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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평점 :
아마 우리나라에서 속도감 있는 장편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중 한명으로 ‘정유정’ 작가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정유정 작가의 작품은 몰입감 넘치는 필체와 스토리 전개 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녀의 작품으로 전작 <완전한 행복>을 꼽고 싶다. 실제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이 작품은, 뉴스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사건의 세부적인 내용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한 편의 대서사를 만들어냄으로서 극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 또한 <완전한 행복>의 느낌을 기대하며 책장을 펼쳐들었다. 특히나 ‘욕망 삼부작’이라 명명한 시리즈로 전작에 이어져 출간되는 두번째 시리즈 소설이라길래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읽은 <영원한 천국>은 나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기존의 정유정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SF’ 장르의 소재를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는 배경은 바로 가상세계 ‘롤라’이다. 이곳에서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육체 외에 모든 것을 데이터화 하여 유심에 담아 업로드가 되면, 그 이후로는 홀로그램으로서 모든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는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현실 세계의 정보가 모두 사라지게 되는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이다보니, ‘롤라’의 운영진들은 존재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도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할 ‘노숙자’들 몇 명에게 그 유심칩을 나눠준다. 그리고 그 유심칩을 빼앗거나 지켜내기 위한 고군분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천국>의 주인공 ‘해상’은 그 ‘롤라’ 속에서 고객이 살고 싶어하는 세계를 설계하여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경주’라는 고객에게 의뢰를 받고 그의 사연을 들으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이 설정이 기존 SF소설들에서 흔하게 봐왔던 것처럼 느껴져서 신선하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실은 조금 식상한 소재가 아닌가 싶은 느낌까지도 들었다.
아쉬운 점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욕망 삼부작’이라는 말을 들으며 얼마나 파렴치한 캐릭터가 등장할지 기대가 가득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부분이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다. 이를테면, 소설 속 여주인공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설정으로 나오는데, 이를 두고만 볼 순 없는 남자친구가 그 ‘롤라’로 들어가게 하는 유심칩을 여주인공에게 주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내용이 전개된다. 물론 그 유심칩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이 여러 욕망 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바로 그 여주인공이었다. 루게릭병의 치료를 받지 않고 여생을 끝마치고자 하는 모습이, 물론 그런 생각을 할 순 있겠다만 다소 ‘욕망 삼부작’이라는 칭호에는 어울리지 않달까. 만약 그 루게릭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더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유심)을 알게 되고, 그 여주인공이 그 유심을 얻기 위해 직접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개였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욕망의 낱낱을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당연히 작가의 압도적인 필력은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모로 아쉬운 감상이 많이 남았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