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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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기온이 낮을수록 용감해진다> 부분


가끔은 연인들이 벌거벗은 채

전나무 숲을 함부로 쏘다니다가

가지에 쌓인 눈을 퍽 맞기도 한다

그건 백설, 하면 설탕!처럼 뻔하고 달지만

매번의 눈폭탄은 환하고 시리고

그렇게 우리는 안개 속에서 땀을 섞는다

눈보라가 온 세상을 덮어버릴 때

우리는 어떻게 외로움에 맞서나

흰 뱀으로 엉킨 뇌를 하나씩 풀어서

설원을 가르며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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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에서부터 대놓고 사랑을 말할 거라고 선언하는 듯한 느낌의 이 시집은, 역시나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시를 많이 품고 있었다. 다만 내가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그저 고명재 시인의 시적 표현들이 내 감성과 맞지 않았던 것뿐인지, 어찌되었든 그렇게 공감이 간다거나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좋았던 구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에 대한 내 감상을 조금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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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 부분


첫눈은 기상청의 정의를 따르는 것 같지만 각각의 눈에서 시작되는 것 한 내시는 새벽에 홀로 궁을 걷다가 단풍 사이로 내리는 걸 분명히 봤다고 중요한 건 첫눈이 소식을 만든다는 것 눈 오네 팔월에 나는 너에게 썼다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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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이 시집이 조금 어려웠던 이유를 위의 구절을 통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 시집에는 ‘산문’인 듯한 시가 많다. 위에 인용한 구절을 보면, 놀랍게도 저 구절이 하나의 ‘연’이자 하나의 ‘행’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시’를 읽는 방법과 ‘소설’을 읽는 방법이 다른데, 저런 구절을 읽을 때면 ‘시’를 읽는 방법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 방법으로 읽게 되어 시의 구절이 온전히 내게 와닿지 않는 듯하다. (‘시’는 한 구절을 두 세번 반복해서 곱씹으며 읽는 편이고, ‘소설’을 읽을 때는 이해 안되는 부분은 쿨하게 던져버린다.) 다만 위의 인용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첫눈이 소식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등의 구절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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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부분


어느 나라에서는 남의 말을 시라고 한다 누가 혼잣말로 추워,라고 말해도 온갖 비평가들이 담요를 들고 곁으로 다가와 모닥불을 피우고 귀를 기울여준다고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해질녘은 이민자들로 넘쳐날 테고 온갖 종류의 빵냄새와 인사말이 섞이는 그런 아름답고 시끌벅적한 강변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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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순간 너무도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게 구절이었다. 상상해보라. 그저혼잣말로 추워,라고말했을 뿐임에도온갖 비평가들이 담요를 들고 곁으로 다가와 모닥불을 피우고 귀를 기울여주는 세상을. 단지 상상만 했을 뿐임에도 이런 세상에 산다면 너무도 따뜻하고 행복할 같다. 시인은 이런 느낌을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익을 것이라는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이거야 말로시적 표현이지 않은가. 그저따뜻하다’, ‘행복하다 밖에 모르는, 부족한 어휘력을 가진 내가 시를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문장을 만난다니 다시금행복해진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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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 스페셜 에디션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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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SF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 작품을 읽게 된 경위를 조금 해명하고자 한다. ‘SF’장르의 작품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 전에 리뷰를 올린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을 너무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그 후로 SF작품을 찾아보다가 ‘앤디 위어 3부작’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션>과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대한 극찬의 후기들을 그동안 많이 접하기도 하였고, 낱권을 따로 구매하는 것보다 3부작 세트를 구매하는 것이 만원 이상 더 저렴하였으며, 교보문고에서는 이미 품절이었기에 다른 온라인 서점에서도 곧 품절될 것이 분명하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급하게 알라딘에서 3부작 세트를 구매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개의 작품 중에서 굳이 <아르테미스>를 먼저 읽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좀더 해명을 덧붙여 보자면, 나는 ‘밥을 먹을 때 맛없는 반찬부터 먹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3개의 작품 중에서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압도적으로 좋은 평을 받고 그 다음이 ‘마션’인데, 그에 반해 ‘아르테미스’는 조금 아쉽다는 평을 많이 받는 작품이라는 후기를 많이 들었다. 이때의 나는 평이 가장 좋은 작품을 먼저 읽는다면 뒤의 작품을 읽을수록 실망이 역력할 것을 두려워해 미리 평이 안좋은 작품을 먼저 읽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아르테미스>를 먼저 읽기 시작하였다.



<아르테미스>는 ‘정통 SF’ 장르라기 보다는 SF에다가 ‘추리’의 요소를 더한 작품이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달에 세운 주거 공간 ‘아르테미스’에서 벌어지는 최상위 기업, 정치인들의 교묘한 술책에 맞서는 이십대 중반의 ‘재즈’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장르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인 ‘가독성’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SF’의 요소도 ‘달의 주거 도시’라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였다고 느꼈다.



다만 이 작품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남긴 분들의 마음 또한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내가 느낀 <아르테미스>에 대한 아쉬운 점은 ‘빌드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주인공 ‘재즈’가 기업가 ‘트론’의 손을 잡고 무언가 일을 벌이는데, 일을 100% 수행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트론의 저택을 방문하게 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트론과 그의 가정부는 살해당한 상태였고 재즈는 ‘범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그곳을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근데 그 저택에서 재즈가 살인범을 목격한 것도 아니었고, 그가 재즈를 노린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도 아니었는데 재즈는 자기의 목숨이 위협당한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재즈는 그후로 계속해서 위기와 고난을 겪다가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아 ‘아르테미스를 구하려는 작전’을 짜게 된다. 근데 여기서 또 의문이 드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인과관계로 여러 사람들을 모을 생각을 했는지, 그런 대규모 작전을 어떻게 만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다가 갑자기 재즈가 사람들을 모으는 장면이 등장하자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여럿 띄어졌다. ‘엥…? 갑자기…? 왜…?’하고 말이다.



비록 이런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재밌는 작품이었고 아직 읽지 않은 앤디 위어의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기엔 충분했다. <마션> <프로젝트 헤일매리>… 읽을 거리가 쌓인다는 불편하면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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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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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꺼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내내 황홀경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좋았다. ‘시’라는 문학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수성이 메말라있던 나의 현상태에 너무도 시의적절한 독서였던 탓일까,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와닿는 시의 감성을 여실히 감각할 수 있었다. ‘황인찬’하면 현재 한국 시인 계의 아이돌(?)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기가 아주 높은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과연 그 인기의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황인찬 시집 도장깨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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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곡> 전문


나는 꿈속에서 부자가 되었다

높은 집에서 창 아래를 내려다본다


친구가 아래를 지나가며 내게 묻는다


“이거 너희 집이야?”


나는 대답한다

“응. 근데 꿈일 수도 있어”


친구는 말한다


“그럼 일단 깨지 말고 있어봐”


그후로 너무도 긴 시간이 지났다 아마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도무지 깰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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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은 이 시집의 초반에 실린 시인데, 읽자마자 황인찬 시인의 감수성이 내 취향과 꽤 잘 맞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품게 했다. 너희 집이냐고 묻는 친구에게 ‘꿈일 수도 있’다고 대답하는 데에서 1차로 감탄을 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센스있는 말이랄까. 근데 뒤이은 친구의 ‘그럼 일단 깨지 말고 있어’보라는 말은 두 배의 센스로 받아치는 듯하다. 어떻게 저렇게 티키타카를 할 수 있지…? 거기다 ‘아마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도무지 깰 방법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이 모든 게 자각몽이라면 깨고 싶지 않은 걸 넘어서 깨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마음이 너무도 공감이 갔다. 나였어도 저런 꿈이면 쉬이 깨고 싶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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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그라스, 똠얌꿍의 재료> 부분


똠은 끓인다는 뜻, 얌은 새콤하다는 뜻

꿍은 새우


레몬그라스는 똠얌꿍의 재료


혼자서 먹었어요,

망원동의 골목에서요


여름이었고, 밤이었고, 너였고, 무한하게 펼쳐진, 나랑은 무관한 별들이었고, 새콤한 게 더운 날에는 딱이니까


향긋한 파 같은 레몬그라스

쑥갓을 닮은 고수


이 시는 겨울에 생각하는 여름밤에 대한 시,

출출한 밤이 오면 생각나는 시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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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을 ‘은은한 색채가 느껴지는 시집’이라고 한 것은 이 시를 두고 한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이 시를 관통하는 주제나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시 속에 쓰인 여러가지 감각들에 대한 표현들, 이를테면 ‘여름이었고, 밤이었고’ 혹은 ‘새콤한 게 더운 날에는 딱이니까’, ‘향긋한 파 같은 레몬그라스’ 등의 시구들이 아주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의 상쾌함을 만끽하며 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고, 향긋한 레몬그라스가 든 새콤한 똠얌꿍이 갑자기 먹고 싶어지기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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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력> 부분


다 함께 모여서 방학숙제를 했지

무슨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그것은 여름 내내 여러 마음이 엇갈리고, 지구의 위기까진 아니어도 마을의 위기쯤은 되는 사건을 해결한 뒤의 일


아이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이 장면은


불안하고 섬세한 영혼의 아이들이 모험을 마치고 일상을 회복하였으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모험을 통해 작은 성장을 거듭해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그런 여름의 대단원이다


물론 중간에 다투기 시작한 아이들 탓에 결국 숙제는 끝내지 못할 테지만


뭐 어때, 숙제는 언제나 남아 있는 거잖아(웃음)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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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레몬그라스, 똠얌꿍의 재료라는 시가 여름밤을 감각했던 시였다면, ‘재생력이라는 시는 제목처럼 파릇파릇한 한여름 낮의 생명력을 십분 느낄 있었다. 나도 방학숙제가 있던 초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동네 아파트의 평상같은 곳에 한데 모여 같이 방학숙제를 한다는 명분으로 놀기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 감성에 젖는 기분… ‘추억 주는 행복의 힘은 생각보다, 아니 생각만큼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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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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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므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언젠가는 그것을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걸 나는 배워 알고 있다. (48p)



여섯 편의 단편 소설들이 수록된 연작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는 모두 ‘귀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귀신들의 서사를 담은 이야기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단순히 공포 장르의 소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왜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 등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게 결국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라는 공통적인 원인으로 귀속되지 않는가? 그 원인들의 다양한 서사들을 보는 재미가 내겐 항상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기존의 내가 ‘귀신’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하던 인물들이 결국엔 죽게 되자 귀신이 되어버렸다는… 그런 편견과는 다르게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선 삶에 대한 미련이 그다지 크지 않던 사람들이 귀신인 것이다. 

🗣 “죽었는데도 ‘옮겨지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가 삶에 크게 미련이 없던 이들이었어. 죽고 싶다, 까지는 아니지만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은 그런 생을 살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막상 그들이 죽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거야.” (285p)



왜일까. 꼭 오랫동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던 이들이었는데 어째서 귀신이 되기를 선택한 걸까. 소설에서는 조금은 가슴 아픈 답을 제시한다. 바로 ‘죽고 나더니 비로소 자기가 생전에 뭘 하고 싶었던 것인지를 깨닫’는다는 것이었다. 즉, 사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는 커녕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한 이들이, 죽음으로서 삶이 끝난 시점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을 깨우친다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읽는 것이 어쩐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니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더라도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거나, 이루고 싶다는 등의 목표가 내겐 없다. 어렸을 땐 ‘유럽 여행’ 등을 버킷리스트로 꼽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최고인 것 같고, 인스타 꾸준히 해서 도서 협찬을 받아보는 것을 바라기도 하였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그건 이미 성취하였다. 



사실 요즘 들어 내가 허무주의 내지는 무력감에 빠진 것 같다.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죽을 건데 뭐하러 굳이 열심히 사는가, 왜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가 등등… 그래서 최대한 편한 삶, 아무것도 안하는 삶을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그런 나를 혼내는 듯했고, 때문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를 (예상치 못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너무도 인생이 허무할 것 같아서 정말 이러다간 귀신이 되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던 곳에 가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고. 아무튼 원하는 거의 비슷한데,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사랑하는지. 맘대로 되는데도 어떻게든 저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굉장하기도 하고.” (289p)



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므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언젠가는 그것을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걸 나는 배워 알고 있다. - P48

"죽었는데도 ‘옮겨지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가 삶에 크게 미련이 없던 이들이었어. 죽고 싶다, 까지는 아니지만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은 그런 생을 살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막상 그들이 죽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거야." - P285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던 곳에 가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고. 아무튼 원하는 건 거의 비슷한데,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또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 맘대로 안 되는데도 어떻게든 저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게 굉장하기도 하고."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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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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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은 못하겠다. <마지막 이야기들> 속의 단편들은 ([여자들]이라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분량이 상당히 짧은 편인데, 그 안에서도 장면 혹은 시점의 전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거나, 해당 장면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부재하여 독자로서는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다리아 카페에서]라는 작품의 경우에는 연달아서 두 번이나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책장을 펼쳤다가 호되게 혼났는데, ‘이게 대체 뭔소리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내용에 대한 갈피를 전혀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작품해설에 쓰인 줄거리 요약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이게 이 내용이었어?’하며 말이다.



원래 ‘단편’소설들이 문학의 정수로 일컬어진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하고 원래는 장편보다 단편 분량의 소설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몰라도, 이 작품집은 ‘독서 고수’들에게나 적합하지 서사성이 강한 작품을 좋아하는 내겐 그다지 마음에 와닿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중에서 (그나마 가장) 좋았던 단편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리뷰를 남겨볼까 한다.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는 총 분량이 열 쪽을 넘지 않는 ‘초단편’ 분량의 소설이지만,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것은 인생에 대한 묵직한 통찰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미스 나이팅게일’이라는 한 여성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벌어지는 일. 소년의 연주는 그녀에게 황홀경을 선사하지만 소년의 과외가 끝난 후로 집안에 있던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걸 깨달은 후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때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 소년이 물건을 훔친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느닷없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전애인(유부남)을 떠올리며 자신이 소년을 기만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는다. 이 지점이 바로 내가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다. 갑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전애인이 아내를 기만하며 자신을 만난 것처럼 본인도 소년을 기만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 생각들이, 대체 소년의 도둑질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가 이해되지 않는달까.



그러나 소년이 그녀를 더이상 찾아오지 않게 되며 그녀에게도 내적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또한 시간이 흘러 소년이 성장하여 다시 찾아왔을 때, 그녀는 소년의 연주를 들으며 불완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가 하나의 경이임을 깨닫게 된다.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마지막 교훈 만큼은 내게 얼마 만큼의 울림을 준 듯한 작품이었다. 

🗣 그는 그녀의 물건을 돌려주러 온 게 아니었고, 곧장 걸어들어와서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위해 연주했다. 그 음악의 미스터리는 그가 연주를 마치고 그녀의 인정을 기다리며 지은 미소 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 나이팅게일은 그를 바라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그 미스터리 자체가 경이였다. (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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