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 축산업에 관심이 많군요". 나와 이야기해본 사람들 중 이런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 성인이 된 이들이 많은 시대라서 농사짓기나 가축 사육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이들에겐 조금만 아는 척을 해도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됩니다.하지만 정작 나는 농사나 가축 사육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게으르기 때문이지요.특히 가축 사육은 전혀 쉴 수가 없는 직업입니다.동물 좋아한다고 덥썩 시작했다간 낭패 보기가 쉽습니다.
나는 선사 시대, 그것도 농사나 목축이 시작되기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본능을 격세유전으로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도시의 야산에라도 가면 나무 뿌리나 나물, 꽃잎 등을 따서 씹어먹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누구에게 식용식물 식별법을 배운 것도 아닙니다.그래서 때로는 엄청나게 쓴 열매를 먹고 퉤 퉤 뱉을 때도 있습니다.이런 때는 초식동물들이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약초산업이 발달되어 있습니다.요즘엔 산삼에 열을 올리고 있지요.이렇게 된 것은 원주민들 덕택입니다.백인들은 원주민들의 약초 채취법을 익혔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입니다.그런데 원주민들 역시 동물에게 배운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독초와 식용 식물을 구별 못하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입니다.독버섯 먹고 죽은 사람은 있지만 동물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그들은 신기하게도 독이 든 식물을 먹지 않습니다.원주민들은 바로 동물들이 먹는 식물을 채취하여 식용으로 혹은 약용으로 이용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농촌에서 염소나 소를 몰고 다닌 사람들은 가축들이 먹는 풀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동물들 하는 대로만 따라 하면 죽을 일이 없지요.게을러서 농사 짓기나 가축 사육엔 부적당한 나 같은 사람은 나중에 염소 한 마리를 길러서 그가 먹는 풀을 모두 채취해 보려고 합니다.물론 채취한 식물은 식량으로 쓰기 위해서죠.웬만한 것은 생식으로 먹으려고요.반찬 해먹기도 귀찮으니까요.
몇 주 째 도심 보도 위에 버찌가 떨어져 밟히고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그냥 보기 흉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작은 열매이긴 하지만 꽤 맛있거든요.음식이 길거리에서 밟히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겠습니까? 그래서 아직 안 밟힌 것은 주워서 먹기도 합니다.그런데 깊은 산골도 아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신사복 입은 아저씨가 쪼그려 앉아서 땅에 있는 뭔가를 집어먹고 있으니 그다지 아름다운 장면은 아닌 모양입니다.성질 같아서는 자루에 가득 담아 왕창 먹고 싶은데 온전한 것이 거의 없으니 그럴 수도 없고...
며칠 전 일요일에 시골에 갔더니 뒷산 저수지 옆에 뭔가 시커먼 게 떨어져 있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아! 내가 좋아하는 오디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습니다.오디를 흙에 묻은 채 입에 넣어 먼저 흙을 빤 다음 오디 열매를 꺼내고, 입에 남은 흙은 뱉으면서 몇 개를 먹었는지 셀 수도 없었습니다.손가락이 차츰 검게 물들어가고 혀도 검어져서 중국 개 차우차우 혓바닥처럼 되었습니다.아...이것도 감질나...왕창 먹었으면 좋을텐데...
어딘지 모르게 원시인 같은 본능은 당근 먹는 방식에도 남아 있습니다.반찬 만들기 귀찮으면 그냥 당근을 들고 바로 된장에 찍어 우적우적 씹어먹습니다.이가 안 좋은 사람은 이것도 못하더군요.그러고 보니 가끔 생선이나 닭고기 먹을 때도 아주 센 것이 아니면 가시나 뼈도 씹어먹어서 음식 쓰레기가 거의 안 나오죠.그러나 이런 생활을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아무래도 도시에서 오래 산 사람에겐 안 맞을테니까요.
아...그리고 수렵...그것도 귀찮으니 저수지에서 우렁이나 잡아먹는 게 수렵이죠.밤에 우렁이가 물가로 기어나올 때가 있거든요.그거 잡아서 삶아먹으면 되죠.다슬기는 맛은 있는데 탱자가시로 까먹는 게 귀찮은 반면 우렁이는 살이 많아서 쏙 쏙 빼먹으면 좋습니다.
책보다 산나물이나 산열매가 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