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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평점 :
<동경>에는 커다란 한 줄기의 사건 내지는 이야기라 할만한 게 없다. 그저 세 인물, 아름, 민아, 해든 각각의 서사만이 얽혀있을 뿐이다. 과연 이 형식이 ‘장편 소설’이라는 장르에 부합하는 것일까? 소설 구성의 3요소라고 불리는 ‘인물, 사건, 배경’ 중 사건이 아예 배제된 채 그저 인물들 개개의 서사와 그에 따른 심리 묘사만으로 장편 분량의 소설을 쓰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일까?
200페이지가 가까스로 넘는 분량의 이 작품은 앞서 말했듯 오직 인물들의 심리만으로 채워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설에는 인물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혹은 그 상황이 변화한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답을 정의내리는 문장들이 아주 많았다. 한국문학을 읽을 때 느끼는 매력 중 하나가 바로 막연하고 흐릿하게 생각하고 있던 여러 감정들이나 상황들을 명확하고 참신한 표현의 문장들로 만나게 되는 것인데, <동경>은 여러 개 써놓을 테니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식으로 그런 것들을 남발한 듯 아주 작정하고 과하게 써내려놓은 듯했다.
물론 독자들 중 누군가는, 혹은 많은 사람들은 그런 문장 하나하나에 공감을 느끼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 또한 그런 문장들을 좋아하므로 한국문학을 꾸준히 찾아읽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소설은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단편보다 장편이 취향에 맞는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화진 작가는 단편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소설에서는, 특히 캐릭터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동경>에서는 그 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이 더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다시 말해, <동경>에 등장하는 아름, 민아, 해든 세 명의 여성이 어쩐지 한 사람인 것처럼 너무 비슷한 성격을 가진 듯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아름의 시점에서 민아와 해든을 볼 때 세 인물은 각각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면이 전환되면서 민아의 시점으로, 그리고 해든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 나는 이들의 성격이 아름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마치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는 작가의 능력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 모두 ‘작가 김화진’이라는 한 사람에게서 만들어진 인물이다보니 작가의 성격이, 그리고 작가의 시선이 모든 인물에게 녹아든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결국 아쉬운 감상으로 책장을 덮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장편소설······ 어렵더라구요······”라고 시작하던데,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는 것이니 다음 장편에서는 더 좋은 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