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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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우리나라에서 사상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나왔는데,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해당 작가의 작품을 도저히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른 한강 책은 바로 <흰>이었다. 해당 작품을 읽겠노라 다짐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던 ‘어떤 한강 책 먼저 읽을까’에 대해 ‘흰’이란 답변이 있기도 했고, 노벨상 수상 이유를 말하는 심사위원장의 말에서 <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내 기억에 인상깊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어로 말해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언급될 줄 몰랐던 작품이 언급되어서 놀랐던 것만은 분명하다.)

<흰>은 한강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담긴 작품이다. 한강 작가가 태어나기 전, 그녀의 어머니는 칠삭둥이(7개월만에 조산한 아이) 여자아이를 낳게 된다. 한강의 언니가 될 수도 있었던 그 아이는 태어난지 몇 시간도 안되어 결국 눈을 감는다. 작가는 만약 그때 언니가 살았더라면 지금 자신은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일종의 부채감을 가진 채 살았다고 한다. 그 부채감이, 얼굴도 못보고 떠나보낸 언니를 향한 애도와 추모의 마음이 <흰>이라는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흰’ 색의 사물들에 대한 단상(斷想)들이 결말에 가서 추모(追慕)라는 하나의 마음으로 모이는 구조는 그 슬픈 감정의 여운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정말 슬펐다. 부드럽게 애절한 한강 작가의 문체가 더욱 아련한 마음을 들게 한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135p)

또한 <흰>을 두고 ‘소설’이라기엔 다소 서사가 부족하고 풍부한 이미지의 나열이 보다 더 인상적이므로 ‘산문시’라 칭하는 편이 훨씬 더 어울릴 듯싶다.

밤사이 내린 눈에 덮인 갈대숲으로 그녀가 들어선다.

하나 하나의 희고 야윈, 눈의 무게를 견디며 비스듬히 휘어진 갈대들을 일별한다. (104p)

때문에 이 책에 적힌 모든 글의 의미를 일회독 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묵직한 애도의 마음은 고스란히 전해져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한림원에서도 이 점에 주목하여 밝힌 심사 이유가 인상적이다. 아래에 해당 글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흰’(2016; The White Book, 2017)에서는 한강의 시적인 문체가 다시 한번 지배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술자의 언니가 될 수 있었지만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바치는 애가이다. 흰 사물에 관한 일련의 짧은 메모들인 이 작품은 슬픔의 색을 통해 작품 전체가 연결되는 구성이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세속적 기도서'에 가깝다. 서술자는 상상의 언니가 살 수 있었다면 그녀 자신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또한 이 책은 죽은 자에게 말을 걸면서 마지막 말을 한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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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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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가 그렇게나 재밌다고들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잘 읽지도 않는 터라 괜히 손이 가질 않았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하루키의 소설에 빠져들고 있는 참이기도 했고, 이번에 읽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소설가’를 주제로 쓰인 에세이다보니,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소재를 중심으로 쓰인 에세이라 어쩌면 재밌게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을 다른 사람들 누구나에게 추천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솔직하게 그렇다고 답하지를 못하겠다. 왜냐하면 이 책은 철저히 ‘소설가’로서 하루키의 생각들이 담긴 에세이여서, 소설을 좋아한다거나, 특히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그리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표현을 뒤집어 다시 말하자면, 적어도 내게는 이 책이 정말 재밌었다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하루키가 소설가를 꿈꾸며 그리고 소설가로 활동하며 겪었던 고민들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과 위안을 받았다. 단순히 기술적인 차원에서 인물들을 어떻게 설정할지 혹은 풍부하게 묘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등의 고민은 아니었다. 앞으로 이야기를 계속 쓰려면 어떤 시야와 안목을 가져야 할까, 그리고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등의 다소 추상적이고 막연한 고민들을 계속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이 눈앞에서 떠먹여주듯 이 책에서 그대로 알려주었다.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뛰어난 소설 한 편을 써내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한 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못 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28~29p)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상을 탔을 때, 당시 내가 경영하던 가게에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와 “그 정도의 소설로 괜찮다면 나도 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물론 불끈했지만, 동시에 비교적 솔직하게 ‘그래, 저 녀석 말도 분명 맞다. 그 정도의 소설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107p)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흔해빠진 대답이라서 죄송하지만, 이건 역시 소설을 쓰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빠뜨릴 수 없는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다음에 할 일은 - 아마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보다 먼저 -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118~119p)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 라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이런 멋진 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140p)



물론 하루키의 생각이 언제나 ‘정답’은 아닐 것이다. 글을 쓴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는 건 아니듯, 작가마다 각자 고유한 방법이나 가치관이 있을 것이고 때문에 하루키가 말한 내용이 다 나에게 들어맞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하루키도 비슷하게 했었고 그에 대해 내린 결론으로 지금까지도 소설가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이 내겐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와 감동이 되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나 또한 소설을 계속 쓰고자 노력할 것이고, 쓰는 게 더뎌지거나 막막해질 때마다 이 책을 꺼내들어 몇 번이고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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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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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이름이 아닌 ‘그’와 ‘그녀’ 만으로 지칭되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정치인과 결혼한 후 공허감에 휩싸인 영화배우 ‘그녀’와, 애인을 잃은 후 파리의 비좁은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 ‘그’, 두 사람은 어린 시절 함께 출연했던 영화가 프랑스 낭트 영화제에서 4K로 재개봉된다는 소식과 함께 그 영화제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렇게 이들의 서사가, 사무친다는 표현이 절감될 정도로 너무도 슬픈 사연이, 두 사람의 재회를 계기로 차츰 밝혀지기 시작한다.

그와 그녀는 모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그의 경우는 아버지가 원인이었다. 아버지는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무리한 사업을 벌였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그를 남겨둔 채 떠나버렸고, 그 장면을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또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떠난 이유를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책임으로만 돌린다. 너가 게이여서, 너가 변태여서 등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그에게 모진 말을 내뱉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 또한 기구한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매트리스 광고에서 남자 아이와 함께 자는 장면을 찍었다는 이유로 학교의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거칠고 날카로운 언어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광고의 효과로 인해 그녀의 어머니는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내면을 살펴볼 겨를 따윈 없었다. 이는 곧 그녀의 불면증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이후 그녀는 자라면서 수많은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성폭력에 시달리고, 결국 정치인과 결혼하여 많은 아이들을 낳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하는가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 한마디가 모든 것을 압축하여 설명한다. 사실 자신은 연쇄살인마라는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결말에 들어서 그녀가 자신을 연쇄살인마라고 말한 이유가 밝혀진다. 그녀는 남편의 시어머니에게서 아들을 낳기를 강요받지만, 첫째부터 셋째까지 모두 딸만을 낳았다. 심지어 셋째 딸이 죽게 되었을 때도 남편과 시어머니의 반응은 불가해할 정도로 냉담하였다. 이후에도 그녀는 아들을 낳으라는 강압에 수차례 임신하게 되고, 만약 딸이 들어서면 중절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수많은 딸들을 죽인 결과 아들을 낳는 데 성공하지만, 이 또한 행복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아들은 그녀를 떠나버렸고, 또 어릴 적 그녀에게서 들은 그를 찾아가 자신을 범해달라고 부탁하며, 그는 아들의 요구를 받아준다. 즉, 아들은 그렇게 자신의 성정체성에 눈을 뜨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와 그녀가 재회한 현재 시점에서, 그녀는 그에게 아들을 범했냐고 묻는다. 그리고 답을 망설이는 그를 보며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담아 한마디를 덧붙인다.

“왜냐하면, 나는 평생 짜릿할 기회가 없었거든. 나는 한 번도 짜릿했던 적이 없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러니까, 지금 나의 가장 큰 바람은, 내 아이가 짜릿해지는 거야.” (469p)

(스포일러 끝)

두 주인공의 현재 모습과 과거 서사가 장면 단위로 교차하며 전개되는 탓에,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초반에 혼란스러움을 불가피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풍부한 이미지들의 향연 덕분에 그 서사를 차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단편적인 서사 조각들이 하나둘 모여 쌓아올려지고, 이는 결국 결말에 가서 폭발하며 독자들에게 거대한 슬픔의 전율을 선사한다. 거시적으로 대만의 역사를 살펴보았던 전작 <귀신들의 땅>과는 달리 <67번째 천산갑>은 보다 개인적인 서사에 집중하여 현대 시점의 성소수자들과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내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보다 더 섬세하게 와닿았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성차별, 성폭행으로만 보지 말고 그저 한 사람의 아픈 내면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는 관점으로 읽기를 바란다. 불우한 과거로 인한 상처의 치유를 향한 두 주인공의 발돋움이 보다 더 벅차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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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 -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김아인 지음 / 허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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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듯한, 인간의 정신을 전산화하여 가상세계로 이동시킨다는 설정의 작품이 요즘 들어 흔히 보이는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정유정 작가의 <영원한 천국>도 그렇고, 단요 작가의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도 그랬다. 이번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인 <스파이라> 역시 그러했다. 유행인건가? 아니면 영생을 바라는 건가?

이쯤에서 줄거리를 소개해볼까? <스파이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뒤, AE라는 기업 및 서버에 입주해 이후의 삶을 살아간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사건의 시발점은 그 AE로의 입주에 자발적이지 않은, 다시말해 강제로 전산화를 당하게 된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작품들과 다른 <스파이라>만의 특징을 말하자면 ‘추리’ 장르의 요소가 버무려져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책을 정말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후루룩 읽어버렸을 정도로 몰입과 속도감이 대단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작품 속의 정교한 세계관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었던 것 같은데, 이는 오로지 나한테만 해당할 뿐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상상력이 부족한 극S성향인 탓에 판타지나 SF소설 속 세계관을 잘 그려내지 못하는 바람에 그런 장르의 작품을 잘 읽지 못하고는 한다. 때문에 이런 장르들을 좋아하는 파워 N성향 분들은 이 작품을 엄청 좋아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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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트리플 26
단요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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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예전에 한번 단요 작가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가벼운 SF일 거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훨씬 묵직하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아 화들짝 놀라며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그 작품이 별로였던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읽고 싶던 책의 느낌이 가볍게 리프레시할 수 있는 책이길 바랐던 마음에 그랬던 탓이다. 


이번에 읽은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역시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단순한 SF로만 보기는 힘들었던, 조금 더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소설. 그래서 내가 이 책에서 보고 싶었던 건 사실 단요 작가의 작품 보다 에세이였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는 걸까, 하는 게 궁금했달까.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는 단편 세 편과 함께 작가의 에세이가 같이 엮여 출간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 책이 더더욱 적합했던 것 같다. 


🗣 세 단편은 모두 SF로 간주될 만하지만, 나는 ‘슬립스트림’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브루스 스털링의 정의에 따르면, 슬립스트림은 SF와 판타지 그리고 제도권 문학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기묘함을 자아내는 장르를 일컫는다. (158p)


어떤 문학비평가는슬립스트림이라는 용어를 경멸에 가까운 느낌으로 쓴다고는 하지만, 나는 좋은 의미에서 단요 작가의 작품들이 슬립스트림 장르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 까다로운 단요 작품만의 느낌이 분명히 있는데 - 그리고 느낌은 일반적으로 널리 읽히는 SF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데 - 작가 본인이 직접 그걸슬립스트림이라는 장르적 용어로 설명한 듯하다. 독특한 단요 작가만의 분위기가 누군가는 선뜻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있지만, 그럼에도 고유의 매력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또한 부정할 없던 단요 작가의 < 개의 머리가 있는 >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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