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좋은 우리말 표현을 찾아쓰자는 취지가 좋기는 합니다만 가끔 가다가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방송에서는 올바른 우리말을 쓰자는 계몽을 하고 있지만, 특히 일본어의 잔재이니 쓰지 말자는 단어 중에는 '저런 단어를 굳이...'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도 솔직한 심정입니다. 게다가 일본어 발음이 분명한데도 어떤 것은 그냥 허용되는 것도 있어서 기준이 무언지 애매하기도 합니다.
이제 벤또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은 많이 없어졌습니다.특히 30이하의 세대는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시락이라고 합니다.오뎅과 어묵은 다 같이 쓰이지만 어묵이란 단어도 정착되고 있습니다.하지만 일본에서 많이 쓴다고 해서 야채는 채소, 구좌는 계좌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그다지 많은 동조자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그것이 어쨌다는 것이냐 하는 반응이지요.그런 것까지 다 목록을 만들어서 외워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습니다.하지만 일제잔재를 추방해야 하지 않느냐며 정색하는 운동가들도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얼굴을 붉히고 싸우는 일도 있지요.뭐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츄리닝이 일본발음이라 해서 굳이 트에이닝이라고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습니다.그런데 아나운서들도 2-3을 '이 다시 삼'이라고 발음하더군요.'다시'라는 발음은 일본인이 Dash를 발음한 것입니다.하지만 바께쓰가 버킷이면 다시도 대시라고 발음해야죠.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치다는 뜻으로 쓰는 '대시'와 똑같은 단어인데...그렇다고 이 다시 삼이라고 발음하는 사람한테 정색하면서 "왜 일제잔재를 옹호하느냐?" 하고 삿대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또한 골치 아픈 존재가 될 것입니다.
노가다가 일본말이라서 막노동이라고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 '막'이라는 접두어가 안 좋은 뜻입니다.막나간다는 단어에서 사용되는 '막'의 용례를 안다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차라리 노가다를 사용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괜히 기계적으로 우리말로 고친다고 해서 더 이상해져 버린 경우지요.'기스'가 일본말이라서 스크래치라는 단어가 최근에 쓰이고 있습니다만 뭔가 잘난 척하는 느낌이 납니다.차리리 긁혔다는 표현으로 하는 게 더 낫지 뭐하러 영어를 쓰는지...츄리닝이 일본발음이니 트레이닝복이라고 발음하는 것도 그렇습니다.아예 운동복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어색하지도 않고...
뭔가 원칙이 있어야 할텐데 특히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는 무엇은 그대로 쓰고 무엇은 일제잔재이니 고쳐야 하는지 기준도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그냥 어느 정도 익숙한 단어는 쓰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억지로 되는 게 아니지요.예를 들어 우동이라는 단어는 일본어라서 한때 가락국수로 하자는 안이 있었습니다만 우동을 고수하는 이들이 워낙 많으니 결국 가락국수라는 단어는 슬그머니 없어져 버렸습니다.벤또가 도시락으로, 오뎅이 어묵으로 바뀐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지요.
다라이도 일본발음이니 대야로 하자는데...글쎄요...일본발음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오랜 세월 익숙해진 단어는 그냥 우리말로 받아들이는 게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어이...거기 바께쓰 좀 이리 가져와! " 하면 안 된다며 "어이...거기 버킷 가져와!" 이러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데 얼마 전 보니까 바께쓰는 양동이로 순화된 단어가 있어서 그걸 쓰자는데 아무래도 나는 바께쓰 정도의 단어는 그냥 쓰자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