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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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온 힘을 다해 다른 선택지를 찾는 건 도망이 아니라 기도니까. (182p)


‘와…’라고, 다 읽은 뒤 허한 탄성을 내두를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단편을 주로 써온 작가의 장편에서 으레 느껴지곤 하는, 서사가 단편적으로 끊기는 느낌조차 이 작품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설 속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김애란의 문장들이,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너무도 탁월하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부모를 떠나보낸 세 명의 학생들이다. 이혼한 엄마가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을 앓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 ‘지우’,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받다가 결국 엄마를 떠나보낸 ‘소리’, 커피 유통사업 실패를 겪으며 만취 상태에 온갖 학대를 저지르는 아버지가 어느날 흉기로 어머니를 위협하자 이를 막으려다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게 만든 ‘채운’. 김애란은 이렇게 어둡고 우울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들을 연민하거나 동정 어린 시선으로 감히 내려다보지 않는다. 그들의 곁에 따뜻한 주변 인물을 두거나, 혹은 이들끼리의 소통을 따스한 방향으로 부각하여 역설적으로 더 큰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게 만든다. 


🗣 그러니 부탁인데 지우야. (…) 나를 떠나지 말고, 나를 버려라. (228p)


분명 이 작품에는 이렇다할 중심 사건이 없다. 하여 완독한 뒤 이 작품의 줄거리를 떠올려보려 해도 그저 막연하고 자잘한 상황들만 연상될 뿐이다. 세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여 전개되는 작품의 특성상, 하나의 줄기를 떠올리기란 필연히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편적인 내용조차 너무도 아름답고 아련하고 행복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은 분명 김애란의 필력 덕일 것이다. 차분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묘사할 때는 그러하면서도 또 강력하게 내뱉어야 할 때는 직설적인 어조로 꽂는, 그런 문장들 말이다.


🗣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85p)


한 번의 독서로는 절대 이 작품에 담긴 의미 전부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두 번, 세 번 재독하면서 다시금 느끼고 감각함으로써 비로소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마다 와닿는 문장들 또한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매번 새로이 내 마음에 와닿을 김애란의 문장들을 어서 환영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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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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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시도 끝에 소설의 내용을 겨우 파악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도입부터 결말까지 머릿속이 온통 물음표로 가득했고, 결국 그 상태로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차분하고 꼼꼼하게 한줄 한줄을 정성 들여 읽어내려가다보니 내가 어떤 부분을 놓쳤었고 왜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그 이유 첫번째는, <아우라>가 소설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2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작중 화자는 주인공 ‘펠리페 몬테로’를 ‘너’라고 칭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품의 첫 문장만 보더라도 “너는 광고를 읽어.” 이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너’라고 부르는 화자 ‘나’는 누구인가? 이 점은 소설이 결말에 가서야 비로소 밝혀지고, 그 전까지 독자는 계속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이야기를 힘겹게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상당히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 <아우라>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묘사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상상하며 고딕 소설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를 감각해야하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너는 현관문을 닫고 천장이 있는 복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고 해. 이끼나 눅눅한 화초, 혹은 썩은 뿌리의 냄새같이 졸음을 불러일으키는 향이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안뜰로 들어선 것이 틀림없어. 무언가 길을 밝혀 줄 만한 불빛을 찾아 서성이지만 보이질 않네. (13~14p)

🗣축축하고 찐득거리는 벽을 만지며, 지금 맡는 이 짙고 현란한 향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일까 추출해내려고 시도하지. 깜박거리는 성냥불 빛이 군데군데 돌이 박힌 좁고 축축한 안뜰을 밝히지. 양쪽의 붉고 푸석거리는 땅에는 화초들을 심어놓았어. (46p)

‘음미’ 내지는 ‘감각’이라는 독서 감상의 방법이 너무도 중요한 이 소설에서 나는 그 ‘감각’적인 부분을 놓쳤다는 생각이 재독하는 동안 들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자꾸 이런 묘사들이 그 진행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첫 시도에 줄거리를 따라가느라 느끼지 못했던 이런 감각들을 두번째 시도에선 최대한 많이 상상하고 느껴보려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 세번째. <아우라>의 서사가 가지고 있는 그 ‘환상’이라는 특성이 나를 너무도 힘들게 했다. 현실적인 인과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 초현실적, 환상적인 전개가 납득되질 않았달까? (MBTI 중 S성향 90%…) 이쯤에서 줄거리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주인공 펠리페는 어느날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한 저택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노인 ‘콘수엘로 부인’과 그녀의 아름다운 조카 ‘아우라’가 있었고, 펠리페는 콘수엘로의 사별한 남편 ‘요렌테 장군’의 회고록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펠리페는 콘수엘로의 기이한 종교적 몸짓(?)을 보게 되고, 아우라를 데리고 그곳에서 탈출하려 한다. 그러나 아우라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며 펠리페의 제안을 뿌리치고, 도리어 펠리페와 격렬한 관계를 나누는 등 영원한 사랑을 맹세받고 싶어한다. 과연 콘수엘로의 그 행동은 무엇이었으며 콘수엘로와 아우라는 무슨 관계에 있는 걸까? 그리고 펠리페를 계속 ‘너’라고 지칭하는 화자 ‘나’는 과연 누구인가?


사실 <아우라>의 묘미는 결국 결말에 등장하는 반전,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해명되는 부분일 것이다. 바로… ‘아우라’와 ‘콘수엘로 부인’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펠리페를 ‘너’라고 지칭하는 인물이 ‘요렌테 장군’이라는 것. 게다가 그 둘 또한 동일 인물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펠레페는 요렌테 장군의 젊은 시절의 인물이었고, 소설 속 ‘너’는 ‘나’이자 ‘그’인 셈이었다… 정말 몹시도 어지럽지 않을 수 없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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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 아일랜드
김유진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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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하나만을 두고 벌어지는 서바이벌 생존기… 라기 보다는 ‘센트 아일랜드’라는 향기 산업 연구 단지의 인턴 사원이 되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7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주인공 ‘다린’은 2차 실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센트 아일랜드에 직접 오게되며 많은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찌되었든 주변 친구들과 경쟁을 통해 최종 5인이라는 합격자 명단 안에 들어야하는 싸움을 그리고 있으므로 ‘서바이벌’이라 칭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류의 소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 인생 예능 프로그램도 ‘더 지니어스’일 정도다.) 애초에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작품을 읽을 기대를 하고서 독서를 시작한 책이 아니라, 읽는 시간동안 만큼은 가볍고 재밌게 온전히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고 읽었으므로, 나는 이 책이 무척이나 재밌었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 철학책이나 어려운 고전들을 읽게 되었던 지라, 더더욱 이런 책이 내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즉, 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책을 찾는 사람들에겐 이 책을 꼭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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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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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2기

솔직히 ‘비채 서포터즈’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읽어보지 않았을 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비채 서포터즈로 활동하길 얼마나 잘했는지 모른다. 아프리카 문학, 그것도 식민지 시대의 아프리카를 다룬 문학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그만큼 이 작품이 너무도 좋았다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일흔 살의 노인 ‘새뮤얼’이다. 그는 아무도 없는 외딴 섬 하나를 홀로 지키는 등대지기 일을 20여년 간 도맡아왔다. 그러던 중 해안가에 시체 한 구가 떠밀려 온 걸 확인한 그는, 그것이 시신이 아닌 ‘아직 살아있는’ 어느 남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두막으로 데려오게 된다. 사실 그는 불법 입국을 시도했다가 사고를 당하여 이곳으로 떠밀려오게 된 난민이었고, 새뮤얼이 그를 마주하며 일어나는 나흘 간의 일을 이 소설은 다루고 있다.

여기까지의 내용 설명만 듣고서 혹시 ‘낯선 불청객의 침입으로 인해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을 다룬 스릴러’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사실 이 소설의 주된 서사는 새뮤얼이 그를 마주하며 회상하는 새뮤얼 자신의 과거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독재 정치 하에서 정치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오랜 기간 복역하게 된 것부터 가족을 잃었던 비참함과 착잡한 감정 등, 식민지 아프리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려는 남아공 출신 작가의 노력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단순히 식민 통치 시대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시금 현재 서사로 돌아와 이방인 남자와 새뮤얼 간의 따스한 위안과 연대 또한 행복한 마음으로 와닿는다. 좋은 책은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필히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해보인다. 흔하디 흔한 힐링 소설이나 힐링 에세이들이 릴스에 널릴 게 아니라, 이런 작품 이런 수작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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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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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2기

유명한 설화나 신화, 고전 민담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롭게 재탄생한 작품들이 최근 많이 보인다. 얼마 전 읽은 박서련 작가의 <폐월 : 초선전>부터 메들린 밀러의 <아킬레우스의 노래>와 <키르케> 등등. 이번에 읽은 <메두사> 또한 ‘신화에 가려진 여자’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신작 소설이다. 그 유명한 그리스 신화의 악역(?) ‘메두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인 것이다. 이렇듯 잘 알려진 이야기를 각색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작품들이 요즘 흔하게 보이는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한 이야기에서 보장되는 재미’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단지 그 이야기들이 워낙 오래되다보니 시대적 분위기와 맞지 않아 불편함을 유발하는 지점이 있어 그런 부분들을 새롭게 각색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도 바로 그 탓일 거다. 즉 어느 정도 보장된 재미를 갖고 가면서 동시에 현대적 시각의 신선함까지 얻을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말이다.

이번에 읽은 <메두사> 역시 그렇다. 그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메두사’ 신화를 재창작하였다. 메두사의 목을 베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영웅 ‘페르세우스’의 시점이 아닌, 정말 메두사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1인칭 시점으로 말이다. 메두사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메두사 신화는 어떨까,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가득했고 읽으면서도 역시 신선한 재미가 매력있는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관계를 단순히 대척되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그러했다.

그렇지만,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각색한다는 것은 보장된 재미를 위협하는 커다란 위험 또한 따른다고도 생각한다. 그 유명한 <재벌집 막내아들>을 예로 들자면, 처음부터 결말 직전까지는 완벽하게 잘 달리다가 마지막에 원작과는 다른 결말을 택하는 바람에 온갖 시청자들의 욕을 바가지로 먹지 않았는가. 원작이 유명하다는 건 그만큼 그 작품에 대한 팬층이 두텁다는 뜻이고, 그는 곧 재창작되는 작품에 대한 잣대가 높이 설정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여 기존 팬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거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보장된 재미는 커녕 오히려 혹평만을 받고서 쓸쓸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작품 역시 그러했다. 내가 알고 있던 기존 메두사 신화의 결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 점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아쉬웠고 작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을까. 초중반의 이야기 전개를 잘 빌드업 쌓아놔서 더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결말이었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작 결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 전체가 더욱 애절하고 아련한 여운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싶다. (스포일러 될까 더이상 결말 얘기는 생략)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추천하고 싶다. 나와는 다르게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분명 역으로 원작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있을 거라 생각되니 말이다. 이야기는 분명 재밌으니, 그리스 신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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