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목숨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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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니, 도저히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에 읽었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워낙 인상이 강하게 남기도 했고, 오랜만에 추리소설 한 권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즈음 <아홉 명의 목숨>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을 꺼내들기 전의 감정이 비단 설렘 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걱정스런 우려 또한 강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특유의 구조 때문일 것이다. 열 명의 등장인물이 한데 모여 차례로 죽어나간다는 그 서사 구조가, 등장인물들의 난립으로 이어지게 되면 독자들의 머릿속은 추리의 즐거움보단 인물 이름 외우기로 인한 혼란으로 가득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홉 명의 목숨> 또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다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책장을 펼치자마자 완전하게 해소되었다. 출판사에서 제작한 일종의 책갈피랄까, 엽서에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정보를 요약하여 적어놓았고, 그 뒷면에는 독자들이 적어가며 추리를 즐길 수 있도록 메모 칸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와, 출판사 직원들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인물 수가 많은 소설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은 이 책의 사례를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다시 내용으로 돌아와서, <아홉 명의 목숨>은 명단에 적인 인물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 또한 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열 명의 인물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고립된 채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클로즈드 서클물’인 반면, <아홉 명의 목숨>은 그와는 다르게 인물들이 모두 제각기 다른 곳에 있고 그럼에도 한 명씩 죽어나간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더더욱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어떻게 살해당하는가, 아니 이들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길래 살해 대상이 되는 것인가. 범인을 찾는 과정 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것이 바로 이 인물들 간의 연관성을 추측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오랜만에 만족스런 감상으로 읽었던 추리소설이었다. 곧 있을 추석 연휴에 가볍게 읽을 만한 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아홉 명의 목숨>을 강력히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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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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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이 내 이름과 같은 ‘승준’이어서, 그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움찔하며 놀랐다는 여담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지금껏 수많은 한국문학을 읽어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승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 여간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왠지 모를 애정이 더 가는 것도 같다.

<빛과 멜로디>는 기자인 주인공 승준이 칠년 전 유명한 사진가인 ‘권은’과의 인터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터뷰 당시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에는 사실 그녀가 자신과 동창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둘의 서사가 차츰 선명해진다. 물론 유부남인 승준과 권은이 다시 만나면서 고조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랬다면 아마 이 소설은 훨씬 동적이고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 소설은 그보다 훨씬 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현재 시점에서 승준의 아내인 민영과의 일화가 회상된다던지, 영국에 잠시 머물게 된 권은이 그녀의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보여준다던지 하는 등… <빛과 멜로디>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소설이라기보단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과거 사연을 병렬적으로 알게 되는 소설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인생책으로 꼽는 작가의 전작 <단순한 진심>에서 보였던 ‘주인공 이름의 뜻을 찾는 여정’과도 같은 유동적인 서사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저자가 아무래도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바로 ‘전쟁’과 관련한 지점인 듯하다. 권은의 주변 인물들 중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와 반전 운동을 펼치는 아들 간의 불화를 겪는 인물들을 보여주는가 하면, 승준의 인터뷰 대상 중 우크라이나 여성을 등장시켜 대놓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폐해를 겪는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이런 인물들보다 승준-권은의 서사가 훨씬 중요하겠거니 싶어 이 부분에 더 집중했다가 다른 이들의 사연을 놓친 것도 같아 다시 되돌아가 읽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들의 사연을 간과하지 말고 꼭 주의깊게 읽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러한 류의 소설들은 아무래도 흥미진진한 전개와는 거리가 멀다 보니 조금은 답답하다거나 지루한 감상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해진 작가는 그녀만의 문체로 독자들을 여전히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아름답고 섬세한, 유려하기 그지없는(?) 작가의 문장들이 다시금 나를 황홀경에 빠뜨리니 말이다.



🗣(101p)

아버지, 라는 단어가 민영에게는 마음 속에서 온갖 감정을 끌어올리는 투명한 그물과 같다는 걸 잘 아는 승준은 오늘밤 그녀가 유독 지쳐 보이는 이유를 그제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120p)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말 다음엔 때로는 승준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또 때로는 무겁게 각성시키기도 했던 바로 그 문장이 이어졌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p148) 

승준은 모르겠지만, 민영은 승준과 만나면서 예전보다 더 외로워질 때가 있었다. 절박해서였을 것이다. 절박했으므로, 승준의 진심을 믿으면서도 그가 변할까봐 두려웠다.


🗣(p152)

뭣도 아닌 주제에. 민영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런 아버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어른의 말투로 중얼거렸고, 그 순간 심장이 증오심으로 미친듯이 검게 번져가는 걸 느꼈다. 안에서부터 식은, 가차없이 찬 감정이었다.


🗣(p208)

긴 통로라는 것만 알 뿐, 바닥은 좀처럼 가늠되지 않는 우물 같은 외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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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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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나라에서 속도감 있는 장편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중 한명으로 ‘정유정’ 작가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정유정 작가의 작품은 몰입감 넘치는 필체와 스토리 전개 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녀의 작품으로 전작 <완전한 행복>을 꼽고 싶다. 실제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은, 뉴스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한 편의 대서사를 만들어냄으로서 극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 또한 <완전한 행복>의 느낌을 기대하며 책장을 펼쳐들었다. 특히나 ‘욕망 삼부작’이라 명명한 시리즈로 전작에 이어져 출간되는 두번째 시리즈 소설이라길래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읽은 <영원한 천국>은 나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기존의 정유정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SF’ 장르의 소재를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는 배경은 바로 가상세계 ‘롤라’이다. 이곳에서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육체 외에 모든 것을 데이터화 하여 유심에 담아 업로드가 되면, 그 이후로는 홀로그램으로서 모든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는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현실 세계의 정보가 모두 사라지게 되는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이다보니, ‘롤라’의 운영진들은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도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할 ‘노숙자’들 몇 명에게 그 유심칩을 나눠준다. 그리고 그 유심칩을 빼앗거나 지켜내기 위한 고군분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천국>의 주인공 ‘해상’은 그 ‘롤라’ 속에서 고객이 살고 싶어하는 세계를 설계하여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경주’라는 고객에게 의뢰를 받고 그의 사연을 들으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이 설정이 기존 SF소설들에서 흔하게 봐왔던 것처럼 느껴져서 신선하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실은 조금 식상한 소재가 아닌가 싶은 느낌까지도 들었다.

아쉬운 점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욕망 삼부작’이라는 말을 들으며 얼마나 파렴치한 캐릭터가 등장할지 기대가 가득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부분이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다. 이를테면, 소설 속 여주인공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설정으로 나오는데, 이를 두고만 볼 순 없는 남자친구가 그 ‘롤라’로 들어가게 하는 유심칩을 여주인공에게 주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내용이 전개된다. 물론 그 유심칩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이 여러 욕망 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바로 그 여주인공이었다. 루게릭병의 치료를 받지 않고 여생을 끝마치고자 하는 모습이, 물론 그런 생각을 할 순 있겠다만 다소 ‘욕망 삼부작’이라는 칭호에는 어울리지 않달까. 만약 그 루게릭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더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유심)을 알게 되고, 그 여주인공이 그 유심을 얻기 위해 직접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개였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욕망의 낱낱을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당연히 작가의 압도적인 필력은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모로 아쉬운 감상이 많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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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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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서포터즈2기  

다섯 명의 소설가가 디저트 하나씩을 선정하여 그를 소재로 단편을 모은 디저트 앤솔러지 <녹을 때까지 기다려>가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아무래도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소설가들의 작품이 개별적으로 실려있다보니, 모든 작품이 다 마음에 들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이 다섯 편의 이야기를 모두 소개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 하나만의 감상을 옮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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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섯 편의 소설 중 세 편의 소설이 좋은 감상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중 단언코 독특했던 감상이 매우 뛰어났던 작품은 오한기 작가의 <민트초코 브라우니>이다. 오한기 작가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팩션’ 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중 한명이지 않을까 싶다. 작품의 첫 도입부 부터 작가는 독자들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이 글에 쓰인 내용이 소설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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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랜서로서 대출받기는 정규직 전환보다 어렵다. 첫 직장에 재직할 때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 만기가 도래하고 대출을 갚기 위해 다른 은행 대출을 알아보다가 거절당한 뒤 닥치는 대로 청탁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김영사에서 디저트 앤솔러지를 출간할 계획이라며 청탁한 초콜릿 테마 단편도 이 시기에 덜컥 수락한 것이다. (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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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작가가 처한 현실 그대로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팩션 소설장르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극강의 몰입감일 것이다. 아무리 묘사가 뛰어난 소설이라 해도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일 뿐이라는 깨닫는다면 조금은 작품과 거리를 두고서 읽어내려갈 있다. 그러나 작품처럼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라면? 몰입은 확연히 달라진다. 일반적인 장르 소설과는 다른 느낌으로 손에 땀을 쥐며 읽었던 작품이었다. 제발 소설이 현실은 아니었길 바라며, 재밌었다는 말과 함께 글을 마친다. 혹시 내용이 궁금한가? 하지만 단편은 내용 요약하는 순간 결말까지 발설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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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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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도쿄도 동정탑’은 범죄자를 처벌의 대상이 아닌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이들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최첨단 교도소를 말한다. 이는 상당한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이에 대한 담론이 그리 깊이 다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언어’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화자가 ‘가타카나’를 잘 사용하지 못하고 일본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장면이나, 범죄자를 ‘호모 미세라빌리스’, 비범죄자를 ‘호모 펠릭스’로 새롭게 명명하는 부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왜 중요한지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쿄도 동정탑’이라는 흥미롭고 신선한 소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다른 이야기로 벗어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또한 저자의 문체도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덜컥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번역의 문제일까 싶었지만, 그런 느낌보다는 오히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감상에 더 가까웠다. 문맥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달까. AI를 활용한 문장이 포함되었다는 점,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점, 내가 좋아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극찬이 있었다는 점 등에 기대를 가지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지만,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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