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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앙 보뱅’이 글을 그렇게 잘 쓴다는 말을 많이 들어와서 언젠가 한번은 꼭 보뱅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다만, 서점에 가서 <작은 파티 드레스>, <환희의 인간> 등을 살짝 읽어보니 어쩐지 나랑은 맞지 않았던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이 떠오르는 듯한 문체였다고 느꼈다. 좋게 말하자면 깊이 있고 철학적 사유, 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뭔가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내게 와닿지 않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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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리움의 정원에서>는 저자가 평소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생각들을 담았다기보다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난 뒤의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을 담아 쓴 책이다. 그래서 저자의 다른 책들보다는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명문장들의 천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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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은 문장’이라 함은 공감의 여부와는 다른 차원으로 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이 아직 없기에 <그리움의 정원에서>에 온전히 공감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저자가 겪은 그 슬픔과 그리움 내지는 추모와 애도의 마음이 어땠는지가 아름답게 쓰여있어서 ‘이런 마음이구나’하며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 문장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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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죽음은 내 안의 모든 걸 산산이 부서뜨렸다. (중략) 사랑한다. 그것 외에 무슨 말을 쓸 수 있을까. 써야 할 문장은 이뿐인데. 이 문장을 쓰도록 알려준 사람은 너였다. (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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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슬렌, 네게 감사한다. 널 잃음으로써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상실에 감사한다. 미치광이처럼 너를 사랑하는 나는 광기에 휩싸인 채 부드러움과 빛과 사랑을 찾는다. (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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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에 대한 험담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고 참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내게 상처 주는 말, 아무리 조심스러운 비난도. 그런 말을 들으면 난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둔다. 그렇다고 앙심을 품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이라도 너에 대해 의혹을 발설하는 자들과 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생긴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며,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법이다.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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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는 눈물과 비명으로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증명한다고 믿지만,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편애를 표현할 뿐이다. 질투에 세 사람이 연루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두 사람도 아니다. 불현듯 자신의 광기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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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내 불평 앞에서 네가 터뜨리던 웃음 덕분이었다. 독선적인 아이의 마음에 네 웃음의 정수가 쏜살같이 날아와 박혔고, 너의 순수한 자유가 불현듯 내게 모든 길을 열어주었다. (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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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큰 기쁜이 된다. 그리움, 공허, 고통 그리고 기쁨은 네가 내게 남긴 보물이다. 이런 보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죽음의 시간이 올 때까지, ‘지금’에서 ‘지금’으로 가는 것 뿐이다. (11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