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치원 교사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 ‘영아’는 눈은 안 웃는 채 입만 웃을 수 있는 사회적 웃음을 장착한 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단짝 친구 ‘은주’의 가스라이팅과 직장 속 폭력적인 성향의 아이를 맡게 되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그 사회적 웃음조차 점점 잃어가게 된다. 그러던 중 영아는 학부모의 소개를 받아 방문한 상담 센터에서 뇌 시술을 받게 되고, 그 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더이상 참지 않는, 아니 참지 ‘못’하고 속에 있는 울분과 파괴적인 충동을 모두 밖으로 뱉어내게 된다.

소설은 양극단에 처한 주인공의 모습을 차례로 비춘다. 초반에는 모든 것을 참고 억누르며 스스로를 ‘통제’하기만 하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반면, 뇌 시술을 기점으로 그 후에는 통제 능력이 완전히 사라져 무의식 속의 모든 본능을 아무렇지 않게 표출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다.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마 통제와 자유 사이의 가운데를 오고가는 조절 과정을 겪으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사회생활을 이어 나갈 터인데, 그렇기에 완전히 양쪽 극한에 몰린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이레저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서사를 가진 모든 컨텐츠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가 있다. 바로 ‘고구마’와 ‘사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겪고 악인에게 당하는 과정에서 필히 느껴지는 답답한 감정을 고구마 먹는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고구마’. 그리고 주인공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악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통쾌한 감상을 ‘사이다’라고 표현하는 것.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떨까. 소설에서 주인공이 초반에 겪는 모든 수모를 볼 때는 분명히 고구마스러운 답답한 감상이 이어졌다. 그러면 뇌 시술 이후의 주인공에게서는 사이다가 느껴졌을까?

놀랍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분명히 가스라이팅을 일삼던 친구에게 반격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시원하고 통쾌한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완전히 통제에서 해방된 주인공의 모습이 꼭 보기 좋지만은 않았다. 통제 능력을 잃어버리니 파괴적인 폭력성까지도 그 모습을 드러내어 주인공의 주변 세계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까지도 스스로를 망치는 듯한 모습이 비춰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이 책은 섬세한 감성과는 거리가 먼, 아주 거칠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서사를 담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극단의 소설 속 인물에게서 중도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반추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은 일반적인 장르문학에서는 찾기 힘든 깊이가 느껴진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오랜만에 아주 재밌는,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을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무라카미 하루키이지만, 어째서인지 나랑은 도무지 맞지가 않는다. 장편도 그랬지만 단편을 읽으니 더더욱 이유를 명확하게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다루고 있는 공통적인 소재들이 모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현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없는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설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판타지 내지는 환상문학을 좋아하는 취향인 만큼 하루키의 소설 역시 나의 미천한 감수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리고 둘째, 열린 결말을 싫어한다. 해피엔딩이 되었든 새드 엔딩이 되었든 나는 아주 닫힌 결말을 선호하는데, 특히 단편의 특성상 열린 결말이 많을 수밖에 없어 이번 작품집 역시 나에겐 조금 어려웠던 같다. 단순히 난이도가 어렵다기 보다는, 작품 안에 내재하는 이야기들의 빈틈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는 말이 조금 적합한 표현인 듯싶다. 하루키 소설의 특성상 장편보다 단편에서 해석의 여지가 훨씬 넓게 열린 듯한데, 그래서 더더욱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던 같다. 물론 소설집의 리뷰가 안좋다고 하여혹평 남기는 것은 절대 아니거니와, 이런 글을 남긴다고 해서 소설집의 명성에 하나도 누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만큼 하루키 저자만의 색채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취향에 맞지 않은 사람이 있을 있지 않은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이십대 남녀가 우연히 만나며 그후 ‘여덟밤’ 동안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 참 지루했고 로맨틱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워낙 두꺼운 볼륨의 작품인 만큼, 게다가 수많은 갈등이나 사건 등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심리만을 조명하여 그에 온전히 초점을 맞춘 만큼, 작품의 전체적인 전개 속도는 분명 느렸다. 그로 인해 지루한 감정이 필히 느껴질 수밖에 없긴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사랑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 정말 ‘로맨스 소설’의 정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차분하게 한땀한땀 전개되는 밀도 높은 로맨스 소설을 찾노라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 지는 오래 되었지만 ‘여름’이 되면 읽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서야 꺼내든 이디스 워튼의 작품이다. 사실 난 이 책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세계문학전집에 실린 로맨스 작품들, 이를 테면 제인 오스틴이나 프랑수아즈 사강, 에밀리 브론테 등의 작품들이 단 한 번도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은 달랐다. 문장 하나하나가 감탄의 연속이었다. 

나뭇잎이면 나뭇잎, 꽃봉오리면 꽃봉오리, 잎사귀면 잎사귀가 숨을 불어넣어 향기가 퍼져 나가게 도왔다. 그중에도 코를 찌르는 듯한 소나무 수액이 백리향의 짜릿한 향과 고사리의 희미한 향을 압도했으며, 이 모든 것이 햇볕을 받아 거대한 짐승의 숨결 같은 촉촉한 흙냄새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53p

위의 문장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부터가 ‘여름’인 만큼, <여름>은 여름의 계절감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묘사들이 정말 뛰어나다. 보통은 이런 문장들을 읽을 때면 서사의 진행이 방해를 받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곤 하는데, <여름>은 이런 문장들을 읽는 매력이 뛰어났다. 이 소설을 읽는 지금이 여름이라 그런가, 아니면 장황하지 않게 간결하면서도 뛰어난 묘사가 담긴 문체여서 그런가. 무튼 ‘여름’의 느낌이 아름다웠던 작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따금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할 때 두 사람의 거리는 가장 많이 벌어졌다. 교육과 기회에서 비롯된 격차는 채리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그의 칭찬이 서로를 아주 가깝게 느끼게 할 때조차 어떤 우연으로 말 한마디, 어떤 무의식적인 암시가 채리티를 다시 심연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72~73p

그리고 <여름>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심리 묘사’일 것이다. 자신의 출생 신분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는 여성 주인공 ‘채리티’가, 외모와 교양 모든 것이 완벽한 남성 주인공 ‘하니’를 만나 사랑의 떨리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와 마냥 가까워지기는 힘들어하는 열등감을 이 소설은 너무도 잘 표현해내었다. 

채리티는 하니가 두 팔로 안아 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우유부단하게 몸을 돌렸다. 마지막 빛이 ‘산’ 너머에서 사라졌다. 방안의 모든 물건이 회색으로 변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가을의 냉기가 과수원 아래 골짜기에서 올라와 두 사람의 상기된 얼굴을 차갑게 어루만졌다.

192p

그러나 단 한 가지, 결말이 이 모든 것을 망쳤다… (스포일러 주의)

소설은 초반부터 하니가 채리티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둘 사이가 이어지지 않는 것은 오히려 올바른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른 부분이다. 어째서 채리티가 후견인과 결혼하는 결말로 소설의 끝을 맺게 된 것인가…?! 다시 생각해도 속에서 열불이 솟구쳐오른다. 채리티의 ‘성장’ 과정을 그린 문학이라는 뒷표지의 문구가 무색해지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정말 성장 서사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면 채리티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그곳에서도 혼자서 묵묵히 잘 살아가는 결말이 합당하지 않은가? 대체 이게 무슨… 물론 이 소설의 매력은 차고 넘치도록 충분히 느꼈기에 이디스 워튼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볼 요량이 있으나, 어쨌든 이 소설은 별 다섯개에서 결말로 인해 하나가 빠진, 용두사미 느낌의 작품이었다. 아, 화 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르른 틈새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1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이 말부터 하고 싶다.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작품이었다는 걸. 그치만 한마디만 더 붙이자면, 그렇다고 이 소설이 안좋은 작품은 아니었다고도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두고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운동권 세대의 후일담 소설’ 이라든지 ‘평범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난 주인공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 이라고 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소설은 그저 ‘실패 소설’이었다.



‘실패 소설’이라는 괴상한 단어는 무슨 뜻인가 하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매번 ‘실패’하기만 하는 소설로 읽혔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1980년대의 대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데모 등의 운동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이 운동에 참여하긴 하지만 간절하고 처절하게 구호를 부르짖으며 정의감을 보이기 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스스로를 운동에 헌신하는 투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결국 그 운동권에서 빠져나와 다시금 죄책감을 느껴한다.



또한 주인공은 대인관계에서도 ‘실패’를 경험한다. 청소년기 시절에는 주변 친구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학에 올라와서도 주체적으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성적 욕망을 자각하지 못하고 방황해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연애를 통해 해결되는 듯 보이나 결국 그 연애 또한 최악의 이유로 인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보다 먼저 결별을 말하고자 했던 애인이 실은, 주인공의 절친과 결혼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주인공은 면도칼로 손목을 긋는 자살 기도를 하게 되지만, 이 또한 결국 포기한다. 즉, 또 한번 실패한다.



이십대 청춘의 모습을 이토록 어둡고 절망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푸르른 틈새>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죄의식과 상처, 무력감과 회환과 같은 심상이 전 세대의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바랐던 걸까. 그렇게 이 시대의 감성을 그 후에도 계속해서 공유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분명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좋은 작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밝고 따듯한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는 나의 취향과 맞지 않긴 했다. 



🗣 저는 작년에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이라는 소설집을 준비하며 ‘다크 권여선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귀환인 까닭은 다크의 시작이 있다는 뜻인데, 저에게 그 처음에 놓인 작품이 바로 <푸르른 틈새>입니다. 어둡고 축축하고 어쩔 줄 모르겠는 공기, 그런데 어쩐지 그 안에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다크함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에 오래 젖어 책을 읽어나가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이달책을 구매하면 받을 있는편집자 레터 있던 말이었다. ‘다크 권여선이라니, 역시 그만큼 어둡고 축축한 소설이었구나. 누군가는 소설을 분명히 좋아하고 읽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일단 나는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