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 소설, 향
최정나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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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13기

작가정신에서 출간되는 중편소설 시리즈 ‘소설, 향’의 새로운 작품으로 최정나 작가의 <로아>를 읽게 되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기도 하고, 전에 읽은 시리즈가 조해진 작가의 <겨울을 지나가다>라는 애틋한 분위기의 작품이었으므로, 이 작품 역시 그와 비슷할 것이라는 착각을 품에 안고 책을 집어들었다. 그렇다. 그것은 거대한 착각이었다.

살고자 하는 로아의 얼굴, 그 얼굴에 드리운 공포, 그러다가 다시금 차갑게 얼어붙는 로아의 눈빛을 보는 것은 나를 고통스러운 쾌락으로 마비시켰다. (22p)

소설의 맨 도입부부터 ‘일러두기’로서 ‘본문 중에 다소 폭력적이고 잔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어, 이와 관련된 정신적 외상이 있으신 분들은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가 있을 만큼 <로아>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묘사가 가득한 소설이다. 첫 장면부터 ‘나(로아)’가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실에 누워 있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로아가 직접 자신을 어린 시절 끊임없이 폭행하던 언니 ‘상은’의 시점이 되어 후의 전개가 이어짐으로써 그 잔혹한 폭행의 묘사는 더없이 자세해지고 수위가 높아진다.

나는 로아를 때렸다. 사람을 죽이는 게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폭력의 수위를 점점 더 높여갔다. 복부를 차면 로아는 바닥에 엎어져 작은 몸을 더욱 둥글게 말았다. 등을 때리면 옆으로 휘어졌고, 옆구리를 차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점점 더 부들부들하고 흐물흐물해졌다. 전율 속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정말 로아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23p)

피해자인 ‘로아’가 가해자인 ‘상은’이 되어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저 피해자로서 그동안 회피하고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마주하기 위해서였을까? 글쎄, 단지 그 이유만으로는 이 서사의 당위성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이 작품이 내게 끝까지 납득되지 않았다면, 나는 결단코 이 소설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실려있는 김이설 작가의 발문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은 몰이해의 증거일 뿐이니까”라는 로아의 독백이 오래 기억에 남는 문장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알고 싶지 않다.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비밀만 알고 있다면 사실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피해자이자 생존자이고, 생존자는 결국 승자가 될 것이다. 소설과 역사가 공존하는 순간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수록 당신은 안전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173p)

‘폭력을 가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며 ‘소설이 가해자를 이해하는 근거가 되거나, 폭력을 합리화하는 동기가 되어선 안 된다’(168p)고 말하는 김이설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결코 이 작품을 아동학대의 가해자 ‘상은’의 입장에 이입하며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 무관심과 방치, 그리고 유기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그저 씁쓸하게 깨달을 뿐이다. 그렇기에 <로아>는 어떻게 보면 연쇄적인 폭력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탐구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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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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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는 작가님이었다. 이번에 읽어본 단편집 <모린> 중 수록된 작품을 다른 수상작품집 등에서 한번도 뵌 적이 없는, 정말 처음으로 만나뵙는 작가님의 작품이라 설레고, 기대되기도 하며, 걱정스런 마음 또한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고… 정말 좋은 단편들이 많이 실려있는 작품집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담담’이라는 단편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싶다.

<담담>은 내게 ‘회복의 서사’로 읽혔다. 양성애자인 주인공 ‘혜재’는 약 십 년의 기간을 만났으나 끝내 안 좋게 헤어진 동성 연인 ‘수윤’을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다. 그 상태로 학교 선배의 주선으로 소개팅에 가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만난 ‘은석’에게 혜재는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바로 털어놓는다. 그러나 은석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은석이 혜재에게 ‘ ‘라고 물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실 자신은 아내와 딸아이를 ‘사별’로 떠나보낸 사람이라고.

한동안 저한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유가족이었어요. 여전히 중요한 정체성이고요. 이제 ‘가장’이란 말은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육 년 걸렸네요. (103p)

‘바이섹슈얼’이라는 혜재의 정체성은 그녀의 ‘핵심이자 빈틈이었고 빈번히 의심의 빌미’(106p)가 되었다. 전 연인들은 이에 대해 그녀에게 질투 섞인 농담으로 혹은 ‘이별을 목전에 두었을 때는 날 선 힐난’을 던지곤 했고, 이는 그녀에게 ‘메워지지 않는 균열’로 남곤 했다. 그러나 은석은 묻지 않았다. 그는 타고나길 다정한 사람이었고, 섣부르지 않은 태도가 몸에 벤 사람이었다. 하여 혜재는 은석을 만나는 동안 수윤의 그림자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고, 독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혜재의 모습을 보며 뭉클한 마음을 절로 품게 될 것이다.

<담담>외에도 <핀홀Pinhole>, <또,> 등 마음을 울리는 단편들이 있었다. 이 작품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싶지만, 인스타에서 쓸 수 있는 글의 분량에는 한계가 있고 단편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그냥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다소 구차한 변명을 대본다. 한국문학에서 좋은 울림을 주는 단편집을 찾아보기가 요즘 힘들었던 것 같은데, <모린>을 통해 안윤 작가님을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던 2025년 첫 소설 완독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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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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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울지 않았다. 정말이다. 다만, 작품의 맨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코 끝이 찡-하는 감각을 느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읽은 이유는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로 뽑혀 진행된 북토크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김애란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다른 장편인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은 것이다. 물론 김애란 작가는 단편을 주로 쓴다는 걸 알지만, 나는 왜인지 두 차례나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을 ‘읽덮’했더랬다. (그것은 ‘비행운’과 ‘달려라 아비’였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난 뒤 확신했다, 나에게 김애란은 ‘장편을 기가 막히게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을.

소설은 조로증에 걸린 열일곱살 소년 ‘아름’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조로증’이란 정상인보다 몇십년은 일찍 늙어 노화를 보이는 유전적 질병이다. 게다가 아름은 어머니 ‘미라’와 아버지 ‘대수’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덜컥 생긴 아이로서,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대비가 선명하게 비쳐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리기 때문에 서툴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만은 너무도 순수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주인공 ‘아름’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즉, 독자들은 조로증에 걸린 아이의 심정을 너무도 절절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게 정말 슬펐고, 아팠고, 애달팠고, 애잔했다. 김애란 작가님은 사람의 마음을 어찌나 이리도 잘 그려내시는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이 시점을 잘 살려냈을지 의문이 든다.

고작 열일곱살밖에 안 먹었지만, 내가 이만큼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세상에 육체적인 고통만큼 철저하게 독자적인 것도 없다는 거였다. 그것은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누구와 나눠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 있어야 하니까.

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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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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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내게 ‘기욤 뮈소’는 의미가 조금 남다른 작가 중 한 명이다. 예전에는 ‘책’이라는 매체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기까지 했던 나였는데, 추리소설 두 권을 읽고 완전히 책의 매력에 빠져버려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 책들은 바로,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기욤 뮈소의 <센트럴 파크>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기욤 뮈소의 신작을 협찬 제의받은 것이, 내게는 감회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나를 독서의 세계에 입문시켰던 작가의 작품을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제안을 받다니… 뭐랄까, 조금 뿌듯한 마음이 차오른달까☺️

<미로 속 아이>는 재벌가 상속녀 ‘오리아나’가 휴양지에 정박 중이던 요트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충격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니스 경찰청 강력반은 수사에 착수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채 오리아나는 결국 피습 열흘 만에 사망한다. 그렇게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진지 1년 정도 지난 뒤 뜬금없는 익명의 제보가 하나 들어온다. 오리아나의 남편 ‘아드리앙’이 부인을 살해한 후 범행에 사용한 쇠꼬챙이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로 인해 소설은 수사팀장 ‘쥐스틴’이 아드리앙을 심문하는 장면과, 약 18개월 전 오리아나에게 있었던 서사가 교차적으로 서술되며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장면이나 시점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소설은 보통 몰입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로 속 아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욤 뮈소의 필력 덕으로 가독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아드리앙의 숨겨진 연인 ‘아델’이라는 새 인물을 등장시켜 서사의 흥미와 몰입감을 한층 더 강하게 끌어올린 것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오랜만에 읽은 기욤 뮈소의 작품은 아주 만족스러운 감상으로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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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가의 사냥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8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박산호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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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가의 사냥개>는 셜록 홈즈 시리즈 중 단 네 편 밖에 없는 장편 중 하나이다. 셜록 홈즈… 다시 말해 추리소설이다. 이런 작품이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되다니?! 장르문학에 대한 사람들(특히 출판인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새삼 느낀다. 셜록 홈즈 시리즈야 대중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되었다는 건 그만큼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의 ‘문학성’을 갖추었다고 보았으므로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을 두고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를 굳이 고른 것이 아니었을까 하여 너무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므로 출간되자마자 바로 구입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은 황야에 살고 있는 악마 같이 거대한 ‘개’가 나타나 후손을 벌한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스커빌 가문’을 중심 소재로 하고 있다. 이 가문을 이끄는 ‘찰스 바스커빌’이 저택의 오솔길을 걷다가 황야로 향한 후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이 죽음은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그 ‘개’한테 목덜미를 물어 뜯긴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어 그 충격의 여파는 여간 작지 않았다. 때문에 찰스의 조카 ‘헨리 바스커빌’이 셜록 홈즈를 찾아와 이 사건을 의뢰하게 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줄거리 자체만을 놓고 보면 분명히 재밌게 읽을 법한 작품인데… 어째서인지 나는 이 작품이 그리 잘 읽히지 않았다. 일단 줄거리를 조금 더 설명함으로써 나의 감상을 해명(?)해보겠다. 헨리의 의뢰를 홈즈가 수락하긴 하지만, 그 사건 장소로 파견된 것은 홈즈 자신이 아닌 그의 절친한 벗이자 조수 ‘왓슨’이었다… 다시 말해, 소설 중반부의 거의 모든 전개가 왓슨의 행적만으로 채워져있던 것이다. 이 작품, 아니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셜록 홈즈’가 아닌가? 근데 홈즈가 나오는 부분은 초반과 마지막 조금에 불과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단서를 수집하는 인물은 항상 왓슨이었다. 왓슨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홈즈의 활약을 보고 싶던 나로서는 도무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근데 일단 이런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이 책은 일단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못 찾겠다. 번역이 안 좋았던 걸까? 아니면 작품 자체가 원래 그런 걸까? 일단 술술 잘 읽히는, 흡인력이 강한 문체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추리소설에서 가독성을 놓치면 거의 모든 걸 놓친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품에 그리 좋은 평을 남기지 못하겠다. 물론, 홈즈가 등장하고 모든 사건의 전말이 차츰 밝혀지는 작품 후반부는 꽤 몰입하며 재밌게 읽었다. 그러나 그 후반에 잠깐 동안 제공되는 몰입의 감각으로는 앞선 초중반의 지루한 감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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