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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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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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전체적으로 톺아보았을 때는, 이문재 시인님의 감성은 나와 그렇게 잘 맞는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모르겠거나, 알더라도 그것이 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시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시집을 다 읽은 뒤에 나는 마음에 들었던 시(구절)의 페이지에 인덱스를 붙여놓고 필사를 하는데, 이전에 읽은 <슬픔이 택배로 왔다>나 <바다는 잘 있습니다>에 비해 <지금 여기가 맨 앞>에 붙어있는 인덱스의 수는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좋았던 시들은 분명히 있었고, 그렇게 좋은 시들은 정말 ‘너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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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어떤 경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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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그저 한사람에 불과’하다고만 생각했었지, 누군가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있을까, 이 시를 읽은 지금도 그럴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만약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걸 내가 알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그저 쓸모없기만 한 존재는 아니구나 싶어 위안도 받고 보람도 느낄 것 같다. 읽으면서 어쩐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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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에 알았다.

가장 높은 곳에 빛이 있고

가장 낮은 곳에 소금이 있었다.


사랑을 놓치고

혼자 눈뜬 오늘 아침에 알았다.

빛의 반대말은 그늘이 아니고

어둠이 아니고 소금이었다.

언제나 소금이었다.


정오가 오기 전에 알았다.

소금은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

소금은 빛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

가장 무거운 앙금이다.


소금은 오직 해를 바라보면서

소금기 다 뺀 물의 잔등을 떠미는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소금은 있는 힘껏 빛을 끌어안았다가

있는 힘을 다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마음으로 남는 것이다.


내가 놓친 그대여

저 높은 곳에서 언제나 빛인 그대여


 - <혼자만의 아침 - 빛과 소금 1>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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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는 이별을 다루고 있는 시들이 몇 편 있는데, 그 중 가장 좋았던 시가 바로 이 시다. ‘빛’의 반대를 어둠이나 그늘 등이 아닌 ‘소금’이라고 말하며, 이별을 빛과 소금이 멀어지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신선하면서도 와닿는 비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금’이 ‘빛’과 멀어지면서 ‘단 하나의 마음’만을 남긴 채 ‘있는 힘을 다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지막 연에서 자신과 헤어진 ‘그대’를 ‘빛’이라 말하며 자기 자신을 ‘소금’이라고 암시하는 듯한 그 표현과 마음이 너무도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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