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나민애 지음 / &(앤드)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펼쳐들자마자 이런 글이 있다. 어느 날의 내 마음이고, 누구든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

열심히 살아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럴 때는……

잠시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나를 만듭니다.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됩니다. (책 속에서)

​

여기서부터 내 마음은 달라졌다. 그냥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에 불과한 책에서 내 마음에 들어올 문장을 건져낼 수 있는 책이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나민애. 현재 서울대학교 글쓰기 담당 교수로 지내고 있다. 2015년부터 동아일보 주간 시평 코너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을 연재하고 있으며, 때때로 강연을 나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책날개 발췌)

​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 2장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다', 3장 '아픔도 때론 힘이 된다', 4장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로 나뉜다.

​

알고 보니 이 책의 저자는 나태주 시인의 딸이다. 예전에 나태주 시인이 딸에게 보내는 시를 묶은 시집 『너의 햇볕에 마음을 말린다』를 읽어서 그런지 무언가 한치 건너 아는 분인 듯한 느낌, 친근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

「힘들면 쉬어도 돼」에 이런 일화가 있다. 대학생 때 청첩장을 들고 교수님을 뵈러간 적이 있는데, 교수님은 편지와 축의금과 함께 덕담이 아닌 말을 불쑥 던져주셨다는 것이다.

"민애야,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의아했다.

"밥도, 청소도, 살림도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울컥했다.

"적당히 해도 된다. 집 안이 좀 더러워도 되고, 그걸 네가 다 안 치워도 된다. 애 낳고 열심히 키우지 마라. 너 하고 싶은 거 하나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좀 못해도 된다." (30쪽)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저자는 교수님의 말과 반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하나만 하지 못했고, 나머지는 다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하기 싫은지도 모르고 그냥 했고, 어떤 날은 앞뒤 가리지 않고 했으며, 숨을 헐떡이면서 남들이 요구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그 교수님의 말씀, "괜찮다, 안 해도 된다, 못해도 된다." 그 이야기가 나에게도 토닥토닥 위로를 건넨다.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었다면, 오늘은 잠깐이나마 놓아버리자. 물론 내일부터 내 맘이 다시 달라질지라도 말이다.

​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오래 하다 보면 그럭저럭 하게 된다."

이 말을 해준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하셨다. 어느 날 내가 친정집에서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름표가 너무 많아서 신물이 났을 때였다. 당시 아버지는 발톱을 깎으며 무심하게 이야기하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 6.25전쟁이 났거든. 그때 사람들이 죄다 피난 가고 난리도 아니었어. 너도 배웠지? 피난을 가는데 먹을 게 제대로 있었겠니. 못 먹고 못살던 시절인데 전쟁까지 나니까 더했지. 그때 어떤 아비가 있었는데, 그 아비가 음식을 구하면 배곯는 자식한테 먼저 먹였대. 음식을 아주 조금 얻으면 그 아비는 먹지 않고 자식한테 다 먹였다더라. 눈앞에서 자식이 배고프다고 하니 아비가 참은 거지. 한편 또 다른 아비는 음식을 구하면 자식이랑 반씩 나눠 먹었대. 두 아비 모두 배불리 먹지 못한 건 똑같지. 그런데 나중에 그 둘이 어떻게 된 줄 알아? 자식만 먹인 아비는 굶어서 죽어버렸대. 그다음에 자식은 어떻게 됐겠어? 반면 음식을 나눠 먹었던 아비와 자식은 살아서 고향 마을로 돌아갔대. 둘이 오랫동안 잘 살았대."

여기까지 이야기하셨을 때, 아버지는 이미 발톱을 다 깎으신 후였다. 나는 내 쪽으로 튕겨 나온 발톱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아 아버지에게 넘겨줬다. 아버지는 그걸 화장지에 잘 감싸서 휴지통에 버리셨다. 아버지가 발톱을 버릴 때, 나는 내 죄책감도 함께 버렸다. 알파걸의 강박도, 전 세계 대신 집을 선택했다는 피해의식도 버렸다. 집을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삐걱거리는 것들을 버렸다.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의무감을 가지고 '해야만 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버렸다. 그렇게 다 버리고 집에 돌아오니 깊이 잠들 수 있었다. (93~94쪽)



괜히 읽었다. 꼭 내 마음을 들킨 듯싶다. 어쩌지? 이 사람이 내 딸이고 이 글들이 내 딸의 것인데. 몹시 추운 겨울밤, 나는 딸의 글을 읽으며 떨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딸아이의 떨림이 나의 떨림이기도 해서 그랬다.

_나태주 (시인, 나민애 교수의 아버지)

​

우리는 갖가지 역할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이자 교수에 평론가 등등 이 시대를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각자 자신의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때로는 버겁게 잘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괜찮아. 하고 싶은 거 하나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적당히 해. 그래도 된다. 그럼, 되고 말고."

​

문득 쥐기만 하며 안달복달하던 시간에서 쉼표 하나 찍는 듯 짐을 덜어낸다. 에세이로 마음을 달래 보는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시작된다 - 1초도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는 유대인의 7가지 시간 관리 철학
오인환 지음 / BOOKULOVE(북유럽) / 2022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일단 제목에서 시선을 끌었다.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시작된다'라고 하니 거기에서부터 고정관념을 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창세기 1장에는 특이한 표현이 반복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 5절) 성경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보통 하루의 시작을 아침으로 보는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성경에서는 하루가 저녁으로 시작해 아침으로 끝난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창세기 1장 3절) 세상이 창조될 때, 빛보다 어둠이 먼저 있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이유로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고 아침을 하루의 끝으로 봤다. 이러한 유대인의 사고방식은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하다. (12쪽)

​

달라지는 건 없어도 시작과 끝을 언제부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지는 것일 테다. 그러고 보면 월요일이 한 주의 시작인지, 일요일이 한 주의 시작인지에 따라서 마음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

이 책을 읽으며 유대인 부자들의 시간관리 기술을 살펴보고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시작된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오인환. 10년 간 해온 스케줄 관리법과 메모법, 독서 등의 좋은 습관으로 지금은 사람들에게 '좋은 습관 만들기'를 전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

이 책은 총 7 챕터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시간 관리는 더 게을러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를 시작으로, 챕터 1 '하루에 관한 철학: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에서 시작된다', 챕터 2 '조기 교육에 관한 철학: 1분 1초 한순간도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챕터 3 '약속과 신용에 대한 철학: 숫자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는 지혜', 챕터 4 '가치와 목적에 관한 철학: 유대인에게 시간은 곧 인생이자 자산이다', 챕터 5 '행동 관리에 관한 철학: 지극히 실용적인 유대인의 일정 관리 노하우', 챕터 6 '우선순위에 관한 철학: 단순하지만 단단한 하루가 완벽한 삶을 만든다', 챕터 7 '휴식에 관한 철학: 번아웃을 피하는 유대인의 쉼 노하우'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시관 관리를 마음먹은 그대에게 마지막 책이 되길 바라며'로 마무리된다.

​

흔히 아침형 인간은 부지런함의 대명사이며, 올빼미형 인간은 늦잠 자고 게으름을 떠올린다. 사실 하루의 일정 시간을 자신만의 창조적인 시간으로 꾸려나가는 것에는 딱히 다를 바가 없는데 말이다.

​

게다가 생각해 보면 밤부터 새벽, 아침으로 이어지는 그 시간이 문자 메시지나 SNS 알림에 방해받지 않는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으로 누릴 수 있는 때다.

​

이 책에서도 그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에게는 '나 일찍 일어났다.'라는 자기만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어나서 좋은 컨디션에서 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일 테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시간을 능동적으로 잘 활용하는 방법일 테니, 유대인의 7가지 시간 관리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을 집중하여 읽어나간다.

사회적으로 자기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 속에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부지런함'이나 '자기관리'로 착각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유대인의 시간 관리법을 보면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라는 것은 기상 시간만으로 자기만족을 하는 수박 겉핥기식의 자기관리가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 관리는 '얼마나 일찍 일어나느냐?'가 아니다. 내 일과에 맞게 시간을 잘 쪼개 활용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18쪽)

​


이 책에서는 하루에 관한 철학, 조기 교육에 관한 철학, 약속과 신용에 관한 철학, 가치와 목적에 관한 철학, 행동 관리에 관한 철학, 우선순위에 관한 철학, 휴식에 관한 철학 등 유대인들의 시간 관리에 대한 철학 일곱 가지를 소개해준다.

​

계획과 목표 달성을 위한 방향을 잃고 방황 중이라면 일곱 가지로 정리된 유대인 시간 관리 철학을 읽으며 하나씩 짚어보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실천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각종 에피소드와 예시, 교훈 등을 들려주어서 다양한 배경지식을 접해볼 수 있다. 시간관리에 대한 자기계발서 중에서 유대인의 시간 관리 철학에 대해 들려주는 책이니, 하나씩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세트] 브랜든 1~2 세트 - 전2권 ㅣ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네이버 웹툰 화제작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단순히 호기심이 생긴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약간의 설명이 더해지니 이 책을 어서 읽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

우연히 열린 차원의 문을 따라 또 하나의 지구에 도달한 브랜든,

'사람'이라는 기준이 이 세계와 전혀 다른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너는 사람이 아니다. 내 기준의 사람에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스스로를 '사람'이라 증명할 수 있는가?" (책 뒤표지 중에서)

​

아주 기본적인 것이면서도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이런 부분을 건드려주는 것,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람에 대한 기존 정의가 완전히 뒤집혔을 때에 그는 어떻게 스스로를 사람이라 증명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나는 어떻게 증명하게 될지 이 책 『브랜든』을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이 책의 저자는 d몬. 2020년 네이버 웹툰 『데이빗』으로 데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독창적으로 구축한 세계에서 풀어내고 있다. 『데이빗』, 『에리타』, 『브랜든』으로 '사람 3부작'을 마무리했다. (책날개 중에서)



첫 시작은 너무도 거리낌 없는 일상이다. 어린이인 브랜든이 옆 블록 요크 할아버지 집에서 주워 온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브랜든의 엄마는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주라며 혼나는 장면이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니까 문제없다고 변명하지만 "네가 알잖니."라는 말에 결국 쭈뼛쭈뼛 다시 그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파지직 파직 파지직~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

이상한 존재가 나타났고, 그가 말한다.

그래서 내가 묻겠다. 너는 이런 것이 가능한가? 가능치 않다면 내 기준의 '사람'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스스로를 '사람'이라 증명할 수 있는가? (41쪽)

​

허를 찌르는 소재다. 당연한 사실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서부터 마음은 콩닥콩닥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흥미로운 세계로 들어가 본다.

​

메모리 전송--- 주목해야 할 정보--

'브랜든'이라는 개체 발견.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주장하나 근거 없음.

지속적인 관찰을 요함.(52쪽)

​

'이게 뭐지?' 하면서 쑥쑥 빨려 들어가 읽게 된다. 정말 말이 안 된다면서도 신기해서, 궁금해서 계속 읽어나간다.

​

'헉' 하면서 읽는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작가의 상상력이 참신했다. 그게 작품의 힘인가 보다. 특히 마지막에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듯 얼얼한 느낌으로 책장을 덮는다.



일단 집어 들면 1권부터 2권까지 한달음에 읽어나가게 되니, 중간에 끊기지 않게 두 권을 세트로 장만할 필요가 있겠다.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뒤죽박죽 혼돈 속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브랜든, 아, 브랜든.

​

그리고 '헉', '뭐지?', '으악' 등 온갖 감탄사를 섞어가며 읽어나가다가 마지막에 뒤통수 한 대 제대로 맞은 듯한 느낌이 들어 얼얼했으니, 나에게 인상적인 웹툰으로 기억될 것이다.

​

쉽게 읽히는 것만은 아니지만 무언가 철학적인 화두를 던져주는 듯하면서, '두둥~' 갑자기 휘몰아치며 인간 존재에 대해 사색에 잠기게 되니, 어쩌면 이 책은 읽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 강렬한 느낌과 함께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서 정주행하게 되는 웹툰이었으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에 나를 긴장하게 만든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화가의 장례식
박현진 지음, 박유승 그림 / 델피노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함께 살아가며 가장 잘 알듯한 가족을 사실 의외로 잘 모르고 지낸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림엔 소질이 없고 미술을 잘 알지도 못한다고 본인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가 화가의 아들이라니 거기에서부터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심이 증폭된다.

​

프롤로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2007년, 아버지에게 양극성 정동장애와 암이라는 정신과 육체의 병이 찾아왔다. 높은 산 같기만 하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무너져 내리던 순간, 나는 아버지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라고 성급히 결론을 내렸다.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니 그것을 조금이나마 지연시키기 위해 버티는 삶이 시작됐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회복을,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가족도 의사도 아닌 아버지 당신 자신이었다. 아버지는 늙고 병들어 굽은 몸으로 쓰러졌던 이젤을 다시 세우고 흐트러져있던 붓끝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강렬하고 밝은 색채로 채워진 캔버스는 생명을, 치유를, 기적을 노래하고 있었다. (5쪽)

​

이 책의 저자는 화가의 아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아버지와 그의 그림에 대한 글을 써서 이 책을 출간한 것이다. 무언가 특별한 느낌을 받아서 이 책 『화가의 장례식』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박현진. 화가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그의 그림에 대한 글을 쓰며 묵은 감정들이 씻겨 나가는 것을 경험하고, 글과 그림이 누군가에게 마음 치료약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

그림은 박유승. 박유승 화백은 작품활동으로는 개인전 3회, 한솔갤러리 개관초대전, 제주작가 9인전, 제주프레비엔날레, 대한민국청년비엔날레, 대한민국 기독교미술대전, 제주-오키나와 미술교류전, 터전, 제주의 빛, 한미협 지상선, 제주미술제 등에 출품하였다.

박유승 화백은 말년에 찾아온 정신과 육체의 병을 짊어지고 7년여 동안 집중적으로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본능적으로 존재의 원초성을 추적하는 유년의 기억과 바람에 날리는 씨앗처럼 작가의 의식 속에서 제주를 두른 돌무더기와 억새 바람, 해녀의 숨비소리, 땀이 밴 갈증이 노래와 토박이 남녀의 사랑 등 제주의 원시를 화폭에 담았다. (책날개 발췌)

​

이 책에는 27가지의 글이 담겨 있다. 최초의 대화, 하얀 사람, 가장 슬픈 사람, 주인 잃은 그림, 구원의 언저리, 늦추위를 뚫고 온 겨울 해녀, 우리는 늘 발가숭이였다, 마지막 얼굴,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양극성 정동장애, 내 마음은 어떻겠니, 또 다른 고통, 기적, 먼저 손을 내민 건 아버지였다, 지키지 못한 약속,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중력을 잃은 세계, 불을 만나다, 마지막 여행, 집으로, 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완벽한 일상, 바람이 분다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아들로서 들려주는 아버지의 모습과 이야기가 저자의 아버지 박유승 화백의 유작과 함께 담겨 있다. 나처럼 작품만 보았을 때 그 느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이야기와 함께 작품을 접하는 것이 놀랍도록 풍성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삶과 죽음과 고통과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감정을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책에서 저자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데 그 담담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와서 어찌나 요동을 치는지 울컥하는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 책이 아니면 알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뒤흔들며 한참을 머문다.



​

특히 저자가 아버지 몰래 병원을 찾아, 아버지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렸던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한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양극성 정동장애. 내 설명을 가만히 듣던 의사는 종이에 누워있는 S자 그래프를 그리며 아버지의 병을 설명했다. 흔히들 조울증이라고 하는 이 병은 주기적인 사이클이 있다고. 누구나 우울감과 들뜬 상태를 경험하지만, 정상인의 경우 어디까지나 정상범위를 넘지 않는다고. 양극성 정동장애는 그 정상범위를 넘어 극도로 우울해지고, 극도로 들뜬 상태가 된다고. 울증의 상태가 회복되면서 서서히 조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이 병의 사이클이라고.

조증 상태에서 환자는 정신적 활동이 활발해져서, 수면 욕구가 줄어들고, 쉽게 짜증을 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했다. 과대망상에 빠져들고, 충동적이 되고, 주변의 자극에 쉽게 반응하고 주의가 끌린다고 했다. 그제야 그동안 아버지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이해가 되었다.

​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다. 나는 또 고개를 저었다. 약물치료만으로 우울증을 극복했으니, 이번에도 약물치료로 어떻게든 치료해 보겠다고 했다. 의사는 조증 상태에서는 본인 스스로가 마치 신이 될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병을 자각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복용하고 몇 분 이내에 잠이 드는 센 약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래도 일단 약은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

아버지는 봄부터 복용하던 정신과 약을 언제부턴가 이미 중단한 상태였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가 약을 먹게 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어머니는 처방받은 약을 갈아서 뜨거운 유자차에 탔다. 그런 방법 외에 딱히 선택할 길이 없었다. 나는 저녁을 마치고 TV를 보는 아버지에게 차가 참 달다며 찻잔을 건넸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차를 받아 마신 아버지는 의사의 말대로 10분도 되지 않아 잠을 자야겠다며 안방으로 향했다. (71쪽)

​



가족이기에 쓸 수 있는 책이다. 가족이어서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이 책이 더욱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것일 테다. 가감 없이 진솔하게 써내려가서 이렇게 마음에 훅 들어오는 것이리라. 글은 박유승 화백의 장례부터 진행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죽음보다 더 강한 예술혼에 온통 사로잡히는 것을 느낀다.

​

책을 읽을 때에, 펼쳐들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세계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이 책에 담긴 박유승 화백의 그림도, 글을 풀어내는 화가의 아들 이야기도 내 마음을 흔들어놓아 이 여운이 꽤나 오래갈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 - 신화가 아닌 보통 사람의 삶으로 본 그리스 로마 시대
개릿 라이언 지음, 최현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 로마' 하면 '신화'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당연히 떠오르는 신화 말고, 보통 사람의 삶으로 본 그리스 로마 시대를 이야기해 준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약간 호기심이 일었다.

​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면 그냥 '아, 그렇구나'라면서도 뜨뜻미지근한 느낌이 들지만, 다음 이야기까지 들으면 바로 '맞아, 나도 궁금해'라며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

몇 년 전, 미시간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갔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전시실 투어를 마쳤을 때 한 학생이 다가와 은밀한 이야기라도 하듯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속삭였다. "라이언 박사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그리스 조각상들은 왜 이렇게 나체가 많나요?"

질문을 듣는 순간 이 학생을 포함한 대중에게 정말 필요한 건, 그리스·로마에 관해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이 번뜩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무심코 던지는 세속적이고 유쾌한, 하지만 날카로운 질문 속에 신화나 잘 꾸며진 이야기, 또는 방대하게 쓰인 연구서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스·로마 고대사의 진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위 질문을 포함하여 36가지 질문에 답을 제공할 것이다. (6쪽)

​

그리스·로마인들이 언제부터 바지를 입었는지, 그들도 신화를 정말 믿었는지 등등에 대한 질문을 들으니, 나도 그 답변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이 책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개릿 라이언. 미시간대학교 그리스·로마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여러 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고, 출판, 방송, 잡지, 온라인 포럼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그리스 로마사의 진면모를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책날개 발췌)

​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된다. 1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 2부 '문명의 뿌리가 담긴 사회의 단면들', 3부 '떼려야 뗄 수 없는 신화와 종교 이야기', 4부 '올림픽과 콜로세움의 현장 속으로', 5부 '전쟁과 정치의 세계', 6부 '그리스 로마 시대 그 이후'로 나뉜다.

​

그리스·로마인들은 왜 바지를 입지 않았을까?, 그들도 현대인들처럼 면도를 했을까?, 어떤 반려동물들을 키웠을까?, 당시에도 피임을 했을까?, 고대 진찰실의 풍경은 어땠을까?, 식탁 위에 어떤 음식들이 차려졌을까?, 평균 수명은 몇 살이었을까?, 평균 키는 어느 정도였을까?, 고대 사회에서도 이혼을 했을까?, 남색 행위가 지극히 흔한 일로 여겨진 이유는?, 나체 조각상이 왜 그렇게 많이 만들어졌을까?, 그리스·로마인들도 신화를 믿었을까?, 유령과 괴물 그리고 외계인의 존재를 믿었을까?, 그들도 헬스장에 다녔을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그리스·로마인의 진정한 후손은 누구일까? 등 36가지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 책이다.

​

'그리스·로마'하면 당연하게 '신화'부터 떠올렸기 때문인지, 이제야 신화만큼이나 중요하고 꼭 짚어보아야 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목차에서 언급하는 질문들을 접하고 나서야 나도 그 답변이 궁금해진다.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면서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생활상을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에서는 그 시절의 풍경을 엿보는 듯한 느낌으로 진술된 이야기와 함께 조각상이라든가 그림 작품 등을 보여주니 더욱 현장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특히 풍부한 고고학 자료에 더해 그리스·로마사를 풀어주니, 그리스·로마인의 그 옛날 일상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생하게 되살려준 듯하다.

​

목차를 보며 궁금하게 생각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서 읽어봐도 좋겠고, 그냥 처음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으아, 그런 일도 있었어?'라며 새롭게 알아가는 사실들이 많았으니, 몰랐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아가며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 중에서 손님들은 마음에 드는 것들을 맛보았다. 그리고 가끔 트림함으로써 감탄을 표시했다. 가끔 하는 트림은 예의 바른 것으로 간주되었고 가볍게 침을 뱉는 것도 용인되었다. 의사들은 방귀를 참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지만, 노골적인 방귀는 예의 있는 것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보미토리움(구토를 위해 할애된 방이라는 의미)은 실화가 아니지만, 일부 로마인들은 실제로 코스 사이에 혹은 식사 후에 구토하기도 했다. 그들 중 일부는 탐식가였지만,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배 속을 비우는 것이 소화 기관에 좋다는 당시의 보편적인 믿음에 기인한 행위였다. (57쪽, 본문과 각주)

​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리스·로마인의 일상에 대해 내가 정말 몰랐구나, 생각하며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도 사람이 살았고 경제활동을 하며 화폐를 사용했는데 분위기가 어땠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질문 11 '돈을 얼마나, 어떻게 벌었을까?'에 보면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돈 이야기를 살펴보니 이것도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의 동료들이 수십 년간의 물가 상승에 종지부를 찍기로 정했을 때 그들의 해답은 단순했다. 위반 시 사형 조건으로 물가를 통제하고 임금 상한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장 노동자와 노새 몰이꾼은 일당으로 최고 25데나리우스, 목수와 제빵사는 50데나리우스를 받을 수 있다고 칙령으로 정했다. 그 시절에도 직업들의 명확한 위계질서와,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인 사회였던 것이다.

​

그렇다면 그 시대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도 살펴볼까.

어느 시대건 어느 곳이건 갑부들이 그렇듯이 그리스·로마의 최고 부유층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돈을 썼다. 로마 상류층은 막대한 금액을 가구에 쏟아부었다. 키케로는 편백나무로 만든 서빙용 탁자에 5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썼고, 그의 친구는 탁자에 그 두 배의 돈을 썼다. 고급 골동품 역시 터무니없이 비쌌다. 어느 안목 있는 로마인은 그리스의 장인이 만든 작은 조각품에 거금 1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지불했다.… 칼리굴라의 부인이 사치 행각에 있어서는 으뜸이었다. 그녀는 연회에 4000만 세스테르티우스어치 에메랄드와 진주를 휘감고 나타났다. 그러나 고대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매는 약 150년 후에 일어났다. 2억 5000만 세스테르티우스의 뇌물로 로마 황제의 자리를 산 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두 달 뒤에 그 구매자가 암살당했으니, 형편없는 투자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111쪽)



현지에서 직접 탐사하며 얻은 탄탄한 지식에 현장감 넘치는 도판을 더한 이 책은, 신화 너머에서 살아 숨 쉬는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경이로운 삶을 매혹적으로 펼쳐낸다. 한 장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아테네의 광장 또는 콜로세움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시간 탐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 로마인의 삶이 궁금한 일반 독자,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해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를 만드는 문화업계 종사자 모두에게 유용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특색을 살핌으로써, 서양사를 넘어 인류 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책날개 중에서)

​

그동안 '그리스·로마' 하면 신화가 먼저 떠오르거나 귀족이나 왕들의 생활 만을 생각해왔다면, 이 책을 통해 일반인들의 일상과 아주 사사로운 질문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들으면 궁금하지만 누구에게 물어도 선뜻 그 답을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질문들에 대해 이 책에서는 답변을 해주니 호기심을 채울 수 있겠다.

​

그리스·로마인들은 왜 바지를 입지 않았을까?, 그들도 신화를 믿었을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어디였을까?, 돈은 얼마나 어떻게 벌었을까?, 검투사들은 정말 영화 속 모습처럼 살았을까? (질문 중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호기심이 두껍지만 한달음에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되어준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생활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