의 임팩트가 강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정말 그랬다. 그 시의 일부를 옮겨 적으며 이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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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얘기 안 했어

장례도 없이

환생도 없이

같은 몸에서

몇 번이나 죽을 수 있다는 걸


 - <옥수수 귀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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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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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정여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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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시나 소설같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한번쯤은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 왜 읽어?’ 내지는 ‘소설은 왜 읽는거야?’ 등등. 나 역시 이런 질문들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항상 깊은 고심에 빠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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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막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대답은 ‘재밌으니까’ 였다. 너무도 단순한 대답이지만, 그만큼 또 명료하기도 하다. 이때는 추리소설만 주구장창 읽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때의 내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은 거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네가 영화나 드라마, 아니면 컴퓨터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나는 책에서 재미를 느낀다’라고만 답을 해도 충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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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독서 범위도 순문학, 고전문학, 시, 에세이 등등으로 확장되었고, 그에 따라 책에서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독서 후의 여운에 잠겨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금 깊이 고민할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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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게 되었다. 정여울 작가님의 글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읽기 전에 기대가 컸던 책이었다. 보통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이 책은 다 읽은 후에도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감상이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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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개하자면, 정여울 작가님의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님이 여러 책들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들을 이 책에 모았는데, 그 곳곳에 작가님이 생각하는 ‘문학이 필요한 이유’ 내지는 ‘문학을 읽는 이유’들이 담겨 있다. 몇몇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고, 또 몇몇은 기존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이라 새로웠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 문학은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들을 바로 지금 여기로 끊임없이 불러오는 힘이 있다. 그것이 우리가 제주 4.3을, 1980년 광주를, 세월호를 문학의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30p)

🗣 나는 그 차 한잔의 여유에 가장 어울리는 파트너가 시집이나 소설책이면 좋겠다. 책을 읽는 동안만은 분노를 철퍼덕 내려놓고, 슬픔을 훌훌 벗어놓고, 이 세상 모두에 함께 있을 수 있고, 이 세상 누구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94p)

🗣 지금 당장 혁명이나 치유가 불가능할지라도 다만 아파하는 사람들 곁에 가만히 함께 있는 것. 나는 문학의 진정한 힘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종교의 힘도 가족의 힘도 사랑의 힘도 빌릴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나는 문학이 지닌 ‘가만히 곁에 있어주기’의 힘으로 버틴 나날이 많았다.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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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생각하는 ‘문학이 필요한’ 여러 이유들을 보면서 나의 생각을 조금 정리하고 확립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결론내린, 내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바로 ‘추체험’이다. 문학은, 특히 소설은 내가 태어난 후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할 경험들, 살아보지 못할 삶들을 체험해볼 수 있게 해준다. <단순한 진심>을 읽으며 입양 가족이 되어볼 수 있었고,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며 미지의 젤리 괴수(?)와 싸워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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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추체험’은 무슨 효용이 있을까. 이번에도 또 그저 ‘재미’로 귀결되는 것인가. 물론 재미를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가 느낀 ‘추체험’의 쓸모는 ‘공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공감’ 능력을, ‘문학’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사회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기에, 우리에게는 ‘문학’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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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한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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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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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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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전체적으로 톺아보았을 때는, 이문재 시인님의 감성은 나와 그렇게 잘 맞는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모르겠거나, 알더라도 그것이 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시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시집을 다 읽은 뒤에 나는 마음에 들었던 시(구절)의 페이지에 인덱스를 붙여놓고 필사를 하는데, 이전에 읽은 <슬픔이 택배로 왔다>나 <바다는 잘 있습니다>에 비해 <지금 여기가 맨 앞>에 붙어있는 인덱스의 수는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좋았던 시들은 분명히 있었고, 그렇게 좋은 시들은 정말 ‘너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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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어떤 경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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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그저 한사람에 불과’하다고만 생각했었지, 누군가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있을까, 이 시를 읽은 지금도 그럴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만약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걸 내가 알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그저 쓸모없기만 한 존재는 아니구나 싶어 위안도 받고 보람도 느낄 것 같다. 읽으면서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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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에 알았다.

가장 높은 곳에 빛이 있고

가장 낮은 곳에 소금이 있었다.


사랑을 놓치고

혼자 눈뜬 오늘 아침에 알았다.

빛의 반대말은 그늘이 아니고

어둠이 아니고 소금이었다.

언제나 소금이었다.


정오가 오기 전에 알았다.

소금은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

소금은 빛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

가장 무거운 앙금이다.


소금은 오직 해를 바라보면서

소금기 다 뺀 물의 잔등을 떠미는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소금은 있는 힘껏 빛을 끌어안았다가

있는 힘을 다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마음으로 남는 것이다.


내가 놓친 그대여

저 높은 곳에서 언제나 빛인 그대여


 - <혼자만의 아침 - 빛과 소금 1>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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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는 이별을 다루고 있는 시들이 몇 편 있는데, 그 중 가장 좋았던 시가 바로 이 시다. ‘빛’의 반대를 어둠이나 그늘 등이 아닌 ‘소금’이라고 말하며, 이별을 빛과 소금이 멀어지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신선하면서도 와닿는 비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금’이 ‘빛’과 멀어지면서 ‘단 하나의 마음’만을 남긴 채 ‘있는 힘을 다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지막 연에서 자신과 헤어진 ‘그대’를 ‘빛’이라 말하며 자기 자신을 ‘소금’이라고 암시하는 듯한 그 표현과 마음이 너무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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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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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 이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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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친님의 피드를 보고 따라 사서 읽은 책. 전작 <브로콜리 펀치>에 대한 호평을 워낙 많이 듣기도 했었던 데다가 알라딘에서 이번 신작 구매 시 ‘친필 사인본’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건 운명이다’ 싶어 바로 구매하였는데, 그런 충동구매한 내 자신을 아주 칭찬하고 싶다. (예전 <호르몬을 그랬어> 리뷰에서 언급했듯이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된 책들은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절대로 새 책을 구매하지 않고 중고책으로만 읽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이번에는 알라딘 마일리지가 7000원 가까이 쌓여있었다. 정작 통장에서 빠져나간 내 돈은 4000원도 되지 않으니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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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고, 수록된 작품들 모두가 좋았다. 이 단편들은 공통적으로 비현실적,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하거나 그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마치 얼마 전 ‘올해의 책 어워즈’로 꼽은 <아홉수 가위>가 떠오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아홉수 가위>가 떠올랐던 것은 소재의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결말 덕분이었다. 그것은 비단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이 아니다. 조금은 ‘미완’인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작품 속 주인공이 불행한 상황에만 틀어박히지 않을 수 있다는 미래를 품는 마무리였다는 것이 독자들(특히 나)을 행복한 기분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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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단편들의 내용을 요약했다가 자칫하면 스포일러를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가장 마음이 동했던 한 단편에 대한 감상을 짧게 적어볼까 한다.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단편은 바로 ‘페어리 코인’이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사람을 너무도 쉽게 믿는 태도’를 보이는데, 어쩐지 자꾸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특히 초등학교 때)의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정서적으로 많이 휘둘렸던 것 같다. 친구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내 마음을 스스로 소모했던 그때의 내가 참 안쓰러운데, 그 감정이 이 단편을 읽으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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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런 태도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쉽게 믿고 마음을 내주는 편이다. ‘사람을 믿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컸지만, ‘의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성인이 되어 종종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어쩐지 조금 속상하기도 하다. 

🗣 분명히 우리는 사기를 당했고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도 훤히 아는데 법도, 제도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착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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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런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서 최신 문학작품들의 경향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읽은 <모든 것들의 세계>, 그리고 앞서 언급한 <아홉수 가위>를 비롯해서 최근의 문학계에는 SF 혹은 환상문학 계열의 소설들이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듯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소재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지금의 세상살이가 너무도 각박하고 힘든데, 그걸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이겨내기가 어려워서 ‘초현실적’ 소재를 끌고 와서 상상 속에서나마 그걸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게 꼭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입맛이 조금 씁쓸해지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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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단지 소재나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에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책 한 권 읽는 건 어떨지 권하고 싶다.

🗣 그러니까 큰 사랑을 되갚을 걱정 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증명받는 일이 얼마나 나를 값어치 있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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