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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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므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언젠가는 그것을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걸 나는 배워 알고 있다. (48p)



여섯 편의 단편 소설들이 수록된 연작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는 모두 ‘귀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귀신들의 서사를 담은 이야기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단순히 공포 장르의 소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왜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 등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게 결국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라는 공통적인 원인으로 귀속되지 않는가? 그 원인들의 다양한 서사들을 보는 재미가 내겐 항상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기존의 내가 ‘귀신’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하던 인물들이 결국엔 죽게 되자 귀신이 되어버렸다는… 그런 편견과는 다르게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선 삶에 대한 미련이 그다지 크지 않던 사람들이 귀신인 것이다. 

🗣 “죽었는데도 ‘옮겨지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가 삶에 크게 미련이 없던 이들이었어. 죽고 싶다, 까지는 아니지만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은 그런 생을 살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막상 그들이 죽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거야.” (285p)



왜일까. 꼭 오랫동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던 이들이었는데 어째서 귀신이 되기를 선택한 걸까. 소설에서는 조금은 가슴 아픈 답을 제시한다. 바로 ‘죽고 나더니 비로소 자기가 생전에 뭘 하고 싶었던 것인지를 깨닫’는다는 것이었다. 즉, 사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는 커녕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 분명한 이들이, 죽음으로서 삶이 끝난 시점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을 깨우친다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읽는 것이 어쩐지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니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더라도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거나, 이루고 싶다는 등의 목표가 내겐 없다. 어렸을 땐 ‘유럽 여행’ 등을 버킷리스트로 꼽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최고인 것 같고, 인스타 꾸준히 해서 도서 협찬을 받아보는 것을 바라기도 하였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그건 이미 성취하였다. 



사실 요즘 들어 내가 허무주의 내지는 무력감에 빠진 것 같다.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죽을 건데 뭐하러 굳이 열심히 사는가, 왜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가 등등… 그래서 최대한 편한 삶, 아무것도 안하는 삶을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그런 나를 혼내는 듯했고, 때문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를 (예상치 못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너무도 인생이 허무할 것 같아서 정말 이러다간 귀신이 되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던 곳에 가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고. 아무튼 원하는 거의 비슷한데,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사랑하는지. 맘대로 되는데도 어떻게든 저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굉장하기도 하고.” (289p)



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므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언젠가는 그것을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걸 나는 배워 알고 있다. - P48

"죽었는데도 ‘옮겨지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가 삶에 크게 미련이 없던 이들이었어. 죽고 싶다, 까지는 아니지만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은 그런 생을 살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막상 그들이 죽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거야." - P285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던 곳에 가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내 하고. 아무튼 원하는 건 거의 비슷한데,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또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 맘대로 안 되는데도 어떻게든 저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게 굉장하기도 하고."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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